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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78] 순응보다 충돌, 현실보다 꿈, 리얼리티보다 상상, 부뉴엘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78] 순응보다 충돌, 현실보다 꿈, 리얼리티보다 상상, 부뉴엘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2.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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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뉴엘
부뉴엘은 1900년 스페인 북부 아라곤 시골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사진=위키미디어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화가가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라면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은 같은 스페인 출신의 부뉴엘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은 루이스 부뉴엘이다."라고 알프레드 히치콕은 말했다. 

물론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부뉴엘이 위대한 영화인 중 한 사람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그는 위대한 아나키스트 영화인이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내 인생의 영화>에서 부뉴엘을 “파괴적이지만 행복한 아나키스트”라고 불렀다. 결은 다르지만 부뉴엘은 찰리 채플린과 함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영화인이다. 그들은 무신론자이고 낙관주의자다. 특히 예술가로서 창조자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제한하려는 그 어떤 것과도 전투적으로 싸운 쾌활하고 사려 깊은 투사였다. 

부뉴엘은 1900년 스페인 북부 아라곤 시골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가 성장한 마을은 스페인 시골이 대부분 그렇듯이 중세적 봉건성을 그대로 유지한 보수적인 곳이었다. 특히 예수교 학교에서 받은 엄격한 교육 체험 때문에 그는 평생 가톨릭교회와 부르주아 그리고 파시스트와 같은 위선적이고 억압적인 기성세력을 혐오하고 비판했다. 부뉴엘은 마드리드 대학에서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페데리코 가르시오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등을 만나 대학 영화협회를 창설하면서 영화에 입문했다. 1925년 아방가르드 물결이 거세던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장 엡스탱(Jean Epstein)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디디며 초현실주의자로 본격적 영화를 제작한다. 

부뉴엘은 마드리드 대학에서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대학 영화협회를 창설했다. 사진=위키미디어

「황금시대」 속 사회비판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인 사회

그의 데뷔작이자 초현실주의 영화의 대표작인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1928)는 자유 연상에 의한 이미지의 연속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그 속에 등장하는 ‘칼날이 그어버리는 눈’은 이후 부뉴엘이 구축할 영화 세계에 대한 선언이었다. 체제에 순응하는 규율의 파괴를 원한 부뉴엘은 물화 된 눈, 즉 규율과 제도 및 관습에 길들여져 ‘살아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죽어 있는’ 관객의 눈을 도려냄으로써 기성관념에 의해 객체화된 관객의 시선을 주체적으로 되살리고자 했다. 그것이 50여 년에 걸친 영화 인생에서 종교적 금기를 비롯한 모든 권위를 조롱하고, 부르주아의 욕망을 들추어내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행복한 아나키스트’가 원한 영화 눈(kino-eye)이었다. 순응보다는 충돌, 현실보다는 꿈, 리얼리티보다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중요시했던 그의 작품은 언제나 논쟁적이고 아나키적이었다.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1928)는 자유 연상에 의한 이미지의 연속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그 속에 등장하는 ‘칼날이 그어버리는 눈’은 이후 부뉴엘이 구축할 영화 세계에 대한 선언이었다. 사진=유튜브캡처

1930년 성욕과 교회로 인해 고통을 받는 남녀를 중심으로 파리의 지식인 사회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두 번째 작품 「황금시대」(L'Age d'or)는 최초로 만들어진 유성영화로, 전갈과 쥐와 같은 혐오 동물의 등장으로 시작하여 강간하려는 남자, 그에게 밟혀 죽는 곤충, 시각장애인을 발로 차는 남자, 불에 놀라 쓰러진 여성을 방치하는 상류사회, 장난치고 도망가는 아이를 총으로 쏘는 남자 등이 나왔다. 특히 네 명의 패륜아 중 하나로 나오는 예수를 닮은 남자와 마지막 십자가 장면은 관객들이 하여금 영화가 신성모독을 했다는 인상을 받게 했다. 영화에 분노한 관객들은 상영이 끝난 후 스크린에 산과 잉크를 던져 훼손하고 극장 좌석을 찢는 등의 행동을 했다. 이 영화는 장 비고 등에 의해서는 찬양을 받았지만, 부뉴엘은 그 후 초현실주의가 현실을 개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비판 정신은 마지막까지 유지했다. 

 

스페인·멕시코 모두에서 종교·국가를 풍주자한 부뉴엘

그 후 스페인으로 돌아와 사회비판 다큐멘터리인 「빵 없는 대지」(Tierra Sin Pan, 1932)을 통해 가난을 잉태하는 적으로 교회와 국가를 비판하고 비참과 고통에서 헤어날 방법은 죽음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영화가 그리는 스페인 시골 마을의 참혹한 삶은 당시 공화당 정권의 낙관적인 선전과 어울리지 않아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15년간 영화를 만들지 못한 부뉴엘은 프랑스와 미국 등을 오가며 편집, 더빙 등의 활동을 계속했다. 

