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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무비 그리고 시네마
필름, 무비 그리고 시네마
  • 김세익
  • 승인 2021.07.21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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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김세익 경희대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전임연구원

TV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1950년대 초중반 무렵부터 미국의 영화업계 사람들은 이제 누구나 집에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니 영화산업이 곧 붕괴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드러난 바는 이런 우려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것이다. 

확실히 TV는 영화업계가 유지해오던 일군의 ‘방식’을 고사시키긴 했다. 191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활발히 제작됐던 시리얼 영화(Serial), 즉 ‘주말연작영화’가 그것이다. 시리얼 영화는 매 주말마다 회당 릴 두 권 분량으로 총 10~15회의 에피소드를 상영하던 방식의 영화였고 선악이 명확히 구분되는 단순 명쾌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같은 특성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주말드라마의 문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환기하면, 어쩌면 시리얼 영화는 TV의 드라마 문법에 흡수당한 셈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하지만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황금기를 누리던 미국 할리우드가 TV 때문에 몰락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할리우드 특유의 공장제 시스템과 맞물려 TV드라마 문법과 상이한 구조의 이른바 시리즈물(Series)이 서부극을 필두로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점진적으로 진행된 전 세계 배급망 구축은 할리우드를 지구 문화의 선도자 비슷한 위상으로 격상시켰다. 당시 할리우드의 제작 방향성은 오늘날 상업 영화시장의 원형적 모습을 태동시켰다.

20여 년이 흐른 후 영국 팝 듀오 버글스가 진단한 ‘Video Killed The Radio Star’(1979)를 곱씹어보면 오히려 TV가 붕괴시킨 것은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라디오였다. 문화 향유 방식의 변화를 야기하는 동인으로는 ‘감각의 혁명’이 ‘양식(樣式)의 혁명’보다 우세한 것이 분명해보인다.

현재 대두되고 있는 강력한 질문-‘OTT시장이 부상하면 기존의 영화산업은 곧 붕괴될까?’-은 기본적으로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다. 기존의 TV가 그랬듯이 아마 영화산업 자체가 붕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영화산업은 OTT시장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소폭의 또는 큰 폭의 리포지셔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 리포지셔닝 이후 남게 되는 영화의 모습이 과연 어떠할까’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외적 변수는 OTT시장이 크게 활성화되는 상황을 자꾸만 예상하게 만든다. 차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OTT시장은 그 확산도가 영화배급시장의 규모를 넘어서는 시점부터 압도적인 글로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꽤 장기적인 호흡 속에 현재 OTT업계가 가장 사랑하는 서사전개 방식인 TV미니시리즈 문법이 전지구적인 주류 영상서사 문법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러면 기존의 영화업계는 정체성 유지를 위해 결국 운명적인 삼지선다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하나는 OTT채널의 양식혁명에 무릎을 꿇고 ‘영화’ 카테고리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위치로 전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 디바이스가 담아낼 수 없는 대규모 스펙타클을 제공하는 극대화된 상업 콘텐츠로 감각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모든 종류의 효율성을 포기하고 거장 감독들의 예술혼을 현재의 극장 시스템 속에서 현현시키는 ‘문화예술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삼지선다는 복수정답으로 귀결될지도 모르겠다. 흥미롭게도, 영화를 이르는 용어 ‘Film’이 영화의 물성을, ‘Movie’가 영화의 상품적 속성을, 그리고 ‘Cinema’가 영화의 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관점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위의 삼지선다는 결국 오늘날 ‘영화’를 이루는 가치 중 어느 것이 취사선택되느냐와 직결되는 선택지라고 하겠다. 70여 년 전 TV가 영화로부터 ‘가벼운 오락성’을 떼어가며 물성, 상업성, 예술성을 남겨놓았다면 이제 OTT시장은 영화로부터 무엇을 떼어가고 무엇을 남겨놓을지에 관한 담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이 수용자가 우위에 서 있는 수용미학의 시대라는 점은 OTT시대 기존 영화업계의 입지에 대해 불확실성을 키우는 중요한 요소다. 종국엔 대중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한 대중은 다중 집합시설인 영화관에 대해 마냥 이전처럼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고, 모든 흐름은 아마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될 것이다.

 

 

 

 

김세익
경희대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전임연구원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경험서사이론으로서의 트랜스아이덴티티 연구-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처의 모든 현상 속에 깃든 이야기에 대해 탐구하는 잡식성 스토리텔링 연구자로 특히 영화, 애니메이션, 공간, 디지털, 브랜드, 디자인, 슈퍼히어로물 등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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