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꿔놓는데, 인문학은 못 따라가고 있지 않나요?”
“과학이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꿔놓는데, 인문학은 못 따라가고 있지 않나요?”
  • 양도웅
  • 승인 2018.09.1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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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국회의원(바른미래당)·한국인문학총연합회·한국연구재단 인문전략연구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문학의 지평」 개최

현재 4차 산업혁명이 촉발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과학기술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설령 좁은 의미로 한정해 4차 산업혁명이 기술(공학)과 관계한 것이라 해도, 현재 인문사화계가 담론 생산 측면에서 과학기술계에 뒤쳐진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사람과 사회에 대한 물음,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이 주로 인문사회계에서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이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과학이 인류 문명에서 (처음으로) 주도권을 잡은 계몽주의 시대(17~18세기)가 21세기에 다시 도래한 것일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2016년으로부터 불과 1년 뒤, 조지프 히스가 쓴 『계몽주의 2.0』(이마 펴냄, 김승진 옮김)이 번역·출간된 것도 상징적이다. 인문사회계는 그럼 과거 종교(와 철학)이 그랬듯, 사회적 영향력이 감소하는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할까?

그런데 이 사회적 영향력 감소는 실질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것은 사람들이 이제 인문사회계의 발언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인문사회계에 재정이 넉넉치 않다는 것(소위 말해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지난달 31일, 오세정 국회의원(바른미래당)·한국인문학총연합회·한국연구재단 인문전략연구팀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인문학의 지평」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앞서 박창원 한국인문학총연합회 공동회장은 “과학기술을 뒷받침할 많은 법률(헌법 제127조)이 존재하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그렇지 못하다”며 “인문학 진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세정 의원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학문의 균형적 발전이 강화돼야 국가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이날 토론회의 두 발언을 소개한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 이번 심포지엄의 중요한 취지 가운데 하나가 인문학 진흥을 위한 국가기구 설립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국가기구의 성격과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다음 2가지를 정부와 국회 그리고 인문학자에게 제안 드립니다.

첫째, 인문학자를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인문학진흥사업을 벌이는 또 하나의 기구를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HK, CK 등의 인문학진흥사업은 대학을 적자생존의 정글로 만들고 인문학자들을 사업자로 전락시켰습니다. 이제는 인문학을 사실상 죽이는 진흥사업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리는 지원정책을 펴야 합니다. 인문학자를 사업자로 만들고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라 현 정부가 국정의 목표로 삼듯이 한국을 사람 중심의 나라로 개조할 수 있는 싱크탱크로서의 국가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인문학자가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책임이 있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계몽’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문학 위기 담론을 “국가와 사회가 인문학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구걸하는 자세에서 탈피하여,“ 인문학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체로 입장 전환을 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앞으로 인문학자가 있을 곳은 어디입니까? 저는 이 같은 인문학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성찰할 때, 오늘 국회에서의 이 토론회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 삶의 미래와 국가의 비전을 설계하는 인문학자가 주체가 되는 국가 학술기구 탄생의 출발점이 되길 희망합니다.

현재 하나의 사회적 목표로 상정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분야 가운데 인문학을 찾기란
쉽지 않다. 위는 2017년 11월 기준, 정부의 4차 산업혁명 대응 계획. 자료 출처=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

남기심 전 국립국어원장: 요즘 인문학은 자연과학이 접수한 듯한 느낌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어떤 것인가?”하는 등의 전통 인문학의 주제에 대해서 과학이 부정하기 어려운, 설득력 있는 이론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고, 그것이 대중의 폭넓은 공감을 얻어 상식화하고 거침없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유전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마음의미래』,『 행복의기원』 등에서 보듯, DNA, 유전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뇌과학, 비교행동학 등 과학이나 과학에 가까운 분야가 사람들의 인생관, 세계관을 바꿔놓고 있는데 인문학이 그것을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들 생각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意識(Consciousness)과 관련한 문제까지 과학이 깊이 파헤치고 있어서 과학이 인문학을 무력화하고 주도권을 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제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인문과학이 이러한 과학 쪽의 지식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은 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인문학의 뿌리는 기근, 질병, 가난에 속절없이 시달리던 옛날에 있는데, 이런 틀에서 벗어나는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빅뱅 이론 등 천문학의 연구, 양자론 같은 물리학의 성과가 사람들의 사고 체계, 사상 체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어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인문학이 팔리지 않는 까닭이 아직도 자연과학과 너무 거리가 멀어 사람들이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하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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