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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재탄생 절호의 기회
새해는 재탄생 절호의 기회
  • 김기봉
  • 승인 2024.01.08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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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2024년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는 1월과 함께 시작한다. 영어로 1월을 가리키는 ‘January’의 어원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문의 수호신 ‘야누스(Janus)’다. 야누스는 한쪽은 과거를, 다른 쪽은 미래를 바라보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이는 새해의 시작인 1월이 과거를 돌아보며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사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은 138억 년 전쯤에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하는 우주의 탄생인 빅뱅과 함께 생겨났다. 호모 사피엔스로 명명되는 현생인류는 46억 년 전 태양계의 일원으로 형성된 지구에서 길게 잡아야 30만 년 전경에 출현했고, 내가 지구생명체로 존재하는 수명은 길어야 100년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은 우주의 차원에서 보면 너무나 작고 덧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그런데도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인문학과 과학이라는 2종류의 학문을 한다는 점이다. 먼저, 인문학을 통해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자각하고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노력을 한다. 그런 인문학은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다.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것이 과학이다. 

과학의 힘은 무엇보다도 갈릴레오가 선구적으로 연 ‘세계의 수학화’에서 나왔다. 인간은 아무리 작거나 큰 것도 얼마만큼 그런지를 숫자로 표시할 수 있기에, 그것을 토대로 우주의 법칙을 읽어내는 독해력을 향상하는 과학의 진보를 이룩했다. 20세기에 과학기술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발명했고 급기야는 지구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밖 우주로 나가 지구가 해와 달처럼 뜨는 ‘지구돋이(Earthrise)’를 보았다.

측정한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있음을 뜻한다. 우주는 138억 년 전 아주 작은 점이 폭발하는 빅뱅으로 시작해서 풍선처럼 계속 커지다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언젠가는 결국 열적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열적 죽음(Heat Death)’에 이르거나, 우주를 팽창시키는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는 ‘빅 프리즈(Big Freeze)’로 종말을 맞는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다. 인류는 과학 덕분에 시작과 끝을 알 수 있고, 인문학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이미지=픽사베이

 

관찰자가 만들어낸 허구로서 시간

우주를 포함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지구도 태양도 인간도 우주의 시작과 끝 속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중력의 영향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시간은 관찰자가 만들어낸 허구라는 점이다. 하루의 시간은 태양의 위치 변화와 관련해서 인간이 정한 측정값이며, 고대-중세-근대와 같은 역사적 시간은 사건들의 연속성과 그것들의 인과 관계로 구성한 서사에 따라 인위적으로 규정한 집합적 시간이다.

2024년 새해라는 시간은 태양의 위치에 따른 객관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의 조합으로,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종래의 율리우스(Julius)력을 개량해서 제정한 태양력에 근거한다. 기본적으로 그레고리력은 태양년(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만, 2024년이란 숫자는 예수의 탄생과 연관되고, 새해를 1월 1일로 정한 것은 로마 역사와 전통에서 유래한다. 

초기 로마력에서 1월 1일은 새로운 집정관들이 임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는데, 이후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이 도입되면서 이 날짜가 새해의 시작으로 공식화됐다. 이처럼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2024년 새해가 밝아왔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닌 인간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해서 만든 이벤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이벤트를 벌이는 것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에 재탄생의 부활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탄생이라는 사태로 주어지는 유일성

한나 아렌트(1906∼1975)는 그런 인간의 특성을 ‘탄생성(naturality)’이란 용어로 개념화했다. “인간은 각자가 탄생함을 근거로 해서 이니티움(initium), 곧 시작이면서 세계로 새로 온 자가 되기 때문에 스스로 시작하는 자발적 능력을 지니며, 그래서 시작하는 자가 됨과 동시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인간은 탄생이라는 사태로 주어지는 이 유일성 덕분에 유일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곧 인간 스스로가 신의 창조 행위를 반복하고 증명하는 능력을 획득했다. 아렌트는 그런 탄생성을 통해 우리는 ‘beginning something new’, 곧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과 ‘beginning anew’, 곧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의 2가지 혁명으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2024년 새해는 그런 이중의 혁명을 할 수 있는 재탄생의 기회로 주어졌다. 

1월은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이고, ‘지금, 이 시간’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기 인생의 창세기를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024년 새해의 행운과 평화를 기원한다.

* 필자와 모임의 동의를 얻에 이 글을 게재합니다. 글의 출처는 소식지 ‘성숙의 불씨’ 제867호 「새해의 의미」.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철학과현실> 책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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