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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의 과학기술을 넘어
먹고사니즘의 과학기술을 넘어
  • 김소영
  • 승인 2021.03.30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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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사각지대를 비추다 ①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현실은 다르다. 소위 잘 나가는 연구분야나 즉각적인 결과물이 나올 분야만 주목받고 있다. 청년과 여성,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비정규직, 지방대 등 덜 잘 나가는 분야는 여전히 소외받고 있다. 이에 과학기술 분야 최전선에 있는 교수들이 과학기술의 의미와 역할을 재조명하고 대학 사회 내 이공계 관련 주요 이슈를 다뤄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의 약한 고리 진단이 출발점
각자도생에서 공생공락의 과학기술로

오래전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는 소 장사로 젊을 적 큰 돈을 벌었다. 외환 위기 때 우리집도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는 장사를 접고 유학 가는 딸 뒷바라지하러 미국으로 따라 오셨다. 유학 내내 줄줄이 태어난 손주들을 돌보면서 가끔 큰 돈을 버는 비법을 말해주셨다. ‘돈을 좇아가면 안 되고 돈이 널 좇아오게 해야 해.’돈을 좇아가면 돈이 달아난다고. 

이 알쏭달쏭한 말을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난한 유학생으로 조교 수당이랑 도서관 아르바이트로 많아야 월 120만원 정도를 가지고 여섯 식구가 생활했으니. 도대체 돈을 안 좇아가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지? 

물론 돈을 벌려면 돈을 좇아가야 한다. 요즘 부동산과 주식 열풍을 보면 나름 리스크를 감수하고 치밀하게 따지는 정신노동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렇게 돈을 좇아도 돈을 벌까 말까인데, 돈을 좇으면 돈이 달아난다니... 

그럼에도 정말로 큰 돈은 좇아간다고 버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 역사에 이름 한 자 들어가는 대기업이나 요즘 빅테크 기업의 시작을 보라. 낭만 스토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애초에 큰 돈 벌려고 한 게 아니다. 어쩌다 재미로, 어쩌다 궁금해서, 어쩌다 답답해서, 어쩌다 열받아서 시작한 것들이, 그 개인을 넘어 많은 이들이 궁하고 가려운 곳을 채우고 긁어준 것이다.  

요컨대 어머니의 교훈은 이렇다. 작은 돈은 좇아가서 벌지만 큰 돈은 좇아오게 해야 한다. 자기 혼자 먹고 살 돈은 좇아가서 벌지만 모두가 먹고 살 돈은 좇아오게 해야 한다.

돈 되는 연구와 거리 있는 신기술

과학기술로 돈을 버는 것이 비슷한 이치로 보인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돈을 벌려고 연구하는 것은 어느 정도 돈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발견과 신기술 가운데 산업 지형을 흔들고 사회 통념을 바꾸고 보통 사람의 일상에 스며든 경우는 대부분 돈 되는 연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쳇말로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로 대박을 친 경험이 있다. 과학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달성한 우리나라가 해외 개도국에 전수하는 경제발전 경험의 핵심으로, 우리 사회가 과학자나 장인의 소일거리가 아닌 국가 정책으로 과학기술을 바라보게 된 것은 60년대 경공업 가공수출 전략을 180도 틀어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전환한 70년대 초다. 

한국전쟁 직후 맥아더 장군이 백 년이 걸려도 재건이 어려울 것으로 예견한 나라가 한 세대만에 중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술 자립화와 국산화를 통해 중화학공업 발전을 이끈 과학기술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기에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제127조는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기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 과학기술 정책의 전반적 기조는 신성장동력, 만능해결사인 과학기술로 다시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꿈이 가득하다. 이는 전쟁의 폐허에서 우리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준 과학기술처럼, 무자비한 승자독식의 글로벌 경쟁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집단적 희망이다.

수축사회 시대 새로운 상상력 필요

문제는 우리가 과학기술로 대박을 친 것이 돈을 좇아간 것이 아니라 돈이 좇아온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개발 시기 과학기술이 경제성장의 도구였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먹고사니즘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잘 살아보자는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당시 과학기술이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불평등 수준이 낮았던,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발전 경험을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즉, 남들이 돈을 많이 벌어도 나 역시 돈을 벌 기회가 많았으니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믿음으로.  

우리 사회는 정치 민주화 30년에 역설적으로 경제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세계 최고 속도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수축사회에 접어든 지금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그 상상은 국가 정책으로 과학기술을 진흥한 지 반 세기가 훌쩍 지난 현재 우리 과학기술의 약한 고리를 짚어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가성비를 따지는 기초과학 지원, 과학자로서의 성장이 막막한 청년·여성과학기술인, 국정 슬로건이 그대로 과학기술 지향점으로 둔갑하는 연구개발, 섞이는 게 시너지라는 당위성에 매인 융합·협업, 벚꽃이 지는 대로 문 닫을지 모르는 지방의 이공계 실험실... 돈을 좇아가다 돈이 달아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각자도생이 아닌 공생공락(共生共樂)을 도모하는 과학기술. 돈을 좇아가지 않아도 돈이 좇아오게 되어 있다.

김소영 카이스트 교수·국제정치경제학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공동대표’이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중장기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김 교수는 세계경제포럼 글로벌미래위원이다. 『미래의 귀환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 대전환』(공저)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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