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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와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오펜하이머와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 송병찬
  • 승인 2023.09.01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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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 송병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를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가 인기다. 영화뿐만 아니라 실제 인물과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전쟁과 격변의 시대, 오펜하이머로 상징되는 서방의 천재 과학자들은 과학과 정치, 창조와 파괴, 이상과 현실의 모순적 경계에서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뇌한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양면성은 실제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41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수행에 필요한 연구개발을 위해 ‘과학연구개발실(OSRD)’을 설립, 영화에서도 잠깐 등장하는 인물인 MIT 교수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OSRD가 수행했던 2,500여 개의 연구개발 과제 가운데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가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책임자였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성공은 미국이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위상과 정치경제적 패권을 갖는데 주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사진은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이다. 

1945년 ‘과학, 끝없는 개척’ 보고서의 의미 

전쟁을 통해 과학기술의 ‘힘’을 실감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평화 시기에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부시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1년 뒤인 1945년 부시는 ‘과학, 끝없는 개척(Science, The Endless Frontier)’이라는 공개서한 형태의 보고서를 통해 국가방위, 경제발전, 국민보건의 초석이 되는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대학과 국립연구소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을 주장해 미국국립과학재단(NSF) 창립 등으로 국가 과학기술 지원 체계가 갖춰지게 되었다. 오펜하이머가 책임자였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성공은 미국이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위상과 정치경제적 패권을 갖는데 주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R&D 예산 1년 만에 4.9%에서 3.9%로 떨어져 

최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기재부 자료에 따르면, 건전재정 기조로 전체 예산은 2.8%(18.1조 원)가 증가한 656.9조 원으로 책정되었는데, 12개 주요 부문 중 3개 부문은 예산이 줄었다.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연구개발(R&D)로 재정 정상화 부문으로 분류되어 전년대비 16.6%(5.2조 원)가 삭감된 25.9조 원이 책정되었다.

전체 예산에서 R&D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만에 4.9%에서 3.9%로 떨어졌다. 전체적인 재정 여건과 지난 정부 5년 간 R&D 예산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발생한 비효율이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등의 연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 미래를 준비하고 성과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R&D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현장의 우려를 최소화하고 예산 효율화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와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하위 20% 과제 일괄 연구비 삭감’ 방식은 지양해야

첫째, 가능한 천천히 줄여야 한다. 급속한 예산 증가가 비효율을 가져왔다면 줄이는 과정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불필요한데 지원하는 것 못지 않게 필요한 곳에 지원하지 못하는 것도 비효율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원 중인 과제는 경쟁을 통해 선정된 우수한 과제들임을 감안해서 ‘하위 20% 과제 일괄 연구비 삭감’과 같은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게임체인저가 될 원천기술이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는 기초연구 분야는 특히 더 그렇다. 미국도 그런 이유로 1977년 연방보조금협약법 제정 이후 연구비에 있어서는 보조금(grant)을 뿌려주고 나눠주는 식으로 폭넓게 연구자를 지원하고 있다. 

연구자에 대한 믿음 흔들려선 안된다

둘째, 연구자들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연구비 편취, 과제 선정 짬짜미, 성과 부풀리기 등과 같은 과거 또는 일부의 사례를 일반화해 그대로 정책에 반영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일부 부적정 사례가 예산 삭감의 원인이 된다면 예산 증액을 위한 훨씬 더 많은 성과사례가 제시될 수 있다. 

한 때 ‘연구비 블랙홀’로 불리던 기초과학연구원 소속의 국내 석학은 축적된 연구역량을 발휘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가 발생한지 수개월만에 세계 최초로 RNA 전사체를 분석해내 치료제 개발에 기여했다.

1992년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발사된 후 30년만에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해 1톤 이상의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되었다. 현재 세계를 이끌어 가는 이차전지 기술도 10년 전부터 대학과 정부출연연 연구자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기업들과 기초연구부터 해온 결과물이다. 문제는 문제대로 해결하되 훨씬 더 많은 연구자의 사기는 계속 살려줘야 한다. 

출산·육아·교육 등 미래 준비 예산은 사회적 합의 필요

셋째, 이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올해 2월, 정부는 2030년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을 비전으로 2027년까지 17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을 발표했다. 현 정부 국정과제(74-2)를 근거로 ‘어려운 재정 여건에도 정부 예산의 5%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연구계도 다른 한편에서 국가의 미래를 준비한다고 볼 수 있는 출산·육아·교육 등의 부문에서는 수 억원의 예산으로도 많은 국민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단적으로, 수백억의 예산이 수반되는 R&D 과제 예비타당성 심의에서는 그러한 기회비용이 검토되지 않는다. 차제에 전체 예산에서 R&D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 규모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이룬 뒤 앞으로는 흔들림 없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 

R&D 예산의 효율화는 연구자와 함께 할 수 밖에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로 요약되는 홀데인 원칙(Haldane principle)은 서구 과학기술이 꽃핀 영국의 오래된 연구정책이다. 과학기술 퍼스트 무버(first-mover) 선진국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세계 최초 및 최고의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정적인 지원이 되지 않으면 연구자들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뛰어들 수 없다. 100%에 가깝다는 한국의 연구과제 성공률이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다. 결국, R&D 예산의 효율화는 연구자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송병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현재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국책사업평가1팀에 있다. 연세대에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학위 과정에 있으며, 한국연구재단에 2006년 입사 이후 BK21, 산학협력, 원천연구, 기초연구, 성과관리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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