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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삶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부모의 삶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 양도웅
  • 승인 2018.10.15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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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서평모임이 주목한 22번째 책_『인생극장』(노명우, 사계절, 2018.01.26.)

“자기 분석, 자기 고백하는 시간인가요? 노명우 선생님께서 의도하신 게 이건가요? 노명우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나면 모두 이렇게 되는 건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안치운 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지난달 19일에 열린 22번째 아산서평모임은 이전 모임(들)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이전 모임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현장이었다면, 안치운 교수의 말대로 이번 모임은 자기 고백의 현장이었다. 더군다나 고백의 대상이 자신의 부모님, 상대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었기 때문에 논쟁보다는 공감과 조언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책을 감동적으로 읽고 반성했어요” “저는, 소위 말해 타자로서 이 책을 읽을 수 없겠더라고요” 등의 반응이 잇달았다.

공감과 조언의 시간으로 모임의 분위기가 변화한 이유는 이번 서평모임의 책이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과)의 『인생극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책에 직접 쓰여 있듯 “아들 사회학자가 대신 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서전”(36쪽)이다. 노 교수는 발제 서두에서 “이 책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논증하는 책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인생을 서술한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해 말하려면 부모님의 삶을 정리해야 하고 그분들의 세대를 정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감히 어떤 사람의 삶에 대해 이랬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이 책, 그러니까 자신의 부모님의 삶을 (책으로 쓴 것에 이어 한 번 더) 정리하는 행위가 갖는 곤란함을 설명했다. 

이런 곤란함은 책의 조심스러운 문체와 책이 취한 설명 방식에서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책은 부모님의 삶이 놓인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부모님의 삶이 당대 대부분의 평범한 부모님의 삶과 다름없다는 일반성을 획득하기 위해 당대의 영화와 잡지, 소설, 신문기사 등을 수용미학적인 태도로 활용한다. 노 교수는 “대중영화를 활용한 이유는 부모님의 삶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수용사적 관점에서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수용미학에 따르면 텍스트는 독자와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된다. ‘텍스트와 저자’의 관계가 아닌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에 주목한다.

하지만 공감과 조언만으로 모임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토론자로 참석한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다는 걸 깨닫고 ‘절망'했다고 썼는데, 이 절망이라는 표현이 무언가를 ‘막는 느낌’을 줬어요. 더 깊게 분석해야 할 대목에서 너무 쉽게 영화 이야기로 가며 일반화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너무 빠르게 결론 내리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죠. 과연 부모의 삶에 대해 더 얘기할 게 없었을까? 이런 의문도 들었고요”라고 말했다. 부모님의 삶을 감정적으로 갈무리하는 것이 오히려 부모님의 삶을 더 알지 못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22번째 아산서평모임의 분위기는 이전 모임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서평 대상이 노명우 아주대 교수(가운데)의 『인생극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아산정책연구원 

끝내 부모님 분석을 거부한 저자

어떤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분석해야 한다. 분석은 감정을 일단 배제하고 그 존재를 대상으로 바꿔야 한다. 따라서 노 교수가 부모님에 대한 서술을 감정으로 갈무리한 것은 부모님을 대상화하는 걸, 종국에는 거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끝내 부모님을 분석할 수 없었던 것. 그의 “부모님의 삶에 감정이입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을까가 이 책을 쓰는 동안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라는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그런데 부모님과 부모님의 삶을 감정을 배제한 채 서술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한편, 노 교수가 취한 방식은 책이 객관적인 서술(분석한 서술)과 주관적인 서술(감정이입한 서술)로 혼재돼 있음을 방증한다. 그럼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이번 모임에서 몇 안 되는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일단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하는 세종도서에 사회학 분야로 신청했지만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달 13일 제8회 전숙희 문학상에 선정됐다. 우리 사회는 이 책을 김소월의 「초혼」으로 분류했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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