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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80] 문학을 통한 모순과의 조우 그리고 아나키즘의 유산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80] 문학을 통한 모순과의 조우 그리고 아나키즘의 유산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2.2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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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이후의 스페인 아나키즘
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 사진=알라딘

2019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에서 펴낸 교양과목 교재인 <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에는 현대 스페인 문학작품으로 1944년에 나온 카르멘 라포렛의 <나다>와 2001년에 나온 하비에르 세르카스의 <살라미나의 병사들>이 소개되어 있다. <돈키호테> 이후 400년 이상의 스페인어권 명작 11편 중 두 작품이므로 당연히 명작이겠는데 이 글을 쓰기 이전의 내가 그 두 작품을 몰랐으니 내가 무식한 것은 물론, 내 주변 사람들 또한 전혀 몰랐다고 하니 우리 사회가 스페인어 문학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 싶기도 하다.

스페인 현대문학이 모두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것을 보면 그 사건이 스페인 현대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내가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우리도 내전을 경험한 탓인데, 우리의 내전은 왜 스페인에서처럼 다루어지지 않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왜 <게르니카>가 없을까? 그래서 피카소가 <조선의 학살>까지 그려주었을까? 고맙기도 하지, 피카소! 나는 6.25 당시의 노래를 들은 적은 없지만 스페인 내전 당시의 노래는 자주 듣는다. 소설이나 시도 마찬가지다. 소설가나 시인들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일반 병사들의 작품도 스페인에는 얼마나 많은가! 6.25 당시 일반 병사들이 쓴 시도 분명 있었을 텐데 왜 나는 그것을 읽지 못했을까? 

 

<나다>·<살라미나의 병사들>가 그린 내전 후 허무

라몬 J. 센데르. 사진=위키미디어

무(無)라는 뜻으로 내전 이후의 허무한 상황을 묘사한 <나다>가 1944년에 발간될 때만 하더라도, 내전은 스페인에서 문학의 소재가 될 수 없었다. 물론 스페인 밖에서는 오웰, 헤밍웨, 말로 등을 통해 작품으로 나오기도 했다. 스페인인으로 내전을 다룬 작품은 내전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라몬 J. 센데르(1902~1982)의 <반격>(1937)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이 쓰였지만 아직 우리말로는 번역되지 못했다. 

스페인 내에서는 1975년 프랑코가 죽고 나서야 내전의 진상을 알리고 프랑코 군대와 정권의 만행을 고발하는 작품들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내전에 대해 말하지 말고 화해와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전 문학의 붐은 금방 사그라졌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다시 내전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분위기가 진작되었다. 그래서 과거사 청산을 위한 ‘역사기억법’이 2007년에 발표되었다. 

그런 분위기 형성에 기여한 2001년 소설인 <살라미나의 병사들>은 내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최근 스페인 문학의 경향을 대표한다. 소설은 로르카와 함께 공화국의 순교자로 불린 시인 마차도의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고 공화파가 저지른 방화와 성직자 집단학살을 고발한다. 그리고 비폭력 운동을 실현한 간디, 부하들에게 무기를 주지 않아 그들의 목숨을 구한 아옌데같이 특정한 정치적 이념의 수호자가 아니라 타인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도주의자들과 평화주의자들 그리고 무명용사들을 영웅처럼 묘사한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내전에서 무명용사였던 미라예스가 “이 엿 같은 나라는 아주 하찮은 마을의 아주 하찮은 거리 그 어디에도 친구 중 누군가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붙이지 않을 것입니다.”(266쪽)라고 말한다.

<살라미나의 병사들>는 부하들에게 무기를 주지 않아 그들의 목숨을 구한 하옌데 같은 평화주의자들을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이 소설은 <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에서 말하듯이 화해와 화합을 이루자는 것(180쪽)이라고 볼 수는 없다. 공화파와 프랑코파라는 정치적 이념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서로 화해하자는 식으로 이 소설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화해를 주장하는 공식적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봄이 옳다. 소설은 프랑코파의 위선과 기만, 엘리트주의와 계급주의, 보수주의와 권력 파벌주의 등을 분명히 고발한다. 나는 6.25를 비롯하여 남북한 대립 상황 그리고 그 원인인 일제강점기에 대해서도 이런 비판적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페인에서 2009년에 나온 만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2013년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그 만화가 속 작가의 아버지 아나키스트도 미라예스와 같은 무명용사로 내전 이후 어렵게 살다가 2001년에 자살한다. 

