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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칠레, 숫자로 보는 불평등의 허와 실
[글로컬 오디세이] 칠레, 숫자로 보는 불평등의 허와 실
  • 임태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 승인 2021.04.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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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9년 10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반정부시위에 참가한 시위자. 사진=AP/연합
2019년 10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반정부시위에 참가한 시위자. 사진=AP/연합

 

라틴아메리카는 불평등이 심각한 지역이며 칠레는 항상 그 논란의 중심에 있곤 했다. 칠레는 재민주화 이래로 역내 주요 국가 중 1인당 GDP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주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주변 국가들에 비해 안정적이고 청렴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칠레에게 불평등은 언제나 큰 약점으로 지적되곤 했다. 최근에는 사회적 폭발이라 일컬어지는 초유의 반정부 시위 사태를 겪으며 칠레의 불평등은 다시 비난의 표적이 됐다.

 

지니계수·공공복지 지출 따져보면

 

하지만 불평등의 객관적 지표인 지니계수로 본 칠레의 불평등은 사실 라틴아메리카에서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상대적 경제적 선진국들의 집합인 OECD 내에서는 칠레가 후진적인 위치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정치·경제적 발전 정도에서 비슷한 수준을 지닌 라틴아메리카 역내 국가들과의 비교에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 21세기 들어 지니계수의 변화 추이를 봐도 칠레는 눈에 띄는 악화 없이 꾸준한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렇게 볼 때 칠레가 불평등의 대명사로 비판을 받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국가의 공공복지 규모에 있어서도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준수한 면모를 보여준다. 칠레 중앙정부가 국민 1인당 지출하는 복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다. 우루과이 정도만 근접한 수준을 보일 뿐, 급진 좌파 정권을 포함한 기타 역내 국가들과 비교해 월등한 공공복지 지출을 기록하고 있다. 그 추세 또한 꾸준히 증가하여 2006년에서 2018년까지 2배가량늘었다. 국민에 대한 공공복지의 양적 증가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라고 비판받는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칠레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높은 불평등 감각

 

그렇다면 칠레의 불평등은 허상인가?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지니계수와 같은 객관적 지표와 달리, 칠레 국민이 느끼는 주관적 박탈감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라틴아메리카 대상 여론조사 기관인 라티노바로메트로가 역내 주요 18개국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최상위인 1인당 GDP에도 불구하고 칠레 국민은 자신의 소득이 생필품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자신의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인식도 매우 부정적이다. 중상류층 이상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 반면, 중하류층 이하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매우 높았다. 또한 자국의 소득 분배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다. 소득 분배가 불공정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국가 경제가 파탄의 지경에 이른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앞서 지니계수로 본 불평등에 있어서 칠레가 역내 국가들에 비해 부정적이지 않은 면모를 보여준다는 관찰과 대조적이다.

이와 같이 소득과 불평등에 대한 칠레 국민의 매우 부정적인 주관적 인식은 지니계수와 같은 객관적 지표를 기반으로 측정된 불평등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을 반증한다. 이는 객관적 수치로 본 소득 수준의 향상과 중산층의 증가가 국민의 기대를 상승시킨 반면, 국가가 충분한 역량과 의지로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며 높은 교육 수준을 달성한 중산층이 노동 시장에서 기대만큼의 경제적 보상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신흥 중산층의 경제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하류층과의 소득 차이도 매우 작은 실정이다.

객관적 지표로 보는 칠레의 불평등과 실제 국민이 느끼는 주관적 박탈 사이의 심각한 괴리는 칠레 정부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접근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칠레는 1990년 민주주의의 회복과 함께 기존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형평성 있는 성장(growth with equity)’이라는 수정주의 접근을 도입했다. 기존의 정책이 불평등의 악화를 초래한 것에 대응하여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빈곤 감소 효과를 노리는 선별적 복지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불평등 해소를 가져오지 못한 이상, 칠레 정부는 복지 제공자로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임태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라틴아메리카지역학 석사, UCLA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학술이사와 외교부 중남미분과위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칠레 사회적 폭발의 사회·경제적 원인」(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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