1946년 멕시코로 간 그는 작품 활동을 재개하고 1947년 「그랑 카지노」(Gran Casino), 「엘 그랑 칼라베라」(El Gran Calavera) 등을 만들었고 1950년에는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잊혀진 사람들」(Los Olvidados)을 만들었다. 부뉴엘은 이 영화에서 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멕시코 아이들의 황폐한 삶을 보여주면서 모두가 가해자이자 희생자인 회색의 인물들을 통해 출구 없는 세계를 비관적으로 그렸다. 그는 이 작품으로 그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앙드레 바쟁은 이 영화에 대해 잔인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퇴폐 가운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숭고한 인내를 보여준다고 했다. 또한, 잔혹함을 사랑과 열정의 행위로 변형시킨 ‘사랑에 관한 영화이며 사랑을 필요로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부뉴엘은 「빵 없는 대지」(Tierra Sin Pan, 1932)을 통해 가난을 잉태하는 적으로 교회와 국가를 비판하고 비참과 고통에서 헤어날 방법은 죽음뿐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위키미디어

이어 「수산나」(Susana, 1950), 「멕시코에서 버스 타기」(Subida al Cielo, 1952, 칸영화제 전위영화부문상), 「이상한 정열 l」 (1952), 「짐승」(El Bruto, 1952), 「환상의 전차를 타고 여행하다」(La Ilusi n Viaja en Tranva, 1953), 「범죄에 대한 수필」(Ensayo de un Crimen. 1955) 등과 함께 부조리한 질서에 도전하는 한 인간의 모험을 그린 「정원에서의 죽음」(1956)을 만들었다. 「정원에서의 죽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타락한 군부, 극한 상황에 도달하자 음험한 속내를 드러내는 가톨릭 신부, 세속에 물들지 않은 표상 같았지만 물욕을 드러내고 마는 벙어리 소녀, 재력에 매혹되어 노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가 결국 돈과 남성적 매력 그리고 젊음을 겸비한 청년을 향해 마음을 돌리는 매춘부 등 여러 극한적 인간 군상을 묘사하여 기존 질서에 저항한다. 

 

“종교적 헌신은 참된 자기해방과 양립할 수 없다”

멕시코에서 만든 마지막 영화인 「나자린」(Nazarin, 1958,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은 엄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성직자의 타락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세기 스페인의 유명한 작가인 베니토 페레스 갈도스의 소설의 배경을 독재가 지배하는 20세기 멕시코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부뉴엘은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을 잃은 성직자가 사랑과 형제애를 발견하는 과정을 묘사하여 참된 종교 영화라는 찬양을 받기도 했다.

1960년대 초 스페인 정부의 초청으로 스페인으로 돌아온 부뉴엘은, 갓 수녀가 된 여주인공이 모욕당하고 타락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거지와 부랑자를 예수에 빗대 표현한 「비리디아나」(Viridiana, 1961)를 발표하였다. 특히 최후의 만찬 장면을 예수 제자들 대신 거지, 도둑, 저능아들로 구성하여 고국에서는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그 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그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나자린」의 주인공은 일반적인 종교영화에서처럼 고난의 길을 걸어가지만, 그것은 결코 은총으로 향하는 구원의 길이 아니라 전도된 마조히즘의 치욕과 무지의 소치로 그려졌다. 종교적 헌신은 참된 자기해방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부뉴엘은 강조했다. 

이 사건 이후 스페인에서의 창작 활동에 한계를 느낀 부뉴엘은 1963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부르주아의 위선과 파시즘에 대한 비판인 「하녀의 일기」(Le Journal d'une Femme de Chambre, 1964)와 「세브린느」(Belle de Jour, 1967), 두 성직자의 여행을 피카레스크 방식으로 구성해 종교를 풍자한 「은하수」(1969), 기독교의 위선과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한 「트리스타나」(Tristana, 1970), 거듭된 만찬의 실패 뒤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부르주아의 모습을 통해 계급의 가면 뒤에 숨겨진 위선을 통렬하게 풍자한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 1972,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세상을 부조리의 연속으로 조롱하는 「자유의 환영」(Le Fant me de la Libert. 1974) 등을 만들었다. 그의 유작으로 남게 된 「욕망의 모호한 대상」(Cet Obscur Objet du Désir, 1977)을 포함해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부뉴엘이 평생 일관되게 보여 주었던 억압적이고 부조리한 가치 체계에 대한 풍자를 더욱 날카롭고 유쾌하게 표현하였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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