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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우리 시대의 그레고르들
[대학정론] 우리 시대의 그레고르들
  • 교수신문
  • 승인 2019.04.22 09: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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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창 동의대학교 독어독문과 교수
장희창 동의대학교 독어독문과 교수

독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두고 실존주의의 선구자니 부조리 문학의 원조니 말들이 많다. 하지만 일렁거리는 혼돈의 문체 그 바닥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이 분이야말로 가난한 자와 약자와 소외된 자의 진실한 대변자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변신>.

어느 날 아침 깨어 보니 출장 영업사원 그레고르는 자신이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해 있는 걸 발견한다.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인간이 하룻밤 새 벌레 안에 갇힌 거다. 그러나 의식은 멀쩡하게 살아 있다. 인간의 외관을 그대로 가진 가족이 오히려 더 허둥댄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벌레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가. 거의 유전자 수준으로 인간 무의식에 뿌리박은 자본 권력 앞에서 가족이라는 허울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동안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다 주었기에 모두들 행복했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져 가족은 그를 돈 벌어 오는 존재로만 여길 뿐 서로 간에 따뜻한 교감은 없었다. 가족들은 이제 실업자인 그레고르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각자 일자리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은행 직원들에게 아침밥을 날라다 주고, 어머니는 사람들의 속옷을 바느질하고, 여동생은 점원으로 일한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가족들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다가 드디어 임종을 맞이하고, 가족들은 언제 그런 일 있었냐는 듯이 밝은 햇살 아래 봄나들이 소풍을 간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카프카의 《변신》은 벌레로의 변신, 즉 실직이라는 화두를 툭 던져 놓고 그 파장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발표시키면 《변신》이 특히 인기를 끈다. 돈이며 가족이며 할 말이 엄청 많다. 그만큼 그레고르의 고독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취업이라는 지옥 전선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 그 위로 그레고르의 고독한 모습이 겹친다. 나는 학생들 졸업식장에 참석 잘 안 한다. 졸업은 곧 실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색 않고 밝은 얼굴로 다니는 청춘들, 참으로 대단하다.
요즘에는 또 다른 그레고르들의 모습도 그 위로 겹쳐 보인다. 올해 8월부터 강사법이 시행되기 때문에 비용 절약을 위해 전국적으로 수 천 수 만의 비정규직 교수들이 이미 해고되었거나 해고될 예정인 모양이다. 그런데도 정규직 교수들의 눈에는 그 아수라장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혹시라도 자기들 월급이 한 푼이라도 까일까봐 노심초사들 하고 계시는가. 
일부 대학은 강좌수를 대폭 줄이고, 또 기존의 강사들을 마구 내보냈다고 한다. 교수님들, 참으로 인정머리도 없으시네. 동료애고 뭐고 한 방울도 없네. 또 어떤 대학에서는 궁여지책으로 학생들에게 지급할 장학금 명목으로 기부를 요청하고 있으나 정규직 교수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자신의 기득권이라면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으려는 정규직 교수들. 공감과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의 집단 폐사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약한 자들의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
어떤 졸업생 생각이 난다. 평소에 말없이 침착하던 학생. 글쓰기가 군살 없이 점점 야물어져가고 그 어떤 변화의 낌새를 보였던 학생. 알고 보니 4년을 내리 새벽 3시에 일어나 청과물 도매상에서 알바를 하고 등교했던 수도승이었다. 4년 동안 자주 만났는데도 그렇게 내색하지 않을 수가. 졸업 파티를 하는데 친구들을 위해 작은 트럭에 과일상자를 산더미처럼 가져와 일일이 나누어주기도 했다. 나의 지도학생이었지만 내가 지도를 당했던 거다.
온 세상이 돈, 돈 하며 미쳐 돌아간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이웃 아파트에서는 최저 임금제 시행으로 관리비가 더 들게 되었다고 수위 아저씨들의 수를 대폭 줄인 모양이다. 가구당 관리비 1~2 만원 아끼려고 남의 목줄을 마구 자르는 주민들. 고양이 하고 강아지는 잘도 키우면서 수위 아저씨들은 왜 그리 박대하는가. 비정규직 교수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정규직 교수 사회나 수위 아저씨들의 목줄을 끊는 주민들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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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린 2019-04-24 23:45:32
공감합니다
이제는 눈앞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