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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의 시대
탐정의 시대
  • 조영일 문학평론가
  • 승인 2018.10.08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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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보다 소설] 조영일 문학평론가
미나토 가나에의
『백설공주 살인사건』(재인 펴냄, 2018)

미나토 가나에의 『백설공주 살인사건』(재인 펴냄, 2018.01)은 여느 추리소설처럼 시체의 등장으로 시작해 누가 살인자인지 밝혀짐으로써 끝난다. 그래서 장르의 규칙에 매우 충실한 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존재한다. 더구나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다행스럽게 미수로 끝나긴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살인자를 찾으려고 애를 쓸수록 추적자(이쪽 용어로는 탐정)는 어느새 쫓기는 자(범인)가 되어간다. 그렇다고 윌리엄 요르츠버그의 『폴링 엔젤』처럼 쫓는 자가 실은 쫓기는 자였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는다. 

이 소설에서 소위 탐정 역할을 하는 것은 아카보시 유지라는 계약직 주간지 기자다. 하지만 그는 총 5장으로 구성된 본문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은 사건이 종결된 후 책의 부록에 실린 SNS의 흔적과 그가 작성한 기사에서다. 하지만 그의 그림자는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도 그럴 것이 본문의 대부분(4/5)이 그를 인터뷰어로 놓고 이루어진 고백이기 때문이다.

특종을 노리는 계약직 기자의 SNS활동과 미모의 여사원 살인사건을 둘러싼 여론재판이 엉뚱한 사람(시로노 미키)의 ‘마음을 살해’(소설 속 표현)하고 만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관련자들의 고백으로 이루어진 본문과 2차적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부록(SNS와 언론매체가 생산한)을 적절히 재배치하고 변형시킨 영화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을 최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서치>와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재나 형식적 장치들에 대한 평가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매체가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란 해당 장르가 시작된 지점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매체적 환경의 변화가 추리소설(탐정소설)을 탄생시켰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할지 모른다.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에드가 앨런 포는 그 유명한 「모르그가의 살인사건」(1841)을 발표한 후, 속편의 형태로 「마리 로제의 미스터리」(1842)라는 소설을 쓴다.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창시한 장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리 로제의 미스터리」의 뒤팽은 현장 확인이나 탐문 수사는 하지 않고 오로지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선정성만을 추구하는 신문기사를 통해 범인을 추리하고 있다. 덕분에 소설은 지루한 신문 발췌와 그에 대한 코멘트로 채워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추리에 대한 추리’, 바꿔 말해 ‘탐정들에 대한 탐정’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도 탐정되기를 강요받는다. 이는 사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의 구조를 완전히 거꾸로 세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모두가 탐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탐정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마리 로제의 미스터리」의 패러디이다. 먼저 마리 로제 사건이 주요한 정치적 현안이 옆으로 제켜질 정도로 대중과 언론의 큰 관심을 받은 것은 피해자가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물론이거니와 대중과 언론은 너나 할 것 없이 탐정이 되어 ‘진실에의 의지’를 전시한다. 심지어는 일부 시민은 경찰의 무능력에 분개하여 폭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왜 이들은 그토록 흥분하는 것일까. 감정이입이 하나의 능력으로 재평가 받는 시대, 그것은 탐정의 시대이기도 하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조장하고 고조시킨 것은 물론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미디어들이었다. 이에 대해 포는 뒤팽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문의 목적은 진실의 추구가 아니라 센세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진실이란 그것과 일치될 경우에만 추구된다.” SNS를 이런 미디어의 1인화(문학용어로는 '내면화')라고 했을 때, 그 역시 진실을 외치기는 하지만 결국 센세이션 소비에 불과하며, 따라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죽이고도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이 작가 미나토의 문제의식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비극을 막는 길은 그녀가 그렇게 한 것처럼 모든 탐정들을 무안함의 구렁텅이로 집어넣은 ‘작위적인 장치’(뜻밖의 범인 검거)밖에 없다. 물론 포의 경우는 ‘감정이입의 무더기’에서 진실을 찾아냄으로써 고전적 탐정의 역할을 훌륭히 완수시키고 있다. 

조영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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