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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구 질적 전환, 성장 사다리·비전임 고용이 관건”
“기초연구 질적 전환, 성장 사다리·비전임 고용이 관건”
  • 김재호
  • 승인 2021.06.1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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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인프라와 공동체가 있어야 기초연구 가능
소규모 여러 과제보다 연구를 위한 적정 규모 과제 필요하다”

 규모가 큰 과제로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적절하게 열어 놓아야

호원경 서울대 교수(의학과)는 ‘개인기초연구비 규모별 과제수 포트폴리오 현황(그림)’을 좌담회에서 제시했다. 호 교수는 한국연구재단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분석했다. 호 교수가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2015년에는 총 1만757개 과제에 8천500억 원이 투입됐다. 2016년 호원경 교수 외 493인이 제안한 국민청원은 총 1만4천 개 과제에 2조 원을 투자하는 모델이었다. 2020년 현황을 보니 2만2천376개 과제에 1조5천500억 원이 배정됐다. 결국, 과제 수는 늘었다. 그런데 맨 밑바닥과 바로 그 위 과제 수가 대폭 늘어났다. 

좌담회 내용에 따르면, ‘개인기초연구비 규모별 과제 수 포트폴리오 현황’은 위처럼 압정 모양이 아니라 피라미드 모양이 바람직하다. 자료=호원경 교수

이에 대해 호 교수는 “개인기초연구는 규모별 과제수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잘 설계해서 규모가 큰 과제로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적절하게 열어 놓아야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발전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라며 “5천만 원 이상~2억 원 이하인 B규모의 과제(2020년 기준 6천918개)가 증가한 것은 바람직하나, 여전히 3분의 2(2020년 기준 1만4천862개)가 0.5억 원 이하로 실질 연구비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반면, 2억 원 이상 규모의 연구 과제 수는 596개에 불과해서 2015년 817개에 비해 도리어 줄어들었다. 호 교수는 이를 “피라미드 모양이어야 할 포트폴리오가 압정 모양이 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총액은 늘었지만 그 위의 더 큰 규모의 과제로 올라갈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박현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과학과)는 “연구자들은 과제 지원을 위해 모든 공력을 쏟는다”라며 “지원할 과제의 기회가 많지 않아서 경쟁이 치열한 윗 단계과제에 도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송지준 카이스트 교수(생명과학과)는 “연구자의 입장에선 3천만 원짜리 과제 10개보다 3억 원짜리 1개에 선정되는 게 좋다”라고 언급했다. 

김소영 카이스트 교수(과학기술정책대학원)는 “기초연구자들의 숫자가 아니라 활발히 연구하는 실험실들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며 “과학연구자들이 차근차근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신진에서 리더연구자로 커갈 수 있는 성장 사다리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좌담회에선 기초연구와 대학의 미래, 교수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했다. 송 교수는 대학의 학령 인구 감소를 고민하며 “50년 후를 예상하면 몇 개의 대학만 연구중심 대학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현재 기초연구는 요리를 하는 데 드는 재료비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관련 도구나 장비 등 인프라는 대학에서 제공해줘야 한다. 대학이 진짜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구자 주도형 기초연구는 연구중심 대학으로의 개편, 원천기술 확보, 미래의 생존의 차원에서 중요하다.
특히 신진에서 리더연구자로 커갈 수 있는 성장 사다리를 마련해야 창의적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다. 사진=김재호

이공계, 한 번 무너지면 몇 십 년 성과 사라져

박 교수는 “과제 선정과 미선정에서 선택과 집중의 폐해도 존재한다”라며 “인재들을 걸러내면 연구자의 풀은 감소하여 결국 다양성을 지닌 연구가 불가능해진다”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이공계는 하나의 생태계라고 간주해야 한다”라며 “한 학과가 문을 닫으면 그 파급력이 크다”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기초연구는 보물상자와 비슷하다”라며 “강대국들이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이유가 있다. 모든 산업기술이 기초연구로부터 비롯됐다. 이공계는 한 번 무너지면 몇 십 년 쌓인 게 무너지는 셈이다. 정말 선도하기 위해선 연구 인프라와 연구 풀(공동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 정원이 늘어나야 연구 풀이 늘어난다”라고 설명했다. 

호 교수는 “대학 인프라 구축과 연구원의 인건비 지원은 따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박사후연구원들에게 실험실을 주면서 독립적인 연구를 하도록 할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지원을 연구 과제형태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초연구형 예비타당성조사 기준을 별도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끝내 실현되지는 못했다”라며 “기초연구는 단순히 투자라기보단 미래의 생존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한국은 경쟁시켜서 선택하는 걸 선호한다. 교육은 부족한 사람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경쟁은 결국 마이너스가 된다”라며 “과제 선정에서 경쟁을 시켜 쥐어짜면 뭔가 나온다라는 사고가 아니라, 부족한 걸 채워나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정답소년’, ‘정답소녀’는 결코 창의적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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