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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교수들은 비명을 질렀다 … ‘교수들 꼼짝마’ 김영란법 10조4항
사립대 교수들은 비명을 질렀다 … ‘교수들 꼼짝마’ 김영란법 10조4항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10.24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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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 일러스트 돈기성

외부강의 규정이 ‘외부활동’ 규제로…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하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20여 일이 지났다. 사회 곳곳에서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곤 있지만 투명한 사회를 향해 가는 ‘성장통’으로 여기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일부에선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 취지와 현실 간 괴리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발맞춰 대학도 ‘청탁금지’를 주무할 부서를 만들고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사립대 교수들은 비명을 질렀다. 청탁금지법 10조4항 때문이다. 청탁금지법 10조는 외부강의 등의 사례금 수수를 제한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 4항이 좀 수상하다는 것. 10조4항 ‘소속기관장은 제2항에 따라 공직자 등이 신고한 외부강의 등이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그 외부강의 등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항은 외부강의 등에 대한 ‘사전신고 의무’를 담고 있다. 사전신고 의무에 따라 총장은 교수의 특정 외부활동을 ‘불허’할 권한을 갖게 됐다. 게다가 청탁금지법은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과 징계처분 권한까지 소속기관장에게 위임하고 있다. 

그간 사립대 법인의 비합리적 징계와 보복성 인사를 경험해 온 일부 사립대 교수들은 10조4항의 힘(!)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청탁금지법은 단순히 ‘안 주고 안 받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법인 것이다. 대학총장 혹은 이사장이 청탁금지법 10조4항을 얼마나 포괄적으로 적용하느냐에 따라 제재 수준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설립자가 운영 권한을 행사하는 ‘오너대학’ 또는 설립자 일가가 대학을 운영하는 이른바 ‘족벌사학’의 경우 10조4항은 교수들의 대외활동을 합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크다는 게 사립대 교수들의 우려다. 

지방의 한 오너대학(사립대) A교수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첫날 “정부 비판적 행사에 나가려 신고를 하면 대학에서 불허할 수도 있다”라며 “무단으로 행사에 참석할 경우 경찰 등 사법기관을 통해 신고라도 되면, 이 신고된 사실 자체로 추후 불이익을 받을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서울 사립대 B교수는 “교수들의 학문적 자유, 사상적 자유에 대한 ‘긴급조치 발동권’을 허락해준 셈”이라고까지 했다. 모두 10조4항을 염두에 둔 ‘비명’이다. 

실제로 B교수의 소속대학은 이달초, 전체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청탁금지법을 ‘포괄적으로’ 적용했다. 권익위가 대학에 전달한 ‘청탁금지법 해설집’에 따르면 “외부강의 등은 ‘직무 관련성’이 있고 ‘다수인을 대상으로 의견·지식을 전달하거나 회의 형태’인 경우”라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 대학은 “2인 이상과 의견을 주고 받을 때도 사전보고를 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다수인을 대상으로 한 회의’가 ‘2인 이상과 의견을 주고 받는 행위’로 바뀐 것이다. 

‘재단에 밉보인 교수들’ 정당한 비평활동, 해교행위 둔갑 우려

대학 입장에선 더 조심하기 위한 측면에서 해석을 달리 할 순 있지만, 10조4항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될 경우 사립대 교수들의 외부활동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청탁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외부강의 등’이 실제 대학현장에선 ‘외부활동 등’으로 변용되면서 교수들의 부담은 한층 더 커졌다. 

서울 대규모 연구중심 사립대에서 10여년간 주요 보직을 역임한 C교수는 “재단이 학교에 밉보인 교수의 사전신고서를 근거로 연구실을 자주 비웠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교수는 또 사전신고가 단순히 사전신고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소속대학 정책이나 정부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해 소속대학에 불이익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경우 10조4항에 따라 해당교수의 활동을 제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수의 정당한 비평활동이 해교행위로 손쉽게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C교수는 “이 같은 부작용이 예상되는 ‘사전신고’는 도대체 교수의 부정청탁 가능성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처럼 청탁금지법은 공무원과 교사, 기자, 교수 등에게 법의 잣대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서 학회활동, 비평, 정책자문 등이 잦은 사립대 교수들 입장에선 재갈을 물리는 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법 시행 20여일이 지난 지금, 사전신고를 악용한 사례와 그에 대한 판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선례의 당사자가 되고 싶지 않은 교수들은 대학과 재단의 눈치를 보면서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다. 

최근 청탁금지법을 제시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내부에서조차 학생이 교수에게 건넨 캔커피 한 잔이 법령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금액은 1천원 내외지만 ‘대가성’이 있다는 쪽과 대가성이 있다고 해도 캔커피 한 잔이 부정청탁의 효력을 발생시키긴 어렵다는 쪽으로 나뉜 것이다. 그러던 20일, 권익위는 교수의 ‘주례 사례금’을 사회상규상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직무 관련 대가성보다는 사적인 관계에서 주고받는 사례금이라는 판단에서다. 

청탁금지법이 사립대 교수의 ‘외부활동 금지법’이 되지 않으려면 “10조4항에 대한 법원의 냉정한 판단과 더불어 재단, 대학, 교수들이 일종의 ‘선(가이드라인)’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방 국립대 D교수(법학)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사전신고를 통해 교수의 외부활동을 투명하게 운영하려면, 사전신고로 인한 직·간접적 불이익이 뒤따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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