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9-30 17:13 (금)
[글로컬 오디세이] “30페소가 아니라 지난 30년이다” 외친 칠레의 본심
[글로컬 오디세이] “30페소가 아니라 지난 30년이다” 외친 칠레의 본심
  •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 승인 2021.01.20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컬 오디세이_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한국어로 세방화(世方化)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로 ‘세계적 경제 시스템의 통합과 지역별 정치문화의 분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경향성’을 가리킨다. 영국의 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이 만든 말이다. 금융과 무역으로 촘촘히 연결될수록 문화적, 국가적 반목은 심화되는 오늘날의 역설적 현실이 이 표현에 담겨 있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해 2월 14일 칠레 산티아고의 이탈리아 광장의 마누엘 바케다노 장군 동상 위에서 깃발을 휘두르는 시위자. 사진=EPA연합
지난해 2월 14일 칠레 산티아고의 이탈리아 광장의 마누엘 바케다노 장군 동상 위에서 깃발을 휘두르는 시위자. 사진=EPA연합

 

2019년 10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칠레는 대규모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10월 25일 산티아고에서는 12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칠레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에 300만 명을 훨씬 웃도는 인파가 모인 셈이다. 놀랍게도, 이 엄청난 시위의 발단은 10월 6일의 ‘지하철 요금 30페소(약 50원) 인상’이었고, 최초의 주도자들은 무임승차를 감행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10월 18일에는 대대적인 시민 저항으로 확산됐고,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강경대응에 나섰다가 오히려 상황이 격화되자 수습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다. 그동안 칠레 사회에 누적된 각종 불만이 표출되면서 정부는 협상 대상자도, 해결책도 특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시위가 진정된 것은 국회가 2019년 11월 15일 개헌에 합의하고 이틀 뒤 피녜라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였다. 즉, 개헌을 통해 전면적인 국가 개조를 약속하자, 다양한 사회 집단들이 대의를 위해 저마다의 요구사항을 일단 접는 시민의식을 발휘한 것이다.

시위 기간 중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다’라는 구호가 빈번하게 울려 퍼졌다. 교통요금 30페소 인상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지난 30년에 대한 저항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분노는 피녜라 우파 정부뿐만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네 차례 집권한 중도좌파 연합 콘세르타시온과 그 분파로 한 차례 집권한 누에바 마요리아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다’는 정치권 전체, 1990년 민주화 이후의 칠레 체제 전체를 탄핵하는 구호였다.

 

칠레식 신자유주의를 탄핵하라

 

30년 동안 누적된 가장 큰 불만은 칠레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콘세르타시온 2기 시절 1998년에 나온 ‘유엔개발계획 보고서’에서 이미 포착되었고, 2001년부터 교사, 학생. 지역, 선주민, 연금 관련 시위가 차례차례 발생했다. 특히 피녜라 정부 1기 때인 2011년의 학생시위는 교육의 질과 공공성을 이슈로 시작되어 2019년 시위와 마찬가지로 칠레 체제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칠레 소장파 사회학자 알베르토 마욜은 그때 이미 “칠레 모델의 붕괴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고, 2019년 시위가 진행되는 중에는 “본격적인 빅뱅이 시작되었다”라고 선언했다.

칠레 모델이란 신자유주의 모델이다. 피노체트가 밀턴 프리드먼의 조언을 구하고 자국의 소위 ‘시카고 보이즈’를 기용해 도입했으며, 신자유주의 모범국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오늘날까지 지속된 칠레식 경제 모델을 말한다. 그렇다면 30페소 혁명의 탄핵 대상은 포스트독재 체제 30년을 넘어 칠레가 세계 최초의 신자유주의 실험장이 된 1970년대 중반 이래의 체제 전체라고 봐야 한다. 개헌이 2019년 시위 종식의 유일한 수단이 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는 여러 차례의 원 포인트 개헌에도 불구하고 피노체트 시대의 1980년 헌법이 사실상 유지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모델을 떠받치는 내용과 개혁을 가로막는 독소조항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따라서 개헌이야말로 칠레 모델의 폐기, 아니면 적어도 대수술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었다.

 

무임승차의 날개짓이 개헌 폭풍으로

 

2020년 4월에 예정되어 있었던 개헌 국민투표는 코로나19바이러스로 연기되어 동년 10월 25일에 실시되었다. 그 결과 개헌 찬성은 물론이고, 개헌 주체로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동수의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일종의 ‘참여적 제헌의회 구성안’이 통과되었다. 무임승차로 촉발된 ‘30페소 혁명’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였던 것이다.

국내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차베스 체제의 실패는 거론하지만, 칠레 모델의 실패는 별로 거론하지 않는다. 또 라틴아메리카에 우파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차베스류 좌파의 실패를 단언한다. 그러나 칠레의 경우 가장 규모가 컸던 2011년과 2019년 시위는 모두 우파 정부 아래에서 일어났고, 시위의 칼날은 좌우파 가리지 않고 정치권 전체를 향하였으며, 마침내 개헌이라는 시대교체 선언으로 귀결되었다. 문제는 좌우 갈등이 아니라 상하 갈등이고, 이념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이었던 것이다.

 

 

 

 

우석균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페루 가톨릭대와 마드리드대에서 중남미문학을 전공했다. <지구적 세계문학> 편집위원과 한국스페인어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2005, 해나무), 『쓰다 만 편지』(2017, 글누림) 등 책을 썼고 보르헤스와 마르케스 소설을 번역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