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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신화화된 역사, 에스파냐의 아즈텍 정복사 다시 쓰기
[글로컬 오디세이] 신화화된 역사, 에스파냐의 아즈텍 정복사 다시 쓰기
  • 박구병 아주대 사학과 교수
  • 승인 2021.09.01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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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오디세이_ 박구병 아주대 사학과 교수
일명 '슬픔의밤(La Noche Triste)' 사건을 재현한 그림. 슬픔의밤 사건은 아즈텍을 침공해 승승장구하던 에스파냐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1520년 6월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에서 원주민들의 저항에 궤멸적 타격을 입고 패배한 전투를 이르는 말이다. 이미지=위키피디아
일명 '슬픔의밤(La Noche Triste)' 사건을 재현한 그림. 슬픔의밤 사건은 아즈텍을 침공해 승승장구하던 에스파냐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1520년 6월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에서 원주민들의 저항에 궤멸적 타격을 입고 패배한 전투를 이르는 말이다. 이미지=위키피디아

 

아메리카의 식민시대 역사 중에서도 16세기 초 에스파냐인들의 아스테카(Azteca) 정복과 식민화 과정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정복자의 시선, 달리 말해 유럽 중심적 시각이 가장 두드러지게 반영된 대목이었다. 신화에 근거한 해석이나 표준적인 유럽 중심적 정복사에 따르면, 아스테카 정복은 군사적∙기술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수백 명의 용감한 에스파냐 병사들이 인구가 수백만 명에서 수천만 명에 이르던 대제국을 제압한 사건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천연두∙원주민 분열∙철제 무기 하나만 없었어도 실패

 

정복 초기에 에르난 코르테스, 베르날 디아스 등 정복의 주도자나 목격자들이 작성하고 1540년대 연대기 작가 후안 세풀베다 등이 재생산한 문서 기록들은 에스파냐인들의 지적∙정신적 우위를 강조했다. 그런 주장에 근거한 대표적인 저서, 예컨대 19세기 중반에 출판된 『멕시코 정복의 역사(History of the Conquest of Mexico)』에서 미국의 역사가 윌리엄 H. 프레스콧은 유럽인들이 극복하기 어려운 수많은 장애에 부딪혔음에도 문화적∙기술적 우위, 더 뛰어난 지적∙정신적∙도덕적 자질 때문에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프레스콧은 능수능란하고 용감하며 실용적인 코르테스와 전제적이고 비합리적인 켓찰코아틀 신앙의 ‘쇠망 징조’로 우유부단해진 무테수마(목테수마)를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그보다 훨씬 뒤인 1980년대 중반에 츠베탕 토도로프도 『아메리카의 정복: 타자의 문제(The Conquest of America: The Question of the Other)』에서 원주민들을 순환론적 시간 인식에 지배되고 불길한 조짐에 사로잡혀 에스파냐인들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이들로, 반면 정복자들은 새로운 상황에 기민하게 적응하고 징후에 통달하면서 아스테카 제국에 대한 지배를 확보한 존재로 묘사했다. 하지만 정복자들을 ‘신의 섭리의 집행자’로, 아메리카 정복을 종교적 열정과 용기가 출중한 소수의 성취 과정으로 그려낸 이런 서술은 역사라기보다 신화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천연두의 확산, 원주민 세계의 분열과 복잡성, 철제 무기와 말(馬) 등 세 가지 요소가 정복의 열쇠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만 없었더라도 정복자들의 원정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이렇게 확산된 유럽 중심적 시각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잉가 클렌딘넨, 매튜 레스털 등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적 해석의 출현과 더불어 균열이 생겼다. 영국 출신의 매튜 레스털은 『에스파냐의 정복에 관한 일곱 가지 신화(Seven Myths of the Spanish Conquest)』에서 전통적 서술의 ‘신화와 뒤섞인 역사(mythistory)’를 반박한다.

 

“정복=괴멸” 사실 아니다, ‘진짜 이야기’는?

 

레스털의 비판에 따르면, 항해 탐험가나 정복자들은 예외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소수가 아니라 이미 구세계에서 효력이 입증된 지식과 경험을 아메리카에 적용함으로써 성공을 거둔 이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에스파냐 군주로부터 급료를 받는 직업 군인이 아니라 다양한 신분과 직업 출신의 모험가들이었으며, 정복 과정에서 다수의 원주민 동맹 세력과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의 지원을 받았다. 원주민 세계는 유럽인들의 정복으로 단번에 파괴되지 않았고, 정복 후에도 원주민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면서 독특한 삶의 방식을 유지했다.

나아가 레스털은 2018년의 저작 『목테수마가 코르테스를 만났을 때(When Montezuma Met Cortés)』에서 기존 설명을 재평가하면서 둘 사이의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는 정복이라는 단어를 깊이 파고들면서 16세기 초 사건을 정복이 아니라 에스파냐인과 아스테카인들의 전쟁 또는 에스파냐인과 메소(중앙)아메리카인들의 전쟁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에르난 코르테스가 당시 사건의 전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사실 영향력이 미미한 인물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아스테카와 경쟁 부족 간의 복잡한 영토 전쟁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정복자들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았던 정복자들의 동맹 세력 틀락스칼라인들을 새로운 원동력으로 인식하려 한다. 이런 초점과 질문의 변경이 역사를 관련 신화에서 구출해내는 필수적인 계기를 마련하면서 당시 사건을 더 적절하게 이해하는 데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구병

아주대 사학과 교수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코딩 라틴아메리카』(공저, 2018), 『글로벌 냉전의 지역적 특성』(공저, 2015) 등 책과, 약 30여 편의 학술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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