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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없는’ 노년의 삶…지혜가 ‘나이 듦’을 구원
‘늙음 없는’ 노년의 삶…지혜가 ‘나이 듦’을 구원
  • 김재호
  • 승인 2022.10.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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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대하는 10가지 지혜

[특집]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 듦은 보편적인 사건이지만 드러나는 모습은 개별적이다. 제4회 서울대 인문대학 심포지엄에서 다룬 ‘나이 듦’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울하거나 평안할 수 있다. 병듦과 죽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넘어, 나이 듦은 평정과 해탈의 긍정적인 경지로도 나아갈 수 있다.

13명의 교수들은 나이 듦에 대해 인문학적 성찰과 돌봄의 문제를 다뤘다. 박진호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나이 관련 의미장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나이와 관련한 단어들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박 교수는 “젊다는 것은 덧없는 일시적인 상태이고, 늙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밝혔다.

특히 강상진 서울대 교수(철학과)는 “인구의 대다수가 노령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역사상 최초의 시기”를 가상 인간과 생물학적 몸, 유전적으로 재설계된 호모 데우스급 몸으로 분석했다. 나이 듦과 죽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그 양상은 조금 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이 듦을 대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심포지엄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나이 듦’을 대하는 10가지 지혜, 그림·숫자·인물로 보는 나이 듦을 소개한다. 당신도 나이 듦을 피할 수 없지만 관점은 조금 바뀔 수 있다.

“이성과 지혜로도 거부할 수 없던 쾌락,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욕망을 품지 않게 해 주는 노년이야말로 진심으로 감사할 일.
돌봄의 질은 아직 담보되지 않아…스스로 성찰하고 내면 돌봐야"

지난 7일 열린 서울대 인문대학 제4회 심포지엄 ‘나이 듦에 대하여’는 노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줬다. 사진=픽사베이

노인을 부양하는 방안은 시대별로 고민이었다. 장문석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는 「유럽사에 나타난 나이 듦의 표상들」 발표에서 18세기 유럽의 일부 국가들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들은 전체 인구의 10% 안팎을 차지했다. 장 교수는 “심지어 1세기 로마 제국 인구의 6∼8%가 60세를 넘겼고 그중 극소수는 100세까지 산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그런 점에서 현대의 경제학적 ‘비용’의 척도를 들이밀면, 전근대 시대에도 노인 부양은 오늘날처럼 가족과 공동체에 ‘부담’을 주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년을 ‘비노인’으로 살거나 ‘노인 없는’ 노년을 살기를 바란다.” 장 교수는 이탈리아 사회학자 주멜리(1946∼)를 인용하며 이같이 밝혔다. ‘노인 없는’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주멜리는 노인들을 타인의 멸시와 망각에서 구해내려면 먼저 노년을 ‘죽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 이야기로 나이 들어가는 수많은 개인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장 교수는 “노년에 대한 단일하고 일반적인 표상을 고착화하는 것의 위험”을 문제로 제기한다.

 

전국 노인요양시설 중 25%만 공립

현재 한국도 나이 듦과 노인 부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서은영 서울대 교수(간호학과)는 「노인 돌봄의 의미와 본질」을 발표했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빠르다”라며 “우리가 노인이 될 시점에는 성인 둘 중 한 명은 65세 이상이 된다는 통계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전국에 신고한 노인요양시설은 5천3백여 개나 되고, 이중 네 개 중 하나만 공립 요양시설”이라며 “시장 경제 논리에 맡겨진 노인요양시설에서의 돌봄의 질은 아직 담보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장기요양시설 노쇠 고령자의 특징으로 △면역기능 저하 △기저 질환 보유 △시설 입소 상태로 기동성 저하 △밀폐, 밀집 환경 △마스크 착용 등의 방역 지침 준수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 서 교수는 고령자의 돌봄을 위해 현실적인 시급한 사회 현안으로 간주, 요양보호사에 대한 교육과 재교육 및 질 관리, 고령자 돌봄의 전문화·상급화, 사회적 자본의 투입과 미래 지향적인 투자를 제언했다.

 

 

즐거움을 원치 않는 즐거움 누리기

노인에 대한 부양이 담보되지 못한 상황이라면, 스스로를 제대로 돌볼 수밖에 없다. 제4회 인문대학 심포지엄 ‘나이 듦에 대하여’에서는 인문학적 성찰로 극복하기를 시도한다. 나이 듦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출발점이다.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자료를 토대로 ‘나이 듦’을 대하는 10가지 지혜를 추려봤다.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들이다.

첫째, 노년은 더 이상 즐거움을 원치 않는 즐거움을 누린다. 장 교수는 로마인들이 지닌 노년에 대한 다중적 시각을 설명했다. 유베날리스는 노년을 추한 이미지로 그렸다. 하지만 세네카는 노년을 원숙한 상태로 바라봤다. 젊은 시절의 식욕과 성욕 등 1차원적 쾌락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고 고차원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것으로 말이다.

