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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 교수, 인류세 지구생활자 위한 역사학 전환 제안
김기봉 교수, 인류세 지구생활자 위한 역사학 전환 제안
  • 최익현
  • 승인 2022.12.28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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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동계학술대회_‘정치사상의 지평에서 역사/역사학과 마주하기’ 탐색

“근대 역사학은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패러다임 전환을 하지 않으면 
고고학처럼 죽은 화석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세계화의 시대정신을 타고 부상한 한국의 글로벌한 문명사적 위치가 새로운 역사서술을 요청한다.”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 문자 시대에 갇힌 역사학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해서 집단기억을 축적하고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인류세 지구생활자로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그리고 넓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16일 서울 혜화동 방송대 대학본부 3층 소강당에서 열린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회장 강상규 방송대 교수·일본정치사상) 동계학술대회에서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사진)가 던진 주장이다. 이날 ‘정치사상의 지평에서 역사/역사학과 마주하기’라는 학제적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김 교수는 「‘폴리스적 동물’ 인간과 역사」를 발표, 국사에서 ‘글로벌 한국 문명사로의 전환’을 제안하면서 인류세 ‘지구생활자’를 위한 역사학의 필요성을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6일 방송대에서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동계학술대회가 열렸다. 역사와 정치를 별개의 영역이 아닌 서로를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였다.  사진=최익현

다중거울로 역사와 정치 성찰하기

이날 학술대회는 1부 ‘한국/동양 근대사와 정치사상의 만남’, 2부 ‘역사학과 정치사상’, 3부 ‘역사학과 정치사상의 창조적 대화를 위하여’로 진행됐다.

1부(사회 이희주·서경대)에서는 「근대전환기 박은식의 역사관」(노관범·서울대), 「독립과 자립의 사이에서: ‘한국문제’에 대한 몰라요씨의 문화횡단적 선택」(유불란·서강대),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를 다루는 새로운 시선」(신주백·연세대) 등의 논문이 발표됐다.

2부(사회 최연식·연세대)에서는 「天道가 있는가: 『史記: 列傳』을 통해 본 사마천의 역사기술의 특징」(김충열·경희대), 「삶과 역사의 변화와 정치사상: 동아시아 불교의 ‘일-변화 메타이론’을 중심으로」(김병욱·성균관대), 「‘폴리스적 동물’ 인간과 역사」(김기봉·경기대) 등의 논문이 소개됐다.

토론자로는 김태진(동국대), 이나미(한서대), 전상숙(광운대), 윤대식(한국외대), 박현모(여주대), 박홍규(고려대) 등이 참가했다. 3부 종합토론(사회 이택휘 서울교대 명예총장)에는 참가자 전원이 참여했다.   

강상규 회장은 개회사에서 “지금 우리는 거대한 과제와 문명사적 위기를 비롯하여, 기존의 정치학이나 역사학의 문법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근대문명의 복합위기 앞에서 역사와 정치를 다중거울로 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생각해보기 위해 이번 학술대회를 기획했다”라고 동계학술대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이러한 설명에 기댄다면, 이날 발표회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논문은 김기봉 교수의 「‘폴리스적 동물’ 인간과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김 교수의 발표 논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폴리스적 동물’이 인간의 본성이며, 존재의 원인인 동시에 최종 목표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 ‘폴리스적 동물’의 개념 수정을 조심스럽게 제안하면서 역사학의 새로운 과제, 혹은 새로운 역사학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하나는 한국 근대 역사학의 궤도 수정(국사에서 글로벌 한국문명사로 전환), 다른 하나는 인류세를 대비하는 역사학의 전환(지구생활자를 위한 역사학)이다. 물론, 그의 시도는 아직 거칠고 성기지만 경청할 만한 부분도 적지 않다. 

‘국사’에서 ‘글로벌 한국 문명사’로 전환 필요

김기봉 경기대 교수

김 교수에 따르면, 일본 근대 역사학은 랑케의 그 유명한 ‘국민국가의 서사’로서 국사를 받아들여 통치권의 주체로서 천황을 국체의 본질로 삼았다.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하는 일본 제국의 국가 정체성과 봉건사회의 근대적 재구성을 위해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각각의 역사서술을 고안해내는 것으로 근대 역사학 체계를 세웠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역사를 동양사, 국사, 서양사로 배분하는 3분과체제였다. 한국은 식민 지배를 통해 이 3분과체제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국사·동양사·서양사라는 3분과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이 체제의 극복을 고민했지만, 문제는 ‘대안’이었다.

바로 이즈음에 ‘문명사적 전환’이 발생했다. “마샬 맥루한이 말하던 ‘쿠텐베르크의 은하계’가 종말을 고하면서, 역사학은 탈문자 시대로 진화하는 지식 생태계에서 소외된 ‘갈라파고스(Galapaos) 섬’처럼 고립될 수 있”으며, “근대 역사학은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패러다임 전환을 하지 않으면 고고학처럼 죽은 화석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전락할 수 있다.”

2014년 조 굴디(Jo Guldi)와 데이비드 아미타지(David Armitage)가 했던 ‘역사학 선언(History Manifesto)’이, 동아시아 차원에서도 필요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 동아시아 차원에서의 ‘역사학 선언’, 새로운 역사서술을 요청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냐는 진단인데, 김 교수는 “세계화의 시대정신을 타고 부상한 한국의 글로벌한 문명사적 위치가 새로운 역사서술을 요청한다”라고 보고 있다.

요컨대 “근대화에 지각해서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의 이중혁명에 성공한 것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가 ‘국사’에서 글로벌 한국 문명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스트 코로나, 제6의 대멸종과 역사학 

두 번째 제안과 관련, 김 교수가 주목하는 지점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사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G2시대에 살고 있지만, 문명사적으로는 포스트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이끌 선도 문명이 부재한 G0시대를 살고 있다는 진단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종말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21세기 현재,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제6의 대멸종이 초래될 수 있는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폴리스적 동물’로서 인간의 존재방식과 정체성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는 인간은 자연에서 결코 분리돼 있지 않으며, 인류 역사는 인간들의 관계로만 전개되지 않는다는 각성을 해야만 지속가능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진단,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연결망의 규모와 복잡성만 달라졌을 뿐이지,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주장에 기댄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더 나아가 ‘우리는 오직 인간인 적이 결코 없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근대문명 모델은 분명 한계에 도달했다. 1억5천만년을 살다가 6천600만 년 전쯤 멸종한 공룡처럼 현생인류도 ‘인류세’라는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 것인가? 새로운 인간 정체성과 역사 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3부 종합토론에서는 현대 정치와 정치학이 가지는 단기적 사고의 사례 등에 관해 생각하면서 그 한계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예컨대 단기적 사고, 비역사적 사고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치학에서 말하는 위기(crisis)의 개념 정의 방식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학에서 위기란 시간적 급박성과 결과적 사태의 중요성에 의해 정의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사고하면 환경위기나 기후 위기, 에너지 위기 등은 자칫 위기로 인식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문명사적 위기 상황에서 위기에 대한 단기적인 처방이나 안목으로는 매우 심각한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언급이 이어졌다. 아울러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출’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인식과 접근방식이 필요할지도 논의했다. 

진지한 토론을 거듭하는 가운데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역사와 정치를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를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로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학술대회는 의미 있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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