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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생태학, ‘풀뿌리 아마추어 연구’에 달렸다
열린 생태학, ‘풀뿌리 아마추어 연구’에 달렸다
  • 홍선기
  • 승인 2023.04.1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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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_홍선기 국립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교양학부 교수
홍선기 국립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교양학부 교수

필자가 생태학 연구를 해 온 것이 40여 년이 되어간다. 유학 시절에는 농촌과 산림생태계, 이후 도시생태계, 현재는 섬 지역 생태계 연구를 하고 있다. 조사지는 달라도 지금까지 일맥상통하는 생태계 연구 방법은 자연과 인간 시스템에 대한 경관생태학적 방법론과 생물문화 다양성 개념의 적용이다. 이 두 개념과 방법론의 공통점은 ‘연결성’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일본 유학 당시 나의 연구실은 주로 자연생태와 사회경제생태를 연결시키는 독특한 주제의 연구를 수행했다. 나중에 필자도 참여하게 된 ‘아시아 경관생태학 체계와 방법론 개발’이라는 연구였다. 

생태학의 탄생은 원래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원초적 생태계에서 동물, 식물, 미생물의 분포, 동태(dynamics)와 순환(circulation)을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북미나 남미의 광활한 대지와 순수 생태계에서 연구하는 방법이 과연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늘 고민해왔다.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의 산하는 황폐화되었고,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대지는 파편화되어 왔다. 그나마 남아있는 산림이나 강, 하천은 여러 국토개변 사업으로 변형되어 진정 인간의 간섭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생태계는 크게 격동을 겪었고, 또한 그것이 지속하고 있다고 본다. 20여 년 목포대학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3천348개의 유·무인도가 있고, 그중 65%가 전라남도에 집중하고 있다. 섬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동체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이스터 섬처럼 자연 훼손이나 자원 고갈로 붕괴된 인간 사회의 소중한 역사와 인류사를 통해 찾을 수 있듯이 섬 연구는 단순히 희귀 생물상의 탐구를 넘어 인류 지속가능성의 실험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의 연구 방향도 단순히 생물자원에 관한 연구를 넘어 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제반 연구를 함께 수행한다. 당연히 섬 주민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사용해온 도구, 음식, 전통생태지식(TEK)을 비롯하여 각종 사회경제적 통계나 모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방법론의 대상이다. 

목포대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에 참여한 사업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인문한국(HK)지원 사업이다. 2009년부터 10년간 인문한국 사업을 진행하였고, 2020년부터 「섬 인문학, 인문지형의 변동과 지속가능성「」의 주제로 후속 사업인 인문한국 플러스(HK+)사업을 진행 중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인문학 사업의 아젠다에도 ‘지속가능성’이라는 핵심어가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필자는‘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라는 개념을 ‘지속의 가능성’, ‘지속이 가능하려면 어떤 조건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을 추가하고자 한다. 이러한 아젠다가 인문학 연구의 주제로 받아들여진 것은 미래사회로 가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시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02년 제8회 서울세계생태학회(8th INTECOL Congress)를 유치하고, 한중일 생태학회를 규합하여 2003년 동아시아생태학연합(EAFES)을 창립하며 강조한 것은 장기적인 생태연구(Long-term Ecological Research, LTER)의 필요성이었다. 당시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이미 시작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미지의 시대였다. 이에 2003년부터는 한국생태계에서 장기생태연구의 필요성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한국장기생태연구(K-LTER)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이후 국립생태원 설립을 위한 기본계획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장기생태연구 프로토콜에 시민 모니터링과 인문사회 모니터링을 넣었다. 한 지역의 생태계를 제일 잘 아는 지역의 학자, 연구자,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니터링, 그리고 그 생태계가 변화하는데 작용한 원인 규명을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어쩌면 학문 분야는 다르지만,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사업은 장기인문사회연구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연속적인 인문한국사업 참여를 통해 생태학과 문화학의 만남은 섬 연구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생물문화다양성(Biocultural diversity)에 대한 개념을 섬-연안 지역에 도입하고자 하였는데, 마침 2012년 세계자연보전총회(WCC, Jeju)에 참여하는 환경부 지원을 받아 「아시아태평양 도서지역의 생물문화다양성과 전통생태지식의 확산」발의안을 제작, 결국 결의안으로 채택이 되어 세계인들이 ‘섬 생물문화다양성’ 개념을 사용하게 되는데 기여했다. 

지금까지 여러 학문 분야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또 새로운 생태학 개념을 개척해 가다 보니 순수 생물학 기반의 기존 학회나 연구자와는 거리를 두게 됐다. 오히려 새로운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과 창의적인 논의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학제간의 자유로운 만남, 융합하려는 시도가 가능하게 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요즘 우리나라 생태환경에 여러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막아놓은 보 △국립공원 내 공항과 케이블카 설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 △미세먼지에 노출된 도시환경 △기후위기에 의한 해수면 상승 등 작금의 대한민국 환경 문제는 로컬을 넘어 글로벌 쟁점이 되고 있다. 모든 이슈가 ‘수용력과 지속가능성‘의 개념과 연결돼 있다. 환경-사회-경제적 양상의 연속성에 대한 지속가능성은 사회와 경제를 지지하는 생태계 존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생태학과 생태학자가 해야 할 사회적 의무는 무엇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생태계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 과학자들의 활동이 돋보인다. 과거와는 다르게 학문적인 기반과 학위를 가진 활동가들이 있기에 그들의 성과는 매우 정교하다.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해서 모니터링의 결과를 교류하는 예도 있다. 더욱이 그들은 현장에 자주 나가기 때문에 대학의 교수들보다 훨씬 신선한 정보를 확보한다. 

일본 유학 시에 부러웠던 것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마추어 연구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풀뿌리 아마추어 연구자들이 일본 생태학계를 지탱시켜주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생태학은 생물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포용하는 열린 학문이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 인류세의 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생태학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해법의 한 가지 방안은 인식의 전환이다. 문제는 무슨 인식을 어떻게 전환하는가에 있다. 기존의 생태학자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필자가 오랫동안 인문학과 사회학자들과의 공동연구에서서 느낀 점은 ‘만남과 대화’를 늘려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대학·학과·분야를 기반으로 한 학회와는 별도로, 소규모 포럼이나 연구회와 연구소 같은 것을 통해서 그러한 활동에 가능하다고 본다. 여기에는 인문학을 비롯하여 사회학, 정책학 등 인간학 연구자들의 공동 참여가 필수적이다. 자연과 인문의 만남과 대화는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식 전환의 동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만남으로 생태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철학과 윤리적 소양을 키우게 될 것이다. 파괴되는 생태계와 환경에 눈 감아버리는 사회, 오히려 동조해 왔던 일부 전문가들의 윤리적 성찰을 통해 인류세에 우리 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인식 전환‘에 공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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