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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먹기식 R&D? 인문사회 혁신 실패는 외면”
“나눠먹기식 R&D? 인문사회 혁신 실패는 외면”
  • 조준태
  • 승인 2023.08.14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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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원생노조 성명 발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했다. 사진=대한민국 대통령실

“진정으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사고를 조장하는 쪽은 누구인지 되짚을 필요가 있다.”

지난 9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하 대학원생노조)이 성명을 발표했다. 인문사회 분야를 향한 차별과 외면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했다. 이후 기재부는 경제·인문사회연구원 소속 정부출연연구기관 사업비를 올해 대비 30% 삭감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대학원생노조는 정부의 방침이 “무지와 무능에 기반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인구절벽이라는 현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몰두해 “정작 인문사회 분야의 운영과 혁신의 실패라는 뼈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생노조는 “기초학술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는 국가적 책임을 저버렸을 때 그 막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기형적으로 벌어진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 간 격차였다. 올해 학문 분야를 지원하는 정부 R&D 예산은 지난해보다 3.0% 늘어나 30조 원에 육박하지만, 그중 인문사회 분야에 할당된 예산은 총예산의 1.2%인 3천억 원에 불과했다. 대학원생노조는 “2021년 현재 과학기술 분야와의 비율은 무려 ‘92.1 : 7.9’의 수준”이라며 예산 지원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인문사회 분야 지원을 위한 전문법령의 부재도 언급됐다. 2021년 「기초학술기본법안」, 2022년 「기초학술기본법안」, 그리고 올해 「인문사회학술기본법안」이 마련됐으나 법안 통과를 위한 절차는 전무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 개발을 뒷받침할 전문법령이 직접 규율한 법제만 해도 25개에 달하는 것과 대비된다”라고 대학원생노조는 설명했다.

“명료한 예산 집행과 평가 기준의 정립을 비롯한 물적·인적 지원제도의 확립을 위해 법제 구축의 필요성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대학원생노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두 분야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곧 대학 내 연구와 교육 역량의 제고와 맞물림을 간과하고 있다”며 “자생적이고 지속가능한 학술지식장의 ‘발전’은 바로 이 문제들의 해결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성명 전문이다.

 

인문사회학술분야에 대한 차별과 외면, 더는 참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근본 문제에 임하라-

 

인문사회 분야의 곤궁한 처지가 날로 심화하고 있다. 생활에 쫓기며 자원봉사에 가까운 저임금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은 자조하지 않고자 애쓰며 내부로부터의 쇄신을 도모하고 있는데, 대학과 기초학문의 정체성 및 기능을 재설정하고 현 체계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응해야 할 국가와 정부는 정작 인문사회 분야의 운영과 혁신의 실패라는 뼈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생 인구절벽과 구조조정 정세 속에서 사각지대와 낭떠러지의 비유는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정부는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포획되어 단기간 내의 성과에만 매몰된 개발 담론을 추종하고 있다. 그 성과랄 것도 묘연할 따름이지만 말이다. 기초학술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는 국가적 책임을 저버렸을 때 그 막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된다. 인문사회지식은 앎의 토양으로서 격변하는 시대 속 인식의 심화와 전환을 유도하며, 손쉽게 정의되거나 분류할 수 없는 제 분야의 문제들을 근본부터 점검함으로써 한 걸음 더 진보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따라서 인문사회 분야를 비롯한 기초학문의 경시는 장기적 국가경쟁력을 파탄으로 이끄는 것은 물론, 개개인이 삶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안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정부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에 ‘K-팝’이며 ‘K-방역’을 자부하지만, 우리가 어떤 유산을 떠안고 있으며 어떤 과제를 계승해 지켜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이 대문자 ‘K’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정부는 이공계 분야 발전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공표하며 마치 인문사회계와 이공계가 대립 구도에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지만, 과학기술계 또한 연구환경 악화에 신음하며 집단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인문사회계 구성원들의 고투는 궁극적으로 과학기술계를 포함한 학술장 전체와 공명한다. 우리가 따져 묻고자 하는 것은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 간의 가공할 격차를 낳은 예산 편성의 틀이며,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한없이 쪼그라드는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근거하고 있는 국가의 왜곡된 비전이다. 자생적이고 지속가능한 학술지식장의 ‘발전’은 바로 이 문제들의 해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법령과 재정을 포함한 제도와 정책기관·집행기관 등 행정의 틀에서 인문사회 분야의 육성을 기획하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과 역할을 가진 전문적 기구들의 필요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명료한 예산 집행과 평가 기준의 정립을 비롯한 물적·인적 지원제도의 확립을 위해 법제 구축의 필요성을 요청하는 바이다.

