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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아이돌 시탈라 논쟁…태국에서 화해의 의미는
[글로컬 오디세이] 아이돌 시탈라 논쟁…태국에서 화해의 의미는
  • 현시내
  • 승인 2022.02.10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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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현시내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교수
한국 아이돌 하이키(H1-KEY)의 멤버 시탈라(사진 왼쪽) 활동에 대해 태국 팬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인 배우 사란유 웡끄라짱이 2014년 당시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을 때 적극 지지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GLG

한국 연예기획사 그랜드라인이 지난해 11월 30일, 신인 그룹 하이키(H1-KEY)의 마지막 멤버로 태국 출신의 ‘시탈라’라는 인물을 공개하면서 소위 ‘시탈라 부친 행적 논란’이 시작됐다. 곧 “그의 가족과 그는 태국판 전두환의 지지자들이다”와 같은 문구들이 시탈라 데뷔 사진에 새겨져 온라인에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가 보수연합이 조직한 거리 시위에 참여한 사진들도 함께 올라왔다.

수많은 네티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2월 8일 그랜드라인 그룹은 그의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점, 그리고 “시탈라 자신의 책임의 범위를 넘어선 행위까지 책임지게 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판단”하에 예정대로 데뷔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월 5일 하이키는 정식으로 데뷔했다. 연좌제라는 말이 고리타분한 21세기에 태국의 MZ세대들은 왜 시탈라의 데뷔를 반대하는 것일까?

시탈라는 말 그대로 태국의 금수저다. 그는 태국 연예계의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그의 아버지 사란유 웡끄라짱(Saranyu Wongkrachang)과 라디오계를 주름잡았던 그의 어머니 하타야 웡끄라짱(Hatthaya Wongkrachang)의 쌍둥이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부유층이 다닌다는 국제학교를 나왔고 한국에서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그녀의 배경과 대조를 이루는 아이돌 멤버는 블랙핑크의 리사(Lalisa Manoban)다. 리사는 부리람이라는 태국의 동북부 지역 출신이고, 방콕 변두리에 있는 학비가 매우 저렴한 사립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리사를 태국에서 서민층을 의미하는 ‘로-쏘(Lo-So)’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도 리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수많은 댄스 대회에 나가 경력을 쌓은 자수성가형 스타고, 태국의 정계와 재계를 장악한 화교나 혼혈이 아니라 타이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방콕 출신에 걸출한 대중문화예술인 집안에서 자라나 자신을 ‘영화의 자손(룩 낭)’이라고 부르고, 어릴 때부터 해외 명품 옷과 액세서리를 걸친 사진으로 소셜미디어를 장식할 수 있었던 ‘하이-쏘(Hi-So)’라 불리는 특권층의 삶을 영유해 온 금수저 시탈라에 비하면 리사는 상대적인 흙수저인 셈이다.

현재까지 군부 독재는 이어지고 있으며, 2020년부터 태국 시민들은 군주제 개혁 요구 등 민주화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이와 더불어 시탈라의 데뷔가 발표된 지난해 11월 30일 전후의 태국의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4월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불타오른 학생 주도의 민주화 시위와 왕정 개혁 요구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서 경찰이 쏜 총에 15살의 소년이 죽고, 대중 집회에서 한 발언으로 왕실 모독죄로 고소당해 감금된 학생지도자들의 보석 요구가 법원에 의해 반복적으로 거부되고 있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10일 태국 헌법재판소에서 왕실 모독죄로 구금된 학생 지도자들이 국왕을 국가수반으로 하는 정부 체제의 전복을 꾀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이들의 운명이 불분명해졌다.

‘#BanSITALA’라는 해시태그가 걸린 시탈라 보이콧 운동 관련 게시물에 탐마삿 대학의 학생운동가 파누사야 싯티찌라와타나꾼(Panusaya Sithijirawattanakul)의 사진이 나란히 올라가는 이유는 시탈라와 그의 가족이 지지한 2014년의 쿠데타 정권이 지금 태국 청년들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는 의미다.

태국에서도 시탈라에게 아버지의 죄를 묻는 것은 너무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었고, ‘#saveSITALA’라는 해시태그를 걸며 과거와의 ‘화해’를 주장한 사람들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십 차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때마다, 그리고 특히 유혈진압이 일어난 1973년, 1976년, 1992년 그리고 2010년에도, 태국 정부는 피해 상황에 대한 진상조사나 가해자에 대한 구속, 처벌 없이 곧장 ‘화해’를 주장해왔다. 이러한 이유로 태국 사회 내에서는 ‘화해’가 진실의 은폐를 위한 강자의 폭력과 다름없다는 인식이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된 상태다.

시탈라 보이콧 운동을 통해 우리는 한류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처럼 장기간 군부독재를 경험한 태국인들은, 특히 MZ세대들은 한국이 전직 대통령을 촛불시위라는 비폭력적이고 획기적인 투쟁과 탄핵이라는 법정 절차를 통해 감옥으로 보냈고, 자투팟 분파타라락사(Jatupat Boonpattararaksa)와 아논 남파(Anon Nampa)라는 두 명의 태국의 민주화 투사에게 인권상을 받을 만큼 진보적이기에, ‘한류’라는 소프트파워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나라에서 독재정권을 옹호함으로써 금수저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집안의 후손에게 기회를 준다는 데에 대한 그들의 실망감은 한국을 동경해왔던 만큼 클 것이다.

데뷔 무대에서 시탈라는 부친 논쟁에 관한 질문에 “태국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답했다. 그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그가 보내는 이 메시지가 150일 넘게 자신들의 친구를 풀어달라고 대법원 앞에서 팻말 시위를 하고 있는 태국의 MZ세대와 시민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갈 것인가. 시탈라 논쟁은 한국이 문화제국이 되면서 떠맡게 된 롤 모델에 대한 반추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시내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교수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동남아시아 지역학으로 석사,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위스콘신 주립대-화이트와터에서 조교수를 지냈다. 태국의 냉전 시기 정치사와 국경지대의 소수민족문제, 미국의 냉전기 대동남아 정책을 연구해왔고 관련 저서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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