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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죽음과 제2의 ‘인문학 위기 선언’
스승의 죽음과 제2의 ‘인문학 위기 선언’
  • 김기봉
  • 승인 2023.07.26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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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모임의 동의를 얻에 아래 글을 게재합니다. 글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소식지 ‘성숙의 불씨’ 제846호 「스승의 죽음과 제2의 ‘인문학 위기 선언’」 - 김기봉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서울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전에 인천에선 특수학급을 담당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에게 폭행을 당해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간 사실도 알려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학교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건수 기준으로 최근 6년간(2017∼2022년) 교원 상해·폭행은 1천249건이었다. 그중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경우는 2018년 165건에서 2022년 347건으로 4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전엔 주로 교사가 학생을 구타하거나 가혹행위 한 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됐지만, 이젠 반대로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그 같은 하극상 폭행은 인륜이 무너지고 있는 징조이기에 심각한 문제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추모 관련해 공지했다. 이미지=서울특별시교육청

세상에 살고 있지만, 행정상으론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아이들'은 인륜의 근본이 이미 붕괴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인간(人間)이란 한자의 뜻이 '사람(人) 사이(間)'인 것처럼, 인류 정체성은 관계로 형성된다. 인간이 맺는 최초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자기를 낳아준 부모다. 인류가 속해있는 포유류는 미발달 상태로 태어나서 어미젖을 먹어야 생존할 수 있다. 포유류 가운데 인간은 가장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은 서서 걷기까지 상당 시간 동안 타자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유별난 특징이 직립보행과 큰 두뇌다. 인류는 두 발로 서서 걸음으로써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또한 큰 두뇌 덕분에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지능을 갖게 됐다. 하지만 직립보행과 큰 두뇌는 모순된다. 직립보행으로 골반이 좁고 긴 구조로 변하면서 출산 과정에서 통과될 수 있는 아이의 머리 크기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인간은 신체뿐 아니라 뇌도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난다.

인간 두뇌는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으로 새로운 신경 회로를 만들고 기존의 회로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으로 발달한다. 미성숙하게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려면 부모의 보살핌과 훈육이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그것이 가족을 형성하며 사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원숭이들 가운데 그런 행동을 하는 부류가 없지는 않지만, 인간은 일관되게 어미가 새끼를 마주 보며 모유를 먹이는 거의 유일한 포유류다. 아이가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면서 모유를 먹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 감정 형성에 결정적 작용을 한다. 인간의 눈에는 눈동자가 향하는 방향을 상대방이 알 수 있는 공막이 있어서 서로가 눈을 마주칠 수 있기에, 다른 동물과도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모성은 아이가 세계를 이해하는 첫 번째 출발점이며, 그걸 토대로 이후의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

모든 생명체는 개체 수를 증가시키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한다. 유일하게 인류만이 근대 이후 출산 조절을 하는 문명을 만들어냈다. 한국은 그런 문명 진보를 가장 압축적으로 해서 세계 최고의 초저출산 국가가 됐다. 초저출산 사회가 될수록 모성은 퇴화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축복의 선물이 아니라 인생의 짐이 된 시대에 모성은 더는 인간성의 전형이거나 인간 감정의 원천이 아니다. 부모와 대화는 단절되고,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기보다는 스마트폰 문자와 카톡으로 소통하는 한편, 반려동물이 가족으로 진입한 시대에 인간의 무늬는 변형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무늬는 자연으로 주어진 게 아닌 교육으로 형성하는 인간성(humanity)이다. 인간만이 나를 낳은 생물학적 부모 이외에 사회적 부모에 해당하는 "먼저 태어난 사람"을 뜻하는 선생(先生)이 있다. 인간의 문화적 진화는 선생과 제자 사이 지식의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청출어람(淸出於藍)'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기술과 문화를 배우는 역 멘토링(reverse mentoring) 현상이 증대하고, 급기야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챗GPT에게 물어보는 시대에 사회적 부모로서 스승의 죽음은 예정돼 있다.

이 시대 스승의 죽음은 인문학의 위기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사진=펙셀

'그림자 아이들'과 스승의 죽음은 사회 문제의 차원을 넘어 인간성의 위기다. 모성을 기반으로 해서 인간 감정이 형성되고 공감하는 능력이 생겨났다면, '그림자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인간성은 피폐해지고 인간은 괴물로 전락한다. 디지털기술 문명 시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 관련 학과를 구조조정해서 반도체 관련 전공학과만을 키우면 인공지능만을 향상시켜서 인간이 기계에 의해 통제받아야 하는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도래한다.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고, 대신 그 감정을 반려 동식물이나 로봇에게 투영할수록 인문은 훼손되어 인간성은 말살된다.

21세기 인류는 환경적으론 인류세 기후위기, 내면적으론 인간성 위기라는 이중의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으로 의미가 있고, 그런 전환을 교육이 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교육의 본질은 탄생성(natality)이라 했다. "새로운 어떤 것을 해석하고 시작하는 능력, 즉 인간이 반드시 죽는다 할지라도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시켜주는 행위의 내재적 능력"이 탄생성이다. 포스트휴먼 시대가 도둑처럼 오기 전에 인간의 탄생성을 회복하는 인문 교육의 르네상스를 열어야 한다. 스승의 죽음을 애도하며, 제2의 '인문학 위기 선언'을 해야 할 때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철학과현실> 책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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