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무기력으로 몰아갔을까
무엇이 그들을 무기력으로 몰아갔을까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0.03.02 1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잇따른 교수들의 비극

“좋은 논문을 쓰지 못해 미안하다”는 글을 남기고 떠난 故 이성익 교수. 이전에도 교수들의 자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대학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교육과 연구에 대한 부담이었는지, 학자로서의 실존적인 고민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삶의 끝에서 남긴 유서를 통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뿐이다.


지난 1997년에는 카이스트 신임 교수로 교단에 선 30대 젊은 교수가 연구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걱정된다”는 유언을 남겼다. 신임교수로 임용돼 개강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부담이 결국 자살에 이르게 했다. 이룬 것보다 이룰 것이 많았던 젊은 연구자의 자살 소식에 학계와 대학사회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때론,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권위를 가진 집단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 아무개 교수는 공금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다 “나는 결백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연구실에서 목을 맸다. 2004년에는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감사 대상 대학의 한 교수가 자살을 선택했다. 유서에는 “대학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나는 무능하다”라는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당시 동료 교수들은 “(그의 죽음이) 감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2003년에는 상명대 이 아무개 교수가 대학 측의 학과통폐합 계획에 반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유족과 제자들은 “고인의 죽음과 학과 폐지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학 측과 유족들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한동안 갈등을 빚었다. “문제 해결 전에는 장례를 치르지 말아 달라”는 고인의 유지 때문이었다. 신 아무개 계명대 교수는 동료교수들의 해임에 괴로워하고 사학재단의 전횡에 맞서다 자살했다. 동료들은 그를 시민사회단체 업무까지 도맡아 하는 등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강조했던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