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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낯설어졌다” 인문학이 본 ‘나이 듦’
“내 자신이 낯설어졌다” 인문학이 본 ‘나이 듦’
  • 김재호
  • 승인 2022.10.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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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 교수들의 노년에 대한 성찰
서울대 인문대 심포지엄 ‘나이 듦에 대하여’

“늙어가는 내가 협상해야 할 상대는 바로 나다.” 손유경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지난 7일 열린 서울대 인문대학 제4회 심포지엄 ‘나이 듦에 대하여’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손 교수는 「노년의 시간과 ‘견딤’의 감각」 발표를 통해 “인간은 늙어가면서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낯설어지는, 다시 말해 나로부터 내가 멀어지는 충격과 공포를 겪게 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손 교수는 “젊은 나의 정신이 늙은 나의 몸을 혐오한다”라며 “나이 듦이란 결국 나와 내가 어떻게 화해하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라고 밝혔다.

 

1770년 경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대중 판화 「인생의 다리」이다. 중장년기에 정점을 찍고 노년기로 하강하는 구도를 보인다. 고야는 「결혼」(5면)에서 이 구도를 뒤집었다. 그림=Remondini, The Bridge of Life, c. 1770, Engraving, 52.5 x 76.5 cm.

서울대 인문대학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 이날 심포지엄은 ‘역사와 회화에 나타난 나이 듦’(세션 1), ‘고전에서 찾는 나이 듦(세션 2), ‘지금, 나이 듦’(세션 3)을 다뤘다. 인문대 교수 12명과 간호학과 교수 1명이 발표했다. 나이 듦의 정의부터 역사적 인식, 문학과 철학 고전에서 나타는 관점, 회화에 투영된 노인에 대한 시대상, 죽음을 극복하려는 현대의 노력까지 다뤘다. 요컨대, 나이 듦이란 지혜·영혼불멸의 긍정과 고독·쇠약의 부정을 오가며 인식된다. 부조리한 인생은 삶속에 죽음을 숨겨두었고, 일상에서 누구나 조금씩 나이 듦을 깨달아간다.

“노년은 우리에게 영원한 타자다.” 민은경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나이 듦에 대한 인문학적 독서의 기록’을 펼치며 이같이 말했다. 민 교수에 따르면, 키케로(기원 전 106년∼기원 전 43년)는 기원 전 43년에 끔찍이 사랑했던 딸을 잃고 1년 후 『노년에 대하여』를 썼다.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예순 넷에 『노년』(1972)을 썼다. 이 두 책은 노년에 관한 고전 중에 고전으로 꼽힌다. 전자는 나이 듦에 대해 긍정, 후자는 부정을 드러낸다. 민 교수는 “보부아르는 노년에 저항했다”라며 “그에 의하면 노년이란 일반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노화, 경제적 빈곤, 사회적 소외를 의미하며, 키케로식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먼 경험”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노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김병준 서울대 교수(동양사학과)는 「노인에 대한 상반된 시각, 그 역사성」에서 고대문헌을 분석했다. 김 교수는 “평균적으로 60세 이상 노인의 인구를 대략 4%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라며 “1940년대 한국과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가 6% 정도였다는 것과 비교해 보아도 적정한 수치라고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예전에도 국가의 노인 돌봄 서비스가 곡물·의복을 노인에게 지급했다. 그런데 노인 봉양의 근거는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진대까지 강제적 법령에서 한대 이후에 유교 사상에 토대를 둔 ‘당위’로 바뀌었다. 즉, 가족의 의무가 더욱 커진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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