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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진흥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인문학 진흥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 문성훈 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8.09.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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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4차산업혁명 시대 인문학의 지평’ 토론회에 부쳐

대개 인문학이란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이자 그 결과다. 문학은 개개인의 실존적 삶을 통해, 역사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그리고 철학은 본질에 대한 질문을 통해 단지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가치가 있을지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따라서 인문학이 사라지면 삶에 대한 성찰도 사라지고, 인문학의 위기는 고스란히 삶의 위기로 이어지고 만다.

개개인으로 말한다면 삶의 의미나 가치 대신 욕구와 쾌락만을 앞세우고, 목적은 망각한 채 수단에만 집착한다면, 이는 삶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경제 발전을 강조하며 물질적 재생산에만 몰두하고 공유된 가치 지평을 형성하는 상징적 재생산을 등한히 한다면, 이 사회는 성찰 없는 사회가 되고, 사회통합 자체도 위태롭게 된다. 

이런 점에서 개인이나 사회의 성숙을 위해서는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또한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이 부흥해야 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TV방송이며, 언론사, 각종 기관 및 단체 등에 인문학 강좌가 넘쳐난다. 가히 인문학 열풍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인문학은 고사 직전이다. 인문 학과들은 축소, 통폐합, 폐과되고, 이는 고스란히 인문학자의 위기로 확산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인문학 박사학위 취득자는 평균 43.3세로서 이중 학업전념자의 고용률은 55.6%이며, 또한 이중 75%는 임시직이고, 평균연봉은 1천372만원이다. 

중년의 나이에 최저생계비 수준의 연봉을 받고 과연 인문학 연구에 전념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인문학 열풍이라 해도 이것이 인문학 연구자들의 창의적이고 내실 있는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지는 못하다. 인문학 열풍은 많은 경우 인문학을 재미있고, 쉽게 풀어주는 개인적 말솜씨, 글재주 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문학 열풍과 인문학 연구가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문학자를 살리고, 인문학을 부흥시킬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학술 진흥을 담당하는 한국연구재단은 지금까지 연구 활동을 지원했지, 연구자를 지원하지 않았다. 연구재단은 연구계획서를 심사해 선정된 연구만을 선별적으로 지원했지, 일정한 연구 역량을 갖춘 연구자들을 보편적으로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만 해도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5천892건의 전문학술지 논문이 생산됐고, 올해에는 2천242억 원이 인문사회분야에 지원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매년 인문사회분야에서 생산되는 논문 편수는, 전문학술지가 총 1천300여개가 넘는 것으로 보아 어림만 잡아도 2만6천건에 이르며, 따라서 2만 건 정도의 논문은 지원 없이 생산된 셈이다. 만약 연구지원이 연구 활동 이 아니라, 연구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예산규모라도 전문학술지에 연간 1편 이상 논문을 쓰는 비 전임교원 연구자들에게, 아무런 선정 삼사 작업 없이 일괄적으로 1천만원씩 지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최소 조건을 충족하는 연구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매년 일정액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면, 연봉 1천372만원 수준의 비전임교원 인문학자의 생계비 해결은 물론이고 지금보다 더 많은 연구를 기대할 수 있다. 더구나 연구계획서에 대한 선정 심사 없이 연구지원이 이뤄진다면 인문학자들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연구가 확대될까? 아니면 더 어려워질까? 

지난달 오세정 국회의원(바른미래당), 한국인문학총연합회, 한국연구재단 인문전략연구팀 주관으로 인문학 진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인문학 분야에 대한 R&D 예산 증액이 요청됐고, 인문학을 비롯한 학술정책을 관장하는 국가위원회의 창설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자의 위기로 나타나는 시기에는 인문학 지원 방법의 패러다임 전환을 생각해 봐야 한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문성훈 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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