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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본법’ 제정, 국가 성숙성장에 기여한다”
“‘학술기본법’ 제정, 국가 성숙성장에 기여한다”
  • 강일구
  • 승인 2023.04.2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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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학술기본법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 토론회
이강재 교수, “‘학술진흥법’ 확대인지 ‘학술기본법’ 제정인지 정해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는 지난 21일 국회에서 '학술기본법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는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위원회 이사장과 유기홍 의원, 김종민 의원이 참여했다.

“이제는 국가의 개발을 통한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서 ‘국가의 성숙을 통한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단계다” 

‘학술기본법’ 제정이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김월회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학술기본법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때 취했던 모방형·추격자형 개발성장 패러다임에서는 성장과 발달을 지속할 수 없다며 ‘학술기본법’ 제정이 ‘성숙성장 발전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발제에 앞서 ‘인문’의 개념을 정의했다. 그는 ‘인문’이 ‘사람다움’을 뜻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처럼 분과학문에 기초한 개념보다 사회적 함의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른 국가 인문정책도 단순한 인문학 진흥을 넘어 정부가 인간다운 삶과 사회의 실현을 위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학술기본법’의 제정이 ‘인문학의 진흥’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사회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학술기본법’ 제정 근거 중 하나로 김 교수는 선진국형 ‘성숙성장 발전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그는 산업화 시기 과학입국 단계에서는 과학기술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지만, K베터리·K반도체·K방산 등 첨단기술을 보유한 과학흥국의 단계에서는 인문사회학술을 기반으로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며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기에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또한, 사회 내부 부조리와 갈등을 진단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데 있어서도 인문 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말로 활용되는 피로사회·위험사회 등의 용어를 소개하며 “우리나라는 선진국 단계에 있음에도 시민들의 삶과 생명이 총체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국회에서 발표한 ‘청년세대의 부정적 미래인식과 개선 방안’ 자료를 인용하며 “미래세대를 낙관하는 20대는 6.5%, 30대는 10%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격하고 극적으로 흘러가는 소모사회 현실을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학술기본법’ 제정이 국가 인문역량의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선진국 단계에서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일구기 위해서는 어느 정파가 집권하는지와 무관하게 국가의 현실 개선, 미래 기획은 중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한다”라며 이를 위한 토양 조성을 ‘학술기본법’이 뒷받침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제고된 인문역량을 통해 중장기적 안목으로 이행돼야 하는 의제로 △다문화·다민족 사회의 연착륙을 통한 인구절벽 극복 △지역 소멸 방지 △해외 국익 생태계 조성 △동아시아 역내 평화체제 구현 △가짜뉴스 등 인포데믹 해소 등을 들었다. 

이 외에도 김 교수는 △글로벌 선도국가로의 성숙·도약 △문명 패러다임의 대전환 선도 △국가적 글로벌 난제 해결의 능동적 참여 △‘글로벌 한글문화권’의 창달’ 등 보편적 문명국가로서의 한국을 구현하기 위해 ‘학술기본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인문 정책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인문사회 분야도 학술 정책 다룰 전문기구 신설 필요”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장을 맡고있는 강성호 순천대 교수(사학과)도 ‘학술기본법’ 제정에 동의하며 가칭 ‘한국인문사회기획평가원’ 신설도 제안했다. 강 교수는 “이공 분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같은 과학기술정책 전문기구가 있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인문정책특별위원회 등에서 학술정책을 부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라며 “인문사회학술 정책 전반을 체계적으로 다뤄야 하는 전문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고등교육에 대한 공교육비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향상하기 위해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의 재원도 계속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정병호 고려대 교수(전 전국사립대학인문대학장협의회장)는 문과대학 학장을 하던 시기의 경험을 통해 현재 인문학 위기의 본질이 인문교육에 있다고 짚었다. 정 교수는 먼저 1980~1990년대와 현재를 비교하면 인문학 연구자의 수준은 올라왔고 인문학을 향유하는 대중도 증가했다고 봤다. 그러나 인문교육은 사회적 수요와 맞지 않은 점이 있었다며 “학장 때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교육진단을 했다. 당시 학생들은 ‘밖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학술기본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인문교육의 통합적 생태계 구축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HK 사업을 보면, 인류세, 디지털 대전환, 기후위기 등 다양한 선도적 요구 부응하는 연구가 진행된다. 그런데 HK 사업이 끝나면 연구하던 사람들이 기존 학과로 돌아가 책임시수를 채운다. 사업 때만 선도적 문제의식에 부응한 연구를 하고 학과에서는 기존 교육을 한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학술기본법’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기초 자연과학의 진흥에 머물지 않고 기초학술 분야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술과 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방향으로 설계돼야 하며, 이렇게 됐을 때 법률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강태경 전국대학원노동조합 전 정책위원장은 대학원생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이유 중에는 안정적으로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다는 원인도 있다고 밝혔다.