현재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연구를 지원할 전문법령은 전무한 형편으로, 지금까지 2021년 정청래 의원 대표 발의의 「기초학술기본법안」, 2022년 강득구 의원 대표 발의의 「기초학술기본법안」, 그리고 2023년 유기홍 의원 대표 발의의 「인문사회학술기본법안」이 제시되었으나 법안 통과를 위한 절차가 이후 마련되지 않았다. 이는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 개발을 뒷받침할 전문법령이 직접 규율한 법제만 해도 25개에 달하는 것과 대비된다.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원은 국가적 차원에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당위적 영역임을 감안했을 때, 해당 법 제정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두 분야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곧 대학 내 연구와 교육 역량의 제고와 맞물림을 간과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기형적인 환경에 놓인 인문사회 분야에서의 연구 예산과 지원의 불균형을 짚고자 한다. 올해 학문 분야 지원을 위한 정부 R&D 예산은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30조 6574억 원이지만 이중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예산은 3000억 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총예산의 1.2%에 불과하다. 한국연구지원통계(KRS) 학술연구 분야 분류별 연구지원 실적을 참조하여 연구비 점유율을 확인해보면 2021년 현재 과학기술 분야와의 비율은 무려 ‘92.1 : 7.9’의 수준이다. 분야별 연구소와 전임연구원 충원율에서도 인문사회 분야는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 위치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 우려되는 지점은 윤석열 정부의 횡포에 가까운 예산 감축과 전 정권을 겨냥한 맹목적인 탄압이다. 얼마 전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2차 심의를 앞둔 시점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원 소속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사업비를 올해 대비 30% 삭감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경상비는 계속 삭감돼왔고 운영비는 동결인데, 사업비까지 삭감되니 덕분에 계획되었던 신규 연구과제들은 줄취소를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경제·인문사회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기관장은 모두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출신으로, 윤석열 정부는 ‘국정철학’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관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5개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의 출연금 20%를 삭감하는 내용을 담은 구조조정안 또한 발표되었으니, 사태는 인문사회 분야만의 것이 아니다. 다만, 예산이 본래 턱없이 부족한 인문사회 분야는 피해 수준이 막심하리라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학술생태계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그야말로 무지와 무능에 기반하고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출연연을 둘러싼 정치적인 압박과 무분별한 예산 삭감은 미래가 불안정한 대학원생들의 취업 기회를 일거에 축소시킨다. 진정으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사고를 조장하는 쪽은 누구인지 되짚을 필요가 있다. 국가와 대학 및 그 산학협력단이 학회나 연구자와의 비대칭적 관계를 심화시키며 각자의 책임을 방기한 일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국가가 빈약한 연구예산 배정을 넘어 일방적인 예산 삭감을 진행하고 정권의 입맛대로 기관과 구성원을 압박하려 든다면, 빈번하게 외쳐지는 ‘글로벌’ 학술장이나 ‘융합’ 지식의 장이 성립될 가능성은 요원하다. 

그렇기에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는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하나, 윤석열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맹목적인 구조조정을 중단하라. 
하나, 윤석열 정부는 인문사회 분야의 공적 지원에 대한 법률화·정례화를 추진하라.
하나, 윤석열 정부는 인문사회 분야의 차별과 불평등을 시정하라. 
하나, 정부와 대학 및 유관기관은 정책입안자들과 연구자들이 상호협의하여 학술주권을 회복하고 학술적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라. 


2023년 8월 9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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