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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학술기본법’ 통과될 수 있을까…공감대 형성이 절실
‘인문사회학술기본법’ 통과될 수 있을까…공감대 형성이 절실
  • 김재호
  • 승인 2023.06.2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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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학술 기본법 토론회

“현재까지는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연구를 지원할 전문법령이 전무한 형편이다.” -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대학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와 교육 역량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고, 학문 후속세대의 고갈을 염려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 위행복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대표회장

최근 유기홍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인문사회학술기본법안」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논의가 펼쳐졌다.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인문사회학술을 위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는 유기홍 의원과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이하 인사총)가 공동주최하고, 한양대 한국미래문화연구소에서 주관했다. 

유 의원은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려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두 분야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법안의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그는 “기술적 대응과 함께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력, 종합적 사고력이 중요해졌다”라며 “인문사회적 역량의 뒷받침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인문사회학술을 위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유기홍 의원실

 

인문사회는 그 자체가 존재 목적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을 위한 법제구축의 필요성」을 발표했다. 한 교수는 지난 2009년 사라진 건국대 히브리중동학과의 사례를 언급했다. 이 학과의 소속 교수는 폐과 이후 7개 학과를 전전하다 퇴임했다. 그만큼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원은 대학 내에서도 소원한 셈이다. 

한 교수는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지원을 뒷받침할 전문법령의 부재를 지적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전문법령은 「과학기술기본법」부터 「국제과학기술협력규정(대통령령)」까지 25개에 달한다. 또한 현재 교육청, 광역단체, 기초단체가 총 37종의 과학기술 분야 관련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 인문사회 분야는 「학술진흥법」 1개에 기대고 있으나, 인문사회 분야에 특화된 법령이 아니다. 한 교수는 “현재까지는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연구를 지원할 전문법령이 전무한 형편”이라고 일갈했다. 

그래서 2021년 3월 「기초학술기본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한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존 법률과의 유사중복 및 연구현장의 우려 방지, 정책 수립·집행의 효율성 등을 고려할 때 법 제정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라며 “이후 법안 통과를 위한 국회차원의 절차가 더는 취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인문사회는 산업발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존재 목적을 지닌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인문사회학술위원회의 설치,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에 대한 공적 지원, 인문사회학술정책연구원(가칭)의 설립을 제안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인문사회(학술)기본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김재호

 

학문 후속세대가 고갈되는 건 아닌가

‘과학기술 대 인문사회’가 기울어도 너무 기운 운동장이라는 비판도 다시 제기됐다. 위행복 인사총 대표회장(한양대 명예교수·중국문학)은 「인문사회 분야의 공적지원을 정상화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를 발표했다. 그는 “대학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와 교육 역량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고, 학문 후속세대의 고갈을 염려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위 회장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예산 지원은 10년째 여전히 3천억 원 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 대 인문사회’ 연구비 점유율은 점점 더 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이다. 한국연구지원통계(KRS) 학술연구 분야 분류별 연구지원 실적을 참조해 백분율로 환산했을 때, 2020년 ‘91.2:8.8’, 2021년 ‘92.1:7.9’이다. 인문사회는 전체 연구비 중 약 8% 수준인 셈이다. 특히 연구비 수혜율을 보면, 자연과학이 57%, 공학이 52.8%이지만, 인문학은 10.2%, 예술체육학은 8%이다. 위 회장은 “빈약한 연구예산 배정과 낮은 선정률이 악순환을 빚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인문사회계열 및 이공계열 전임·비전임 교원 수를 비교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인문사회 분야 전임 교원 수는 3만2천365명, 비전임 교원 수는 7만1천912명이다. 인문사회 비전임 교원 수는 전임에 비해 2배가 넘는다. 반면 과학기술 분야 전임 교원 수는 5만535명, 비전임 교원 수는 5만1천7명이다. 위 회장은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대학이 아니면 출구가 없다”라고 우려했다. 