둘째, 육체가 상해야 조용함을 찾을 수 있고, 말이 어눌해져야 침묵을 지킬 수 있다. 이종묵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조선의 문인들 중 김창흡(1653∼1722)을 인용했다. 김창흡은 “늙음을 잊으면 노망이 든 것이요, 늙음을 탄식하면 추한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 교수는 “몸이 건강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니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없다”라며 “말이 절로 나오니 실수가 그에 따라 나온다. 이러한 오류는 늙음을 가지고 막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담박한 음식을 먹고 차분히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을 돌아보며 입을 다문다. 이로써 허물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셋째, 세상의 공평한 도리는 백발뿐이다. 이 교수는 시인 두목(杜牧)의 ‘백발공도(白髮公道)’를 소개했다. 유명한 고사성어인 이 말은 “귀인의 머리라도 봐준 적이 없으니”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나이가 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흰 머리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아울러 마음도 올바르게 바뀌어 표변(豹變)하는 군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옛사람의 마음이었다”라고 말했다. 대머리가 되어도 마음의 덕과 능력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가야할 때 가는 것 그것이 늙음을 받아들이는 공부의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넷째, 혈기(신체)는 쇠퇴할 때가 있지만, 지기(정신)는 쇠퇴할 때가 없다. 이강재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주희의 『논어집주』를 인용하며 이같이 밝혔다. “성인이 일반인과 같은 것이 혈기이고 일반인과 다른 것은 지기(志氣)이다.” 예나 지금이나 색욕과 싸움을 경계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혈기가 왕성하면 욕망에 휩싸이기 쉽다. 요즘 성행하는 마약 유통을 보면, 신체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수 있다. 이는 리더십과도 연결된다. 이 교수는 “사람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상대적으로 지위가 올라갈 가능성이 큰데, 이때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그만두고 쉴 줄 앎’…평정 유지하는 예법의 노년

다섯째, 나이 쉰을 넘겨서도 명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아니다. 공자를 인용한 김월회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노년의 품덕을 강조했다. 마흔아홉이라는 나이는 심적 박탈감을 유발할 수 있는 나이지만, 과거를 반성하고 매일 새롭게 나아가면 명성을 떨칠 수 있다. 김 교수는 “노쇠함을 인지하는 시기는 개인마다 다 다름이 분명함에도 마흔아홉에 공통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은 마흔아홉이 ‘문화적 나이’로서 널리 공유되고 세대를 거듭하여 유전되었기에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교수는 맹자를 인용하며 ‘그만 둘 줄 앎’을 나이 듦의 좋은 특징으로 소개했다. 예법 차원에서 나온 노년다움은 소극적 차원에선 공사 모든 방면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적극적 차원에선 ‘쉴 줄 앎’의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김 교수는 “쉰다는 것은 지금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렇게 일을 하지 않고서도 일상적 편안함이나 평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마흔아홉, 노쇠함 인지하는 공통적 시기

여섯째, 육신은 시간에 따라 변해가지만 마음은 늘 홀로 한적하였다. 김 교수는 진대 도연명(陶淵明)이 읊은 구절을 인용했다. “젊은 시절부터 고결함을 지닌 이래 / 문득 마흔을 넘어섰다. / 육신은 시간에 따라 변해가지만 / 마음은 늘 홀로 한적하였다.” 김 교수는 “노년다움은 노년에 대한 윤리적 요구가 사회적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방향보다는 내면적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진 것과 관련 있다”라며 “‘아름다운 뜻’이나 ‘즐겁고 평이함’, ‘근본을 깨달음’, ‘지혜로움’, ‘과욕’ 등이 주로 노년다움 구현의 조건으로 추출됨은 그 당연한 귀결이라 판단된다”라고 적었다.

일곱째, 소소한 것에 얽매여 걱정하며 특별한 업적 없이 사는 게 근심의 본질이고, 노년의 상태다. 오순희 서울대 교수(독어독문학과)는 괴테(1749∼1832)의 『파우스트』 여러 버전을 분석했다. 파우스트는 근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근심은 늙음의 본질과 같다. 오 교수는 “근심의 본질은 ‘망설임’”이라며 “파우스트는 무조건 내달리는 존재다. 이러한 강박적 내달리기야말로 파우스트가 ‘근심’으로 표현되는 ‘늙음’을 거부하는 방법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파우스트적 인간에게 근심은 멈추는 것이고, 멈추는 것은 죽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멸시받는다고 불평 말고 성격 돌아보기

여덟째, 비난 받아야 할 것은 나이가 아니라 성격이다. 강상진 서울대 교수(철학과)는 노년에 대해 제기되는 불평들에 대해 키케로가 어떻게 반박했는지 설명했다. 노인들은 나이 들었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성품과 덕을 돌봐야 한다. 존경을 받지 못하고 멸시를 받는다고 불평하는 건 잘못된 탓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젊은 시절부터 덕을 연마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노년을 위한 최선의 무기를 갖추지 못한다는 얘기를 함축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노년과 쾌락도 소개했다. 그는 키케로의 설명을 인용하며, “이성과 지혜로도 거부할 수 없던 쾌락,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욕망을 품지 않게 해주는 노년이야말로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라며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은 세월이 주는 대단히 멋진 선물이지 한탄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적었다.

아홉째, 늙어가는 내가 협상해야 할 상대는 바로 나다(「“내 자신이 낯설어졌다” 인문학이 본 ‘나이 듦’」 기사 참조). 

열째, 죽음에 대한 문학은 결국 그것을 경험한 자는 쓸 수 없는, 산 자의 문학이다. 민은경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애도서사, 애도이론의 한계는 산 자의 관점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노년문학이 꼭 애도문학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민 교수는 “내가 읽고 싶은 노년문학은 죽음, 우울, 질병, 광기, 공포, 분노에 대한 문학이 아닌 삶에 대한 문학”이라고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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