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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신자유주의 비판’…“디지털 대응은 소홀”
편향된 ‘신자유주의 비판’…“디지털 대응은 소홀”
  • 김재호
  • 승인 2023.08.28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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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인문학은 정말 위기인가

인문학은 왜 기술의 발전에 무력할까? 그동안 인문학이 편향된 비판만 해왔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진화와 자본의 초국제적 시장은 동시에 발현하기 때문에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인문학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대한 분석은 소홀히 하면서 ‘신자유주의 비판’에만 천착해 인문학의 위기를 외쳐왔다. 김만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AI Five와 대학 ‘밖’ 대학, 그리고 스토리텔러(링)」 발표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23일, 서울 인사동 KOTE 내면의 서재에서 ‘AI 시대, 인문학은 정말 위기인가’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디지털 시대에 부응 하는 스토리텔링과 확장된 문해력 등의 인문학이 강조됐다. 사진=AI Five

지난 23일, 인사동 KOTE 내면의 서재에서 한양대 한국미래문화연구소와 AI Five,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가 공동으로 ‘AI 시대, 인문학은 정말 위기인가: 도래할 뉴리버럴아츠’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법인 AI Five는 인문학자들이 뭉친 ‘콜렉티브 휴먼 알고리즘’이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정직’이다.” 그동안 전통적 방식에서는 지식 주입교육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챗지피티 등 생성형 인공지능이 열어주는 디지털 세계에서는 정직의 요소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의 리터러시를 “정확한 지식+적합한 컨텍스트+설득력 있는 내러티브가 결합된 스토리텔링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교수는 관료주의와 파벌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현재 우리 대학은 국가의 행정 관료주의와 대학의 학문 형식주의(파벌주의)가 결합해 창조적인 스토리텔링과 그 스토리텔러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현재 디지털은 지구적 차원에서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여 연결된 세계를 제공하고 있기에, 정확하고 좋은 지식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춘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큰 시장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간과 기계가 맺는 파트너십 내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독’이냐 ‘신체의 일부’냐를 두고 긍정적 파트너십으로서 인문학의 역할을 고찰해 보는 것이다. 김 교수는 “중독이라는 말은 스마트폰이 없을 때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는 현상이 나타나고 이것은 치료돼야만 하는 증상이란 의미가 어느 정도 담겨 있다”라며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어 불안해지는 현상을 철학적으로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신체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제 인간과 기계가 맺는 긍정적 파트너십은 ‘디지털 시민권’으로 표현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학문후속세대 위한 ‘뉴리버럴아츠’ “과감히 알려고 하라!”

이번 학술토론회에선 확장된 인문학으로서 ‘뉴리버럴아츠(A New Liberal Arts)’가 제안됐다. 중요한 학부 교양으로서의 뉴리버럴아츠는 컴퓨팅 사고력과 창의성의 결합, 디자인 능력(design thinking)의 함양, 플롯을 구성하고 내용을 편집할 줄 아는 소양이다.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AI와 뉴리버럴아츠: 확장된 문해력을 기르자」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언어(文)의 확장에서 확장된 문해력(literacy)으로’이다. 김 교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생성’과 ‘창작’을 주장하는 인공지능의 도전에 직면했다”라며 “창작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한다. 인간다움과 인간의 고유함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제안한 핵심 실천은 ‘비판’이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sapereaude)!” 그는 “사상이 탄생하는 곳이 선진국”이라며 “구체성에서 출발해서 보편성에 이르기”를 당부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한국적 구체성이 인류적 보편성과 맞닿을 수 있도록 한국어로 승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AI 시대, 인문학은 정말 위기인가: 도래할 뉴리버럴아츠’ 학술토론회에서는 디지털 대전환에 부응하는 인문학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뉴리버럴아츠, 확장된 문해력, K-철학 등이 논의됐다. 사진=AI Five

 

17년 동안 지속된 인문학 위기론

뉴리버럴아츠는 학문후속세대와 맞닿아 있다. 김지은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인공지능 시대, 학문후속세대」 발표에서 제도적 지원을 분석했다. 최근 9년간 전국 4년제 일반 대학 인문계열 학과는 155개가 통폐합돼 약 16% 감소했다. 인문학 위기론은 지난 17년간 지속돼 왔는데, 현상 유지가 아니라 심지어 악화했다. 

김 연구원은 인공지능과 영문학 사례를 살펴봤다. 그동안 꼼꼼히 읽기가 주류였다면, AI 시대에는 멀리서 읽기로 확장했다. 즉, 데이터 수집과 처리, 활용에 기반한 ‘멀리서 읽기’의 흐름이 등장한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 시대, 인문학과 과학적 방법론의 만남은 인문학을 ‘손쉽게’ 내맡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롭게 가능해진 접근법으로, 새로운 어젠다를 도출하는 것이 연구능력과 직결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비전을 갖춘 학문후속세대의 발굴과 지원은 장기적 비전 속에서 개편돼야 한다. 김 연구원은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분과학문의 전문영역과 방법론을 심화하되, 인공지능 시대에 가능해진 영역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둘째, ‘멀리서 읽기’는 ‘꼼꼼히 읽기’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함께 가야만 새로운 문제의식의 도출이 가능하다. 셋째, 개별 연구자의 역량과 감당 범위를 넘어서는 어젠다와 프로젝트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이 가운데 교수-학문후속세대-학생의 협업 기회와 경험을 늘리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AI 조교 활용하고 온라인 매거진 제작

그렇다면 실제 사례는 어떨까? 송경호 연세대 정치학과 BK21 박사후연구원의 「인공지능 시대, 학부 교육」 발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챗지피티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문사회계열 학부인 연세대 정치학과 교육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실제 경험한 사례를 공유했다. 조교가 따로 할당되지 않은 수강생 60∼70명 규모의 소규모 ‘현대정치사상’ 수업에서 인공지능 조교의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어, 강의 노트를 노션(Notion.so)을 통해 제공하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면서 딥엘(DeepL) 등 인공지능 번역 서비스를 편리하게 활용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온라인 매거진을 제작했다. 

송 연구원은 AI와 학부교육의 가능성에 대해 “사회 일반의 교양으로서가 아니라, 대학 학부 수준에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어떠한 내용과 형식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 방안은 미래에 보다 좋은 환경과 조건이 갖춰졌을 때나 실현 가능한 이상적 방안이나 방향성이라기보다 지금 당장 여기에서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김시천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교수(도가철학)는 「도래할 K-철학: 우리는 어떤 인문학을 할 것인가?」 발표를 통해 “왜 ‘동양철학’이 아닌 ‘K-철학’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K-철학이란, 어떤 위대한 철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늘 생성하는 생각의 체계”라며 “도래할 K-철학이란, 동양철학이나 서양철학으로 환원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시대와 장소, 지금 여기에서 세계 전체를 향해 묻고 그에 답하려는 생각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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