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9:00 (금)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연구하기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연구하기
  • 유팔무 한림대ㆍ사회학과
  • 승인 2013.04.15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대학교수로 살아간다는 것’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유팔무 한림대 교수
대학교수는 시쳇말로 ‘뭘 좀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참 좋은 직업이다. 직업평판 조사를 하면 아마 대학교수가 최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일반인들로부터는 존경을 받고, 강의, 연구, 봉사, 여가 시간을 상당히 여유롭게,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월급은 많지 않더라도, 신분보장이 잘 되는 편이다. 방학도 길고, 연구년도 다녀올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또 일부는 질시한다.  

그러면 교수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의 <교수신문> 조사결과를 보면,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다시 직업선택을 하더라도 교수를 택하겠다”는 사람이 무려 77.2%나 됐다. 아마도 적성을 고려하고 다른 직업들과 비교해 볼 때, “교수가 제일 낫다”는 판단을 하였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대학에 대한 자부심, 급여수준, 교육 및 연구환경, 기타 업무 부담, 학문적 자율성,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만족, 불만족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만족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종합적인 만족도도 ‘매우 만족’, ‘만족’을 합쳐 44.3%, ‘보통’이 34.5%, ‘불만’, ‘매우 불만’을 합쳐 21.2%이다.

그렇다면 그런 불만들은 왜 생겨났을까.  배경요인을 두 가지만 꼽아 본다면, 첫째는 1995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대학경쟁력 강화 정책이다. 경쟁력 없는 학과와 대학은 퇴출이닷! 연구논문 더 많이 써랏! 학생정원 꼭 채우고 졸업생 취업률도 높여랏! 등등. 우리나라 대학과 교수들은 정부로부터 지난 20년 가까이 이런 압력들을 받아 왔다.

둘째는 역대 정부들이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최소한으로 지려고 했으며, 국립대학에서조차도 슬슬 손을 빼려 한다는 점이다.(국립대학 법인화 정책이 그 예.)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80% 정도가 사립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주로 등록금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지원은 미미하다. 그래서 등록금은 비싸고, 교수 월급은 빡빡하며, 교수의 교육, 연구 환경도 별로이다. 관련된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교수 1인당 학생 수이다.  2008년 현재 OECD 회원국들 평균은 15.3명인데, 우리나라는 30.0명으로 두 배에 달한다.(교수신문, 2009년 4월20일자 참조). 중고등학교 보다 1인당 학생 수가 더 많다. 소위 교육, 연구 경쟁력을 OECD 수준으로 높이려면, 교수 수를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면, 교수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학생수 감소’이다. 그러나 불안해하기보다 그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 줄어드는 등록금 수입만큼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육, 연구, 봉사이다.”  어느 원로 교육철학자의 지론이다. 이 양반은 그 중에서도 교육을 가장 많이 강조했다. 나는 젊은 교수 시절, 교육보다는 연구, 연구보다는 봉사, 즉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천! 그것은 아는 것을 행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일이며, 연구의 실제 목적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교수들이 연구보다는 교육에 비중을 약간 더 크게 두고 있다.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비판적, 소극적이며, 지식인으로서의 자율성을 가장 많이 위협하는 것으로 ‘정치권력과 자본’을 꼽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교육과 연구의 실제 기능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칼 마르크스는 교육이 노동 숙련성을 제고시키는 일이라 했고, ‘사회적 생산력’이라는 용어를 썼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한 후 대부분 자본 휘하에 들어가 숙련노동자로 먹고산다. 학부모들은 비싼 등록금으로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교수들은 장차 학생들이 취직해 발휘할 숙련성을 키워준다. 기업에서는 별도의 훈련비를 들이지 않고 숙련된 사원을 뽑아 곧바로 현장에 투입시키는 이득을 얻는다. 요즘 언론기관들도 그러하다. 기업은 또 연구프로젝트를 주거나 직접 사들이는 방식으로 교수들이 연구개발하는 자연과학적 기술이나 경영학 등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의 일정부분을 사회에서 공급되는 생산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 교수들이 정치권력과 자본이 자신들의 자율성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라고 인식한 것은 맞지만, 교수들이 아무리 대학을 ‘상아탑’처럼 고립되고 자율적인 ‘교육의 전당’, ‘학문의 전당’이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교육도 그렇고 연구도 그렇고, 사실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는 것을 행하라”는 격언이 생각난다. 

유팔무 한림대ㆍ사회학과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이데올로기와 계급관계’로 박사를 했다.『시민사회와 시민운동』, 『한국의 시민사회와 새로운 진보』 등의 저서가 있다.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