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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R&D 예산삭감’ 미래를 갉아먹는다
졸속 ‘R&D 예산삭감’ 미래를 갉아먹는다
  • 송지준
  • 승인 2023.09.12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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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송지준 카이스트 교수

요즘 과학기술계에서는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 예산 삭감에 대한 반발(?)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R&D 예산 삭감이 가져올 파장을 꼼꼼히 살펴보면 단순히 과학기술계의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우려까지 이어지게 된다. 2024년도 예산안에서는 R&D 예산의 삭감폭이 16.6%로 가장 크다. 

더 우려되는 것은 R&D 예산의 삭감이 주로 연구에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순수 연구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R&D 예산의 효율화에 대해서는 백번 공감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효율화의 명목 으로 하는 예산 삭감이 사실상 연구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대한민국 군대의 효율화를 핑계로 ‘전투병력’만 대폭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예산 삭감의 배경에는 순수 연구비 예산이 손대기 가장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산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직접적인 연구비 삭감이 아니라, R&D 행정의 효율화와 예산이 적절한 곳에 쓰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먼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체 R&D 예산 중 12조원의 예산을 각 부처에 속해있는 20개가 넘는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각 부처의 담장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 기관의 효율적 운영이 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난 코로나19의 사태로 몇개의 토픽에 집중되었던 너무 많은 R&D 예산에 대한 고려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공항과 같은 SOC 등은 올해 짓지 않고, 1∼2년 늦어진다고 해도 일시적으로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대한민국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하지만, R&D 예산의 경우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이것은 마치 가정의 가계 긴축을 위해, 집의 리모델링 등의 비용은 증액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교육과 먹거리 비용을 대폭 삭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단 한 번의 예산 삭감이라도, R&D 예산의 삭감은 단순히 정부 출연 연구소와 대학의 연구 위축뿐만 아니라, 대학원생과 연구원 수를 직접적으로 감축시킨다. 

결국, 대한민국 과학기술 미래 인력의 양성을 위축시켜 대한민국의 연구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트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임펙트를 잘 알고 있기에 지금까지 R&D 예산을 한번 감액도 없이 꾸준히 증액해온 것이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과 함께 정부가 강조하는 R&D 정책의 하나는 국제 공동연구이다. 수 십년간에 쌓아온 과학기술 연구의 자산은 국제공동연구 등을 통해 서로 보완되며 더욱 발전시킬 수는 있지만, 타 기술이나 자원처럼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과학기술의 국가 안보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지는 새로운 시대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대한민국의 R&D 강화를 외면한 채, 국제공동연구를 통한 과학기술의 자산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옆집 공부 잘하는 친구의 공부 방법만을 배워오고 정작 나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지금의 세계를 리드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반도체, 자동차, 원자력발전 등의 기술 그 밑바탕에는 정부의 지속적인 R&D 투자와 이로 인한 연구인력의 지속적인 확충이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이번 R&D 예산의 삭감으로 인한 연구의 위축과 연구인력 양성의 위축으로 무너질 국가의 연구개발 생태계는 몇 년 후 그 예산을 증액한다고 해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무너진 연구 생태계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망가지게 되고,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었던 과학기술의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국가 R&D 예산의 대폭 삭감으로 인한 연구비의 삭감이야말로,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미래를 갉아먹는 정책이라고 확언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수 십년간 쌓아온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자산을 한순간에 상실케 하는 정책이라고 하겠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미래의 위기를 막기 위해 백 번이고 R&D 예산 삭감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송지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구조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생화학, 후성유전학, 분자생물학, 구조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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