강태경 전국대학원노동조합 전 정책위원장도 ‘학술기본법’의 제정 취지에 공감했다. 강 전 위원장은 “고등교육 교원은 해외 박사들로 충원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고, 고등교육 양성과정도 해외 대학에 의존하며 국내 대학들은 박사 양성에 소홀했다”라고 비판하며 “냉정히 말해 인문사회 분야 운영 실패의 뼈아픈 현실”이라고 짚었다. 또한, 아직 인문사회분야에 국가 연구과제를 하려면 4대보험 가입을 포기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있다며 이는 대학에서 가르칠 사람을 양성할 체계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B유형이 인기있는 데에는 이러한 제도의 부재 탓도 있다고 말했다.

강 전 위원장은 “대학원생들이 해외 유학을 선호하는 이유 중에는 학술적 우수함도 있지만 ‘펀딩’에 있다”라며 해외대학에서는 “박사과정 동안 일정량의 조교노동과 연동된 ‘등록금 면제+생활비+사회보장서비스’라는 안정화된 학위과정을 입학허가 전에 약속 받는다”라고 했다. 대안으로서는 박사과정 연구자의 연구역량을 평가해 3~5년 펀딩을 받는 연구·교육 노동자 고용과정이자 양성과정으로 박사과정을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인문사회 학습의 핵심은 언어와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교·강사 범위의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학부교육에 대해 대학원생을 교육조교로 동참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학술기본법’의 대학평가, 인문정책 지원에 기여할 것”

이강재 서울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학술진흥법’의 확대가 필요한 것인지 ‘학술기본법’을 제정할 것인지 앞으로 논의돼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특위위원을 맡고 있는 김귀옥 한성대 교수(소양·핵심교양학부)도 '학술기본법' 제정에 동의했다. 김 교수는 “이공계열 대 인문사회계열 연구 지원비가 99대1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부가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계, 특히 기초인문사회계열의 연구자들에게는 열패감과 냉소적 태도가 내재화돼 있다”라며 “이제는 인문학 위기를 말하려는 연구자는 소수다”라고 말했다. 인문사회 분야의 현실을 해결할 대안으로 그는 학문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위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인문정책특별위원회위원장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도 의견을 보탰다. 그는 ‘학술기본법’이 제정돼야 하는 이유로 대학을 평가할 수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김 교수는 “정명호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인문학이 교육과 연결이 되지 않고 인문 관련 연구 지원이 어려운 것은 대학이 세상의 변화에서 가장 동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라며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대학을 바꾸는 방법은 평가밖에 없다. 이전까지는 인문·사회와 관련된 평가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인문정책특별위원회 위원 이강재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학술기본법’ 제정 방법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학술기본법’이 제정되면 앞서 언급된 사안들은 해결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학술진흥법’의 확대가 필요한 것인지 ‘학술기본법’을 제정할 것인지 앞으로 논의돼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기초과학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고민할 지점이 있다고 했다. ‘학술기본법’이라고 법의 이름을 정할 때 “기초과학과의 관계에 있어 인문사회계에서 생각하는 기초학술 개념과 외부에서 보는 게 다를 수 있다”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인문사회 분야는 법적인 부분이 미비된 것이 많지만 과학기술계는 20개 가까운 법이 작동하고 있다며 이에 맞게 인문사회 관련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도 고민할 것을 제안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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