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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동자와 청년 연구자 사이에서
청년 노동자와 청년 연구자 사이에서
  • 김우식
  • 승인 2021.07.06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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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내가 처음으로 노동을 했던 것은 한 편의점에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노동자가 되었다. 손님이 오면 물건을 계산하고 담아줬고, 상품을 매장에 진열하고, 매장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학교 내 편의점이어서 12시가 넘으면 마감을 했는데 마감할 때는 유통기한을 확인해서 관리하고 현금을 정산했다. 일할 때 밝게 인사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손님도 있었지만, 때때로 무례한 손님도 있었다. 이때 이후로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분들한테 먼저 인사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하루는 시험 기간에 전날 밤을 새워서 힘들어서 잠깐 걸터앉았는데 CCTV로 그것을 본 점장에게 욕설을 듣기도 했다. CCTV로 노동자를 감시하는 것은 CCTV의 사용 범위를 제한하는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 위반이다.

서비스 종사자로 일하는 많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앉는다는 행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카페와 영화관에서도 일했지만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휴식시간이 보장되어도 앉을 자리는 보장되지 않았고 탈의실이나 비상계단에서 앉아서 쉬어야 했다.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을 했던 친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일했던 놀이기구 조작하는 업무가 정직원으로 대체되자마자 의자가 생겼던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이처럼 앉는다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준다.

휴게시간과 관련해서 영화관에서 일할 때 특이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내가 일했던 영화관은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주지 않았는데 근로기준법 제54조에 따르면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이 4시간 이상이면 30분, 8시간 이상이면 1시간의 휴게시간을 줘야 한다.

일하면서 처우에 불만을 품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영화관을 그만둘 때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를 모두 적어서 고용노동부에 진정했다. 이전까지 영화관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6~8시간 일하고 쉬고 간다는 식으로 근로기준법을 교묘하게 피해갔지만, 여러 지점에서 민원이 접수돼서 고용노동부의 경고를 받자 더는 꼼수를 부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주기 시작했는데 영화관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무급 휴게시간 때문에 오히려 퇴근 시간이 늦어진다고 불만을 얘기했다. 불만은 얼마 가지 않았는데 곧 영화관의 성수기 여름철이 되자 몰려오는 손님과 늘어나는 일거리 때문에 휴게시간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 정도로 노동강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세 가지다. 첫째, 근로기준법 위반 민원을 넣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진정으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서 민원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둘째, 문제를 제기한 사람과 혜택을 받은 노동자가 완전히 별개의 집단이라는 점이다. 이 괴리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도 혜택을 받은 노동자도 ‘효능감’을 느끼지 못했다. 셋째, 노동강도의 급격한 변화로 휴게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태도가 바뀌었던 점이다. 서비스업의 특성상 특정 시간대, 기간에 더 많은 고객이 방문하고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쉽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사용한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청년 노동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석사학위논문과 최근에 지도교수님과 작성했던 논문으로 이어진다. 계속 청년 노동을 연구하고 얘기하는 것은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최근에 청년이라는 대상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청년 담론에서 청년 노동자는 항상 빠져있다. 특히 노조조차 없는 곳에서 일하는 청년 불안정 노동자의 목소리는 음소거되어 있다. 노동자의 목소리는 그 내용이 정당할지라도 소음 취급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노이즈 캔슬링’은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수많은 청년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음소거된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청년 노동자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구의역, 평택항, 포스코 등의 공통점은 갑자기 터진 사고가 아니라 이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점이다. 산업재해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노동자 안전의 책임을 기업에게 부과하고, 노동안전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김우식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 상임연구원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마쳤고, 올해 8월 졸업예정이다. 물류센터와 편의점의 노동과 같은 한국의 청년 불안정 노동자의 노동 문제를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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