분야별 연구소와 전임연구원 현황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전임연구원 충원율을 보면, 예술체육학이 전체 8개 분야 중 8위(0.19), 사회과학 분야가 7위(0.37), 인문학 분야가 6위(0.57)이다. 전임연구원 충원율은 연구소 1개소 당 연구원 수의 평균을 뜻한다. 이 때문에 위 회장은 인문학의 경우 “대학은 기본적으로 연구기관”이라며 “연구인력 유지 없이 어떻게 인문사회 역량을 키울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대학과 사회적 수요 간 ‘미스매치’라는 지적은 연구인력 유지가 우선이라는 뜻이다. 그는 “대학의 연구와 교육 역량은 늘 적정한 규모로 유지돼야 한다”라며 “그래야만 수시로 변하는 사회적·산업적 변화로 인한 요구에 대학이 탄력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대학이 지식창출을 담당하는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지원도 마찬가지다. 위 회장은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 ‘학생인건비 사용기준’을 제시하며 “과학기술 분야의 박사과정 재학생은 월 250만 원 이상을 받지만, 인문사회 분야 박사과정 재학생은 25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없다”라며 “연구비 규모가 영세한 데에서 기인한 고육지책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행복 인사총 대표회장(한양대 명예교수·중국문학)은 「인문사회 분야의 공적지원을 정상화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를 발표했다. 위 회장은 과학기술 대 인문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지적했다. 사진=김재호

 

문화산업 승패 결정하는 ‘인문사회문화예술’

인문사회학술은 문화산업의 근간이 된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2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드라마 분야에서 한국 문화콘텐츠의 인기 요인 1위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31.6%)였다. 위 회장은 “문화산업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상상력과 통찰력, 감수성, 표현력 등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소양과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인문사회학술은 공생과 공존의 성숙사회 구현의 토대이자 주동력원이며 구체적 실행의 플랫폼이다.” 이 외에도 △소프트 파워 신장과 국가브랜드 제고 및 국가경쟁력 강화: 역사와 문화 증진 △디지털 시대를 대비하는 국민들의 교양 증진: 편향된 알고리즘 극복 △지역소멸 문제 해결에의 기여: 경제(물류)와 함께 필요한 문화의 흐름(문류) △문명대전환 시대에 올바른 대처: 팬데믹과 기후변화의 인류세 시대에 인간중심주의 벗어나기 △다문화사회의 순조로운 정착 등이 강조됐다. 

위 회장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공적지원을 법률화·제도화·정례화하고 민관의 관계망을 구축할 제도적 기반을 수립해야 한다”라며 “학술정책을 수립하고 관장한 컨트롤타워 부서를 분명하게 설정하면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한편,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박인철 전국사립대인문대학장협의회 회장(경희대 철학과)은 학문들 간 상생과 감성 측면에서의 교육(Bildung)을 강조했다. 황소연 전국국공립대인문대학장협의회 회장(강원대 일본학전공)은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콤플렉스 극복과 한국사회의 각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인문사회를 강조했다. 

김대건 전국국공립대사회과학대학장협의회 회장(강원대 행정학과)은 국가공동체의 현실과 지역 인문사회 연구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백원담 HK연구소협의회 회장(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은 한국학을 주창할 수 있는 자기 담론과 포스트 지구화 담론을 역설했다. 

유기홍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인문사회학술기본법안」이 정말로 통과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 후 종합토론이 펼쳐졌다. 사진=인사총

 

과학기술계 설득해야 가능한 인문사회학술기본법

지속가능한 인문사회학술을 위해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관련 법안 「인문사회학술기본법안」(유기홍 의원 등 11인, 2023년 6월 22일), 「기초학술기본법안」(강득구 의원 등 20인, 2022년 12월 8일), 「기초학술기본법안」(정청래 의원 등 10인, 2021년 3월 24일)이 이미 발의돼 있다. 하지만 이 세 법안은 모두 야당 의원들이 발의했다. 「기초학술기본법안」(강득구 의원 등 20인)에만 무소속 2인, 정의당 1인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여당 의원 없이는 법안 통과가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내년 총선인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 자동폐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과학기술계를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기존 법률이나 과학기술 분야와 중복되는 기초연구 등에 대한 범위 규정에 대해 그동안 토론회 등에서 제기된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사회는 다양한 의견만 제시돼 단결이 안 되고 절박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인사총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고사 직전인 인문사회 분야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인문사회 학술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논리와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과학기술계와의 직접적인 비교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지원에 적정한 ‘비율’을 설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기술 관련 법령이 과학기술 분야의 학술 발전을 위해 제정된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도를 넘는 통제에 의한 부작용도 걱정해야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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