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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교수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
[대학정론] 교수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
  • 윤지관 논설위원 덕성여대/영문학
  • 승인 2019.04.16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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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창간 27주년을 맞아

 

윤지관 (덕성여대, 영문학)

교수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해묵은 것이지만 대학의 위기가 깊을수록 더 절박한 의미를 띠게 된다. 교수는 기본적으로 대학에 소속된 학자이자 교원이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그 정체성을 단일하게 규정하기는 어려울 법하다. 사회적으로는 지식계층의 중요한 일부고 전문지식을 활용해 사회활동에 참여하거나 국가의 운영에 개입하기도 한다. 국가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그이면서도 어느 집단보다도 더 강력한 비판세력이기도 하다. 때로는 스승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자 생활인이기도 하며, 좀 더 의식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다양한 모습 가운데서도 교수를 교수답게 하는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위상일 것이다. 여타의 정체성들과는 달리 이것이야말로 교수를 다른 생활인이나 노동자 혹은 전문가와 구별시켜주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교수를 지칭하는 영어의 프로페서(professor)가 “공개적으로 털어놓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이를 충실하게 밝히는 것이 교수됨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자신의 전문지식을 재산증식이나 권력 획득의 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겠으되 그 경우 ‘교수’라는 신분의 진정한 의미는 망실된다. 

당위와 현실은 물론 다르겠지만 특히 최근 들어와서 이같은 전통적인 교수상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대학에 미투 운동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교수의 갑질 사례들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교수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크게 변했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경쟁이 대학에 도입되어 실적을 둘러싼 경쟁이 일상화되고 교수들은 소모적인 잡무에 시달려왔다. 평가지표를 높이기 위해 “연구는 안 하고 논문만 쓴다”고 자조하는 목소리도 도처에서 들리고 심지어 대학을 공장으로 교수를 그 직공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교수들의 실적주의는 근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더 악화되고 있고, 존립의 기로에 놓인 군소사립대학의 교수들은 연구와 교육환경 개선은 차치하고 생존투쟁에 시달리고 있다. 빌 레딩스가 일찍이 미국대학을 두고 지적한 대학의 ‘폐허화’가 우리의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시장의 요구와 국가의 통제라는 외적인 환경이 이같은 폐허화의 주된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교수라면 마땅히 해야 할 기본책무를 방기할 구실이 될 수는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교수야말로 실질적인 대학의 중심이며 대학이 가진 특권이나 혜택의 독점적인 수혜자라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교수의 지위가 이전 같지 않고 흔들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고 극심한 교권탄압을 겪는 경우조차 있지만, 대학 전체로서는 가령 교수직 영년제 같은 신분보장이나 연구년 제도, 긴 방학기간 등 교수로서의 직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본장치들은 아직 건재하다고 보아야 한다.  

오해를 무릅쓰고 이 말을 하는 것은 이 시대 교수의 직분을 교수들이 얼마나 충실히 해내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에서다. 가령 교권 침해에 맞서는 것은 교수의 당연한 대응이자 권한이며 노동하는 자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같은 대응과 요구는 교수들이 교수로서의 본령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정당한 것이 된다. 대학의 역사를 보면 학문의 자유에 대한 원칙과 교수영년제의 수립 등 교권의 확보는 오랜 투쟁의 산물이었고 그 명분은 바로 “진실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교수의 직분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교수들이 스스로 자조하듯이 그같은 본질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지식인이 아닌 기능인으로 화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권한의 근거가 무너지는 셈이고 교수집단은 기득권을 지키는 이해집단이자 적폐세력으로 전락할 것이다. 

대학의 민주화가 흐름을 이루는 시기에 대학 내부에서 교수의 본령을 구현하는 길은 학문공동체로서의 대학의 성격을 살리는 일과 맺어져 있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학에 대한 권력의 통제가 극심했던 과거에 비해 대학의 자율적 운영이 강조되고 총장직선제가 도입되는 등 변화의 기미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개선만으로 대학의 위기가 풀리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현재 쟁점이기도 한 시간강사법 사태가 그 비근한 예가 될 것이다. 올해 2학기 시행을 앞둔 시간강사법은 대학들의 반발과 정부의 예산부족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들의 비중이 확대되어가는 추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이를 조장하고 있는 현재의 대학정책 탓에 생겨난 파생현상일 뿐이다. 일률적인 평가에 따른 강제 구조조정 하에서 예산부족에 시달리는 대학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여기서도 결국 열쇠는 교수들이 쥐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비정규교수가 다수를 차지하는 교육환경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대학의 관행은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 재원의 배분이나 의사의 결정권은 여전히 정규직 교수들의 독점물이다. 대학 내부에서 높아져가는 이 장벽을 없애고 차별을 완화하여 정규직 교수에게 집중된 예산, 공간, 발언권 등 대학의 권력을 나누고자하는 사고의 전환이 없고는 시간강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학문공동체 의식이 새삼스러운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가령 연구공간 제공만 하더라도 정규직 교수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던 공간을 비정규직 교수들과 나누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교육부가 발표한 학문후속세대 지원대책도 예산배분의 재조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교수 스스로 대학의 재원과 공간 및 권한을 독점하지 않고 공유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야 비로소 교권과 대학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을 얻게 된다는 점을 짚어두고자 한다. 

한국의 대학교수는 지난 독재정권 시기에 지식인으로서의 실천을 통해 사회민주화에 앞장 서 온 역사가 있다. 창간 27주년을 맞은 교수신문도 그같은 흐름을 바탕으로 창립되었고 교수사회의 여론을 반영하고 형성함으로써 이 흐름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군부독재가 종식된 지금의 현실에서 교수사회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교수들은 시장의 요구와 국가의 통제라는 이중의 족쇄 아래 시달리는 가운데 그 본령인 지식인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순치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하고, 달라진 환경에서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결단을 통해 학문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솔선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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