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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성익 교수를 추모하며] 실험실 熱氣 아직 그대로인데
[故 이성익 교수를 추모하며] 실험실 熱氣 아직 그대로인데
  • 노태원 서울대·물리학
  • 승인 2010.03.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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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성익 교수님께서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나에게 밀려드는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미국 유학 시절 같은 연구실의 선배이자 다정한 이웃으로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함께 공동연구를 하는 동료 물리학자로서, 때로는 선의의 경쟁자로서, 그리고 항상 나에게는 형과 같은 친구로서 24년을 같이 살아온 이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정말 믿기지 않았다. 


이 교수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6년이었다. 당시 오하이오 주립대에 입학 허가를 받고 물리학과를 처음 방문하던 날, 복도에서 길을 헤매고 있던 나는 우연히 이 교수님과 조우해 첫 인연을 맺었다. 그 후 둘이 함께 훌륭한 과학 업적을 이루어 보자는 목표 아래 의기투합해, 우리는 같은 지도교수 아래에서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지도교수의 전공 분야와는 다른 연구를 하고 싶었던 우리는, 지도교수였던 Gaines 교수를 설득해 새로운 연구 주제(나노 크기 금속알갱이의 광학 성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하고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위험한 도전이었다. 관련 연구에 대해 실험실에 쌓여진 노하우와 필요한 연구 시설도 없었고, 지도교수의 적극적인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우리는 고군분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젊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이 교수님은 누구보다도 물리학을 사랑하셨다. 남들보다 늦게 물리학자의 길에 들어선 이 교수님은 물리학에 정말 애틋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밤 11시가 넘어서 귀가할 때에도 이 교수님은 실험기기 앞에서 묵묵히 실험 결과를 얻고 있었으며, 다음날 아침 9시 경에 학교에 나갔을 때에도 이 교수님은 여전히 실험실 자기 책상에서 논문을 읽고 있었다.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 논문을 접할 때에도 결코 굴함이 없이, 그 특유의 뚝심과 끝없는 노력으로 어려운 내용을 소화하셨다. 연구 초기 우리는 실험의 background 신호를 측정하지 않은 극히 초보적인 실수 때문에, 9개월 동안 밤 새워 얻은 실험데이터들을 모두 버려야 했다. 그날 밤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이 교수님은 “인생을 사는 데 9개월의 세월은 그리 긴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수학술지에 20편에 달하는 많은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나의 조그마한 실수로 20만 달러가 넘는 분광기의 전자회로를 모두 태우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주말 내내 괴로워하다 일이 정리되는 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던 나에게 이 교수님은 “단순한 실수 때문에 물리학을 포기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라고 하셨다.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그 이후 이 교수님은 이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셨다. 아마 그 때 이 교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포스텍 물리학과에 교수로 부임한 직후부터 이 교수님은 우리나라 응집물질 물리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새로운 개념의 ‘초전도학교’를 개최하셨다. 여름 방학동안 약 일주일의 기간을 잡아,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7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낮에는 같이 운동을 하는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응집물질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 역시 초청 연사로서 에어컨도 없던 더운 방에서 7시간의 강연을 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이 프로그램은 1998년 아·태물리학센터(APCTP) 강상관계 겨울 워크숍으로 발전해, 지금까지 우리나라 응집물질 물리학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 오고 있다. 특히 이 교수님은 이 프로그램에 큰 애정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노력해, 추후 노벨상을 받은 Laughlin 교수와 Leggett 교수 등을 포함해 우수한 외국인 학자들을 연사로 초빙했다. 그 결과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외국의 우수 학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신진 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3월 일본 Akimitsu 교수가 MgB2 라는 물질에서 처음으로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직후, 이 교수님은 우수한 특성의 MgB2 박막을 세계 최초로 합성해 국제학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1년 5월 사이언스지에 이 교수님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전세계의 많은 우수 학자들이 이 교수님의 시료를 받아서 공동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공동연구를 주도함으로써 이 교수님은 우리나라 초전도 연구 분야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이셨으며, 2006년 한국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대에서 MgB2에 대한 세미나를 한 직후, “이제 학자로서의 한을 풀었냐?”라는 한 교수님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밝게 웃으면서 대답하던 이 교수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교수님은 세계적인 학자로서 모교인 서강대에 와서 더 좋은 연구성과를 이루겠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 물리학계 석학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들을 위해 할 일이 아직 많은데, 59세라는 한창 활동할 수 있는 나이에 애석하게 세상을 떠났단 말인가. 우리 후배 교수들에게 못 다 들려준 이 교수님의 말씀이 무엇이겠는가. 정말 당신이 사랑했던 물리학이 우리나라에 꽃 피우기 위해 매진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유의 유머와 친화력으로 우리들을 이끌어 주시던 이 교수님이 아직도 내 옆에 서 계시는 것 같다. 
이성익 교수님! 이제 부디 편하게 가소서.

노태원 서울대·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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