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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피 우는 새는 입을 열지 않는다
구슬피 우는 새는 입을 열지 않는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09.04 20: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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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교육부가 지난달 31일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대학가에서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소리나지 않게 엷은 미소를 띠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절규와 비명, 통곡을 오가며 결과를 되돌리려는 대학도 있다. 

▲ 최성욱 기자

지난 2011년부터 교육부는 매년 대학을 평가해(하위 15% 지정) 재정지원사업·학자금대출을 제한하고 경영컨설팅을 통해 학과구조조정 등을 유도해왔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A~E 5개 등급으로 나누어 하위그룹(D·E등급) 20여 개 대학을 지정했다. 평가기간도 3년 주기로 늘렸다.

대학들이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컨설팅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3년 내내 ‘D급 대학’ ‘E급 대학’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야 하니 더욱 그렇다.  

최종결과를 발표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24일 교육부는 하위그룹 대학들에만 점수를 알렸다. 이의신청을 주고받기 위해서다. 평가에 대한 불만은 이때부터 터져나왔다. 특히 국립대인 강원대는 총장이 사퇴하면서 교육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것을 알렸다. 예상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든 대학들도 일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반면 예상치 않게(?) A등급을 받은 대학들은 홈페이지에 ‘교육부가 인정한 A등급’이라는 명패를 큼지막하게 달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뿌리는 등 열심히 홍보했다. 수험생·학생·학부모를 비롯, 대학 구성원들은 SNS 등을 통해 ‘A등급’이라는 성적표를 자랑스레 선전했다. 

언론도 이 대열에 가세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발빠르게 취재해 ‘A등급 대학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아니, 뜻하지 않게 이슈의 맨 앞에서 홍보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부가 최근 ‘대학구조개혁’이라는 정책을 전국민을 대상으로 ‘지나치게’ 이슈화하고 있고, 언론이 앞다퉈 이를 대리홍보해주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넓은 의미에서 ‘정부 주관의 대학평가’로 보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평가는 말 그대로 ‘정부가 대학에 지원해오던 사업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부제가 ‘재정지원제한 평가’다. 평가는 자연히 ‘교육부가 원하는 정책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예컨대 교육부가 최근 대학에 강조하는 것은 △취업 △산학협력 △교양교육 △해외연수 등이다. 대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의 취업을 알선하고, 산업체와 MOU를 체결해 현장실습을 중계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총장 직선제처럼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은 교내 파벌을 조장하니 없애는 대신, 교육부에서 내려보낸 사람으로 뽑아 교육부 정책을 군소리 없이 이행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대학구조개혁정책’은 고등교육 혹은 대학의 전반적인 부문을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이번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대학의 관계자들은 마치 ‘교육부 인증’이나 받은 것처럼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조금만 틀어서 보면 ‘A등급’이 얼마나 민망한 결과인지 알 수 있다. 

이번 구조개혁 평가에는 △법인 건전성 △기숙사 운영 △입시제도 등 대학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대한 평가지표가 빠져 있다. 이런데도 교육부는 대학에 A부터 E까지 등급을 매겨 ‘인증마크’를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전국 200여개 4년제 대학과 140여개 전문대학을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평가하려면 교육부 내 평가인력이 얼마나 돼야 할까. 교육부의 꼼수는 바로 이 대목에 숨어있다. 대학 재정 지원을 위해 사업공고를 내놓고 평가는 전국적 규모로 발표한 것이다. 따라서 평가지표가 대학의 모든 역량을 포함할 이유도 명분도 없고, 1밀리그램의 오류도 없는 공정성을 기할 이유도 없다. 그저 자신들의 정책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지원금을 줘도 아깝지 않은 대학 순으로 A등급을 주면 되는 것이다.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교육역량강화사업, 학부교육선도대학지원사업과 유사한 평가틀을 따르고 있다. 쉽게 말해 교육부가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늘 해오던 평가라는 말이다. 교육부가 자체적으로 평가해 해당대학에 알리면 될 것들을 ‘대국민 쇼(show)’적인 요소를 가미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A등급이 ‘친교육부적’ 교육을 가장 잘 이행하고 있는 대학의 리스트라고 본다면 비약일까. 

대학이 교육부와 구태여 맞설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교육부가 대학에 취업이나 산학협력을 강요하고 커리큘럼·시간표·교수진 구성 고치라 하고, 출석부 가져오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정원까지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들은 하나같이 구슬피 우는 새가 되어 말을 삼키고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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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2015-09-09 13:12:31
저도 대학가족인데 옆에 있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보면서 안스러웠는데 정확한 지적을 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