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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스러운 인문계의 추락
걱정스러운 인문계의 추락
  • 이덕환
  • 승인 2021.10.20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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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논설위원

인문계(문과)가 추락하고 있다. 무늬만의 ‘문이과 통합형 수능’ 때문에 입학도 어려워지고,  정체불명의 ‘디지털 전환’ 때문에 취업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문과의 학생들이 ‘코딩’ 과목에서 출구를 찾고 있다. 인문계 교수들도 불만이다. 정부가 인간의 가치와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연구’에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에나 어울리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낯선 것은 아니다. IMF 이후에는 이공계 기피가 심각했다. 이과를 선택하면 골치 아픈 수학·과학을 공부해야 하고, 대학생활의 낭만도 즐기지 못한다. 졸업 후에 취업이 쉬운 것은 다행이었지만 오지의 생산현장에서 일생을 보낼 각오도 필요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공돌이’가 가장 먼저 퇴출 대상이 된다는 IMF의 경험도 뼈아픈 것이었다. 과학에 대한 무지를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는 ‘문송이’들이 압도하는 사회에서 ‘공돌이’의 삶은 고달픈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학생과 학문 영역을 ‘문과’(인문사회 계열)와 ‘이과’(과학기술·의약학 계열)로 구분하는 관행은 한국·일본·중국·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퇴행적인 것이다. 서울대 김영식 교수의 『인문학과 과학』(돌베개, 2009)에 따르면 학문의 문·이과 구분하는 전통은 동·서양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것이고, 현대 사회의 직업을 문·이과로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문과’와 ‘이과’를 구분해주는 기준도 분명하지 않다. 고도의 논리성을 강조하는 수학이 ‘이과’ 과목이라는 인식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억지일 뿐이다. 우리에게 전형적인 문과로 인식되고 있는 경제학은 수학적 분석을 핵심으로 하는 분야이다.

교육에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적성과 진로가 문·이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수학·과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문과 수험생들이 이과 수험생들보다 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사실 학생을 문·이과로 구분하는 교육은 19세기 말 서양의 난학(蘭學)을 가르치기 위한 인력·재정이 부족했던 일본이 만들어낸 비뚤어진 제도였다. 제한된 인력과 재정으로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이과 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문과 학생들에게 신(新)학문을 포기하도록 강요한 엉터리 교육제도였다는 뜻이다.

초중고등학교의 문·이과 구분의 폐지의 필요성은 1993년의 제6차 교육과정 개정에서 처음 지적되었다. 문·이과 구분 폐지를 위해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개설했고, 문·이과의 구분이 없는 통합교과적 ‘수능’을 도입했다. 그러나 언어·수리·탐구·영어로 구성되었던 수능은 2년 만에 수많은 선택과목으로 구성된 ‘짝퉁 수능’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올해의 ‘문이과 통합형 수능’도 정체불명의 ‘표준변환점수’를 앞세워서 사실은 문·이과 구분을 강요하는 기만적인 제도일 뿐이다. ‘화법과작문’과 ‘언어와매체’의 상대적 난이도를 조절해서 수학능력의 우열(優劣)을 가리겠다는 시도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대학에서의 문·이과 구분에 의한 폐해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인문사회의 학술연구는 인간의 가치와 사회현상을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것이고,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은 인간의 정체성까지 변화시킨다는 인문계 교수들의 인식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치열한 기술 경쟁에 내몰린 기업이 인문계 졸업생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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