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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은 어디로? 말들이 판치는 위기의 시대
사슴은 어디로? 말들이 판치는 위기의 시대
  • 곽복선 경성대·중국통상학과
  • 승인 2014.12.20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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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를 추천한 이유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 ‘指鹿爲馬’는 흑백이 뒤바뀌고 시비곡직이 뒤죽박죽이 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진시황이 죽고 2세인 호해가 황제였던 시절, 권신이었던 조고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다른 신하들이 자기 言을 들을지 어떨지를 시험하기 위해 馬을 가리켜 사슴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됐다(사마천의 『사기』중 「진시황본기」). 처음에는 윗사람을 농락하는 것을 일컫는 뜻이었으나 지금은 흑백이 뒤바뀌고 사실이 호도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2014년 역시 어느 해나 다름없이 온 나라가 들끓는 한 해를 보냈다. 좌파는 좌파대로 우파는 우파대로, 지성은 지성대로 반지성은 반지성대로,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기성은 기성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올 한해 우리는 이 사회에서 벌어졌던 그 수많은 일들의 진정한 내용을 알 수 있을까.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그 참 모습을 알 수 있을까. 일 년 내내 언론을 장식했던 ‘경천동지’할 사건사고들 틈 속에서 정말 어떠한 개인적(단체적) 의도가 전혀 없는, 구부려지지 않은 ‘사실’ 그 자체를 우리가 알 수 있었을까.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각자 자기의 렌즈로 해석하는 것일 뿐, 아무도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이버공간의 잔인한 무차별성이 불러오고 있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진주를 찾았던 것일까.

2014년 벽두부터 벌어졌던 가슴 아픈 일들, 우리 사회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 ‘세월호’ 참사, 사회 각지에서 벌어졌던 극심한 대립과 투쟁, 입맛에 맞는 것만을 보여주려는 좌우의 언론들과 팔로워의 숫자가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좌우의 데마고그들, 자기 밥그릇은 절대 놓을 수 없고 남의 밥그릇은 깨려는 생각에 몰두하는 자칭 개혁자들, 치유하고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들어붓는 정치꾼들, 책임은 손톱만큼도 지지 않으려 하면서 권리만을 떠들어대는 시민단체 운동꾼들, ‘신상털기’가 제 타고난 사명인 듯 온갖 독수를 펼치며 ‘아니면 말고’를 만트라로 삶아 사회를 향해 저주를 내뱉는 사이버족들, 민주를 부르짖으면서 자신들은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사회운동꾼들, 북의 인권은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고 남의 인권만 강렬히 비판하는 회색의 사이비지성들, 기성세대를 향해 삿대질하며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려는 청년세대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라고 깔아뭉개려는 기성세대들, 비판만 하며 진정한 대안은 내놓지도 못하는 소위 사회의 내놓으라하는 지성들, 인성의 함양은 저 먼 나라의 이야기이고 이념교육에 빠져있는 자칭 시대의 교육사명자들, 관용을 외치면서 사이비 진리를 외치는 종교인사들, 서로가 서로를 골통이라고 손가락질 하며 사회를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좌우의 골통들, 서로가 서로에게 흠집을 내며 절대로 남이 잘한 점은 이야기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내 탓이 아니라 국가 탓으로 돌리는 시대의 선각자들. 2014년도에도 이러한 병리현상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아니 카오스적으로 더욱 팽창했다.

2014년 옆 나라 중국에서는 ‘중국의 꿈’을 통통하게 꾸면서 달나라에 우주선을 보냈다. 해저 6천 미터를 탐사하고, 항공모함을 만들고, 스텔스기를 발진시키고,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으로 에너지구조를 바꿨다. 또한 국내외에서 에너지자원 확보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며 국내에선 수자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산업적으로는 100여개의 기업이 이미 포춘500대 기업에 진입했는데도 모든 산업부문에서 10~20여개의 대기업을 육성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글로벌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달려가고 있다. 수많은 지역개발과 도시화를 통해 286개에 달하는 도시들(地級市)을 연결하며 광역도시를 만들어가면서 경제적 슈퍼파워가 돼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정치와 경제는 자신들의 순간적인 이익과 찰나의 영광에 매달리며, 사회 각 계층이 자기들만의 ‘의리’에 매달려 자충수를 두고 있다. 사회는 잠시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독주를 마시고 또 마시고 있다.

2014년은 연말까지도 ‘지록위마’가 거듭됐다. 우리는 사슴을 보기나 했던 것일까. 경마장에서 말만 봐왔기 때문에 모든 짐승들이 ‘말’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말이 달려가기만 하면 좋을 텐데 이제는 공간을 날아서, 아니 공간도 3차원 공간을 넘어 사이버공간으로 날아서 사슴들을 짓밟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사슴도 말도 구분 못하는 청맹과니들로 이뤄져 있는 사회는 아닐까.

2014년은 우리 가슴을 ‘말’로 가득 채웠던 한 해였다. 우리 삶을 수많은 ‘말’들이 밟고 또 밟고 지나갔다. 우리는 ‘말’만 보았지 ‘말’의 본 모습은 보지 못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마 우린 눈을 ‘뜨고’있지만 가슴은 ‘닫고’ 살았나 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사슴이 사슴이길 기대해 본다.

곽복선 경성대·중국통상학과
1990년부터 2012년까지 KOTRA에서 근무했으며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현장 경험을 학문화하고 있다. 저ㆍ역서로 『중국경제론(공저)』,『죽림칠현』 등이 있고, 현재 중국지역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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