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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영화, 뤼미에르의 영화
에디슨의 영화, 뤼미에르의 영화
  • 강성률
  • 승인 2021.08.18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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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이제까지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영화를 싫어한다고 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 스스로는 영화가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한다.

정말 영화란 무엇일까?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나의 전공은 영화학이다. 주위에 있는 동료 교수들은 영화가 전공이니, 재밌는 영화도 관람하고 예쁜 배우들도 만나며, 또 그걸로 돈도 벌어먹고 사니 참 좋겠다고 부럽다는 듯이 말한다. 다들 바쁜 강의 시간에 시사회에 영화를 보러 간다며 점심을 먹자마자 나가는 나를 보면 그런 질투는 더욱 심해진다. 한마디로 팔자 좋다는 것이다. 강의를 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영화를 보여줄 수 있으니 강의마저 편하다고 웃음 띤 채 말을 건네기도 한다. 나는 이분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전공했으니 좋겠다는 부러움을 대부분은 농담으로 건네는 것이지만, 내가 이 말을 들으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확히 13년 전에 광운대에 부임했을 때, 처음으로 교수 수련회에 갔다. 저녁에 공식적인 자리가 끝난 뒤 여러 선배들께 인사를 드리려고 테이블을 돌거나 방을 찾아갔을 때 교수님들이 하신 이야기는 거의 비슷했다.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은 뒤 영화라고 답하면 ‘재미있는 것 하셨네’라며 웃으시고, 자신도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나에게 아느냐고 물은 뒤 자신의 설명과 해석을 길게 했다. 이것은 거의 예외가 없었는데, 나는 그 분들 앞에서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영화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대화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그들인 것이다.

가령 사학을 전공한 분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를, 영문학을 전공한 분은 영미문학이 원작인 영화나 유학 시절 좋아했던 영화를 이야기했다. 건축학을 전공한 분은 건축적 특성이 돋보이는 영화를, 물리학을 전공한 분은 물리학적 세계가 잘 그려진 영화를 좋아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아, 그러셨군요”, “아, 녜” 정도의 상투적인 것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건넸지 나의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전공에 대해 비전공자가 이토록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될까? 몇 번 이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영화라는 매체가 무척이나 파급력이 크다고. 이제까지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영화를 싫어한다고 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는 자신만의 생각 안에 있는 영화이지, 학문의 대상으로서의 영화가 아니었다.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령 국어국문학과에 국어학과 국문학의 전공이 있고, 다시 국문학은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으로 나뉘듯이, 영화학 안에는 영화이론과 영화 제작이 있고, 다시 영화 이론 안에는 영화사, 영화이론, 장르론, 비평론 등이 있다고 이야기해야 이해를 할까?

그 이전에 나 스스로도 영화가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한다. 정말 영화란 무엇일까? 가령 최초의 영화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이고, 바로 이어서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가 등장했다. 에디슨의 것은 개인이 홀로 기계 안을 보는 방식이었고, 뤼미에르의 것은 어두운 공간에서 다수가 큰 스크린으로 보는 함께 방식이었다. 알고 있는 것처럼 뤼미에르의 것이 경쟁에서 승리해 영화의 이름마저 불어인 시네마가 되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이루고 있는 지금은 OTT를 통해 다시 에디슨의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그렇다면 ‘시네마의 조건들(Cinematic Apparatus)’은 어떻게 되는가? 영화의 정의는 변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시네마는 폐기되고 키네토로 명해야 하는가? 이처럼 영화의 정의는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라고 읽지만 다른 의미의 Movie, Cinema, Film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한다. 이렇게 보면 자신의 명확한 영화관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나는 부럽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강성률 광운대 문화산업학부 교수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박사, 광운대 문화산업학부 교수, 저서로 『상처의 응시』, 『한국 영화에 재현된 가족 그리고 사회』, 『영화 비평 – 이론과 실제』, 『영화는 역사다』, 『영화 색채 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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