 

몬드라곤과 마리넬리다, 쇠퇴했던 아나키즘의 가능성

몬드라곤 로고. 사진=위키미디어
몬드라곤 로고. 사진=위키미디어

스페인 내란에 대한 영화도 많이 나왔다. 내가 가장 감동한 영화는 1992년과 1999년에 각각 만들어진 <아름다운 시절>과 <마리포사>다. 그 영화들에 출연한 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스는 저명한 아나키스트 배우이기도 했다. <마리포사>에서 고메스는 초등학교 교사로 나와 아이들에게 나비(스페인어로 마리포사)를 비롯한 곤충의 생태를 가르치면서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하지만 내전이 터지자 “빨갱이”라고 외치는 아이들은 고메스에게 돌팔매질을 당한다. <마리포사>는 6.25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아니, 그 뒤 지금까지도 실제로 있는 이야기이다.

이 같은 돌팔매질은 정치적 사회적 차원으로도 이어졌으며 스페인에서 아나키즘을 비주류 사상으로 만들었다. 공화주의 치하(1931-1936)와 내전 기간(1936-1939) 동안 아나키스트 노조주의는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나키스트 주요 조직인 노동전국연합(CNT)에 가입한 스페인 사람은 1931년 6월에 53만5천 명, 내전 기간에는 200만 명에 달할 정도였으나 지금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원인으로서는 40년에 걸친 프랑코파의 탄압, 조직 내부의 갈등, 조직의 세대교체 실패, 국제 지원의 단절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아나키즘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가령 1956년에 설립된 아나키즘 자치공동체인 몬드라곤 공동체는 한국에도 일찍부터 알려졌다. 인간적이면서 효율적인 경제체제로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는 노동자가 출자해 조합원이 되고 동시에 소유자로 직접 기업 경영에 참가하고 관리한다. 따라서 고용·피고용의 노사관계가 없고 해고도 없다. 회사 경영의 악화로 임시 휴직 상태가 되어도 노동자들은 기존 월급의 80%를 지원받고 보통 1년 이내에 다른 자리를 받는다. 이윤도 잉여금의 70%는 노동자 조합원에게 주어지고 배분된 이윤은 강제로 저축된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자유 가입, 민주적 조직, 노동주권, 자본의 종속성·수단성, 관리 참가, 조합 간 협동 등의 기본원칙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상호연대와 상호협력에 입각해 조합원들은 서로 고통을 분담하고, 기업들은 사정이 어려운 다른 기업을 돕는 방식으로 공생 공존한다. 비정규직은 전체 조합원 수의 15%를 넘지 않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이도 없다. 노동자 간의 임금도 최고와 최저 간 10배 미만으로밖에 차이가 안 난다. 이러한 몬드라곤 협동조합 속에서는 노동의 즐거움과 동료와의 친밀감이 넘쳐난다.

마리넬리다 로고. 사진=위키미디어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이 기업 공동체라면 스페인 남부 안다루시아의 마리넬리다는 직접 민주주의, 협동조합, 실업률 제로, 무상 주거, 무상 의료 등을 특징으로 하는 마을공동체다. 마을의 모든 정치는 평균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의회에 누구나 참여하고 발언하는 직접 민주주의로 이루어진다. 협동조합은 몬드라곤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주택은 상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주어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므로 누구나 집을 가지며 집을 개조해 가게를 내거나 상속할 수 있지만 집과 토지 자체의 매매는 불가능하다. 집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것이라는 원칙이 마리날레다 마을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빵과 자유와 문화가 주어진다. 공원에는 테니스코트, 야외 체육관과 수영장, 석조 원형 극장 등이 있어서 스포츠와 영화 연극 감상의 기회가 거의 공짜로 주어진다. 개인 소유의 술집과 카페가 영업을 하는데 투기 목적의 프랜차이즈 기업이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문을 열 수 있다. 그러나 마리날레다의 오늘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30년 전만 하여도 그곳은 극심한 빈곤으로 허덕였다. 살기 위해 투쟁을 시작한 마을 사람들은 법을 어기기도 하면서 국가의 폭력에 맞서서 나름의 아나키 유토피아를 실현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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