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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지팡이가 만든 이곳, 여성들이 제사를 모신다
여신의 지팡이가 만든 이곳, 여성들이 제사를 모신다
  • 홍선기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
  • 승인 2013.05.27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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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야기 31 女性ㆍ女神의 섬, 오키나와 구타카지마

 

오키나와 구타카지마. 여성주체의 제사를 모시는 전형적인 섬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 섬 전체에 분포하는 비로야자나무숲의 모습이다. 이 숲은 마을 주민들에 의해 성역으로 지정돼 외부인, 특히 남성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돼 있다. 사진=홍선기

일본의 가고시마(鹿兒島)와 대만 사이 약 1천200킬로미터 대양에 섬들이 줄지어 있다. 여기에는 가고시마현 아마미군도(奄美群島), 오키나와군도(沖繩群島), 미야코군도(宮古群島), 야에야마군도(八重山群島)의 많은 유·무인도가 나열하고 있으며 나열된 모습이 마치 활처럼 생겼다고 하여 국제적으로는 琉球弧(Ryukyu Arc)로 불리고 있다.

대륙에서 격리된 이 섬들은 대부분 척박한 토양과 변화무쌍한 해양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 섬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전통적인 의례가 존재한다. 풍요와 안녕, 그리고 개인의 행복을 위한 다양한 제례와 의식이 각 섬마다 존재하지만, 매우 특이한 것은 제사를 모시는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야에야마군도처럼 외부로부터 신을 모시고 와서 하는 남성주체의 제사도 있지만, 이것도 여성주체와 함께 진행하고 있음은 琉球弧 전체의 문화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구타카지마(久高島)는 이러한 여성주체의 제사를 모시는 전형적인 섬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섬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여성(母)이며, 섬사람들의 수호신도 여성(母神)이다. 이러한 의례문화는 류큐왕조 이전부터 전승돼 내려오는 고대 해양인들의 정서에서 시작된 문화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구타카지마는 오키나와 본섬 동남쪽에 있는 난조시(南城市)의 작은 포구인 지넨(知念)에서 페리로 약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토오쿠진(德仁)항에 도착하게 된다. 형세가 남북으로 좁고 길게 생긴 섬이고 산호초로 돼 있다. 섬 주위가 약 8킬로미터, 해발고도가 17.1미터정도로 매우 낮기 때문에 심한 태풍에 매우 취약한 섬이다. 석회암지대라 밭과 같은 경작을 거의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취약하며, 습지나 강이 없어서 물은 해안가 암반 용출수 정도만을 이용하고 있다. 2005년 통계에 의하면, 인구는 295명, 세대는 139가구가 있으며 현재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여러 발굴 조사에 의하면 고대 섬 주민들은 섬을 크게 네 가지 용도로 구분해 이용했다고 한다. 첫째는 물은 얻을 수 있는 장소로서 사람들이 이동하는 길이나 물이 용출하는 절벽 근처 등 10여 군데를 지정해 물을 골고루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는 식량을 얻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바다에서 물고기나 어패류를 채취할 수 있는 곳이며, 채취하여 바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세 번째는 휴식이나 취침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보통 동굴 같은 곳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평지인 구타카지마의 지형적 특성상 휴식에 필요한 자연스러운 지형지물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섬 전체에 분포하고 있는 야자과의 상록교목성 관엽식물인 비로야자나무(Livistona chinensis) 숲은 한여름 피서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식기, 장식품 등 일상용품을 만드는데도 유익했기에 휴식공간으로서 꽤 활용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이러한 장소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지만, 섬 주민들에 의해 현재 우타키(御嶽)라고 하는 성역으로 지명되고 있는 장소가 바로 이러한 휴식의 공간과 일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다. 사실 현재 이 섬에서 성역으로 지정된 곳의 주변에는 물을 얻는 장소, 식량을 구하는 장소, 그리고 장례를 지내는 장소가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끝으로 장례식장이 있다. 이 섬의 전통 장례풍습은 風葬이라 장례식장은 통풍이 좋은 해안가 암반에 있었고, 현재도 유골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네 가지 공간은 인간이 일생동안 필요한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풍요로운 섬은 아니지만, 나름 섬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공동체적인 정서가 이러한 섬의 전통적인 공간이용을 전승해 오는데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오키나와 구타카지마에 있는 비로야자나무숲 속의 의례공간이다. 사진=홍선기

이 섬에는 매우 의미 있는 두 가지 신화가 있다. 하나는 섬 創始신화이며, 두 번째는 곡물전래신화이다. 섬 창시신화에 의하면, ‘아마미야’라는 女神과 ‘시라미기요’라는 男神이 동쪽 바다로부터 이 섬에 도달했으나 워낙 파도가 높고 지면도 바다 속에 있는지라 섬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여기어 여신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세워 신에게 부탁해 하늘로부터 흙, 돌, 풀, 그리고 나무를 받았고, 그 후 구타카지마의 형체를 갖추게 됐다고 한다.

곡물전래신화에 의하면, 옛날 어떤 마을에 시마리마(여자)와 아카쯔미(남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카쯔미가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 바다에서 흰 항아리가 떠밀려 왔다. 그러나 웬일인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자, 일단 집으로 돌아간 아카쯔미에게 시마리마가 몸을 씻어서 정결히 하고 흰옷을 입고 다시 해보라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손에 잡히지 않았던 항아리가 아카쯔미의 흰옷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 곳에는 보리, 밤, 콩 등이 있었다. 그래서 보리와 밤을 마을 주변에 정성스럽게 심었더니 섬 전체에 퍼지게 됐다고 한다.

이 두 신화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다. 아마미야라는 여신의 소원을 하늘이 받아줘서 섬을 창조했고, 시마리아라는 여자의 계시로 곡물단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구타카지마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신화와 맞물려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유해 오고 있다. 이러한 남녀의 역할차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됐다고 한다. 즉, 여자는 신인(神人)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됐고, 남자는 바다에서의 어로를 담당하는 해인(海人)으로서 역할을 받게 됐다고 한다. 지금도 고대의 휴식 장소인 비로야자나무숲은 마을 주민들에 의해 성역으로 지정 돼 외부인(특히 남성)의 출입금지 구역으로 돼 있다.

섬의 創始, 곡물전래, 그리고 인간의 창조신화까지 신과 인간이 얽힌 다양한 신화와 신비로움에 둘러싸인 신의 섬, 구타카지마에는 고대의 母系社會의 전통을 보여주는 제사가 매년 30여 차례 거행된다. 출입금지 지역의 밖에서 바라보는 구타카지마의 자연과 의례를 통해 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인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하게 된다. 

 

 

홍선기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ㆍ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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