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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실체 규명한 ‘학제간 연구’ … 새 학문 지평 열었다
서울의 실체 규명한 ‘학제간 연구’ … 새 학문 지평 열었다
  • 이존희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 승인 2011.12.12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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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학연구소의 평가와 전망

서울학연구소는 1993년 6월 30일 서울시립대 부설연구소로 설치됐다.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천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 역사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규명하려는 것이 설립배경이었다. 설립목적은 첫째, 서울에 관한 기초연구를 수행한다. 둘째, 관련연구를 지원해 서울학을 육성한다. 셋째, 연구성과를 시민에게 교육하고 전파해 시민의 공동체 의식함양에 이바지한다는 것이었다.

1994년이 ‘한양정도 6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미를 시민들에게 부각시켜야 했던 서울시 행정당국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서울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밑거름이 됐다.

설립 초기, 1993년부터 이찬 교수의 ‘서울 고지도 집성을 위한 기초연구’ 등 17개의 연구과제가 지원됐다. 이듬해 23과제 등 서울시의 연구지원 속에 지난해까지 18년간 총 226과제를 완수했다. 그 결과 국내외의 저명한 석학들의 수준 높은 서울학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연구지원이 없었던들 서울학 논문이 이처럼 많이 창출되지 못했을 것이므로 이는 연구소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베이징대 북경학연구소에서도 ‘벤치마킹’

서울학연구소는 인적 구성이나 경영뿐만 아니라, 연구실적면에서도 국내 여타의 연구소와 비교해 선두에 있다. 인천학·제주학·강원학·부산학·대전학·울산학·충북학·충청학·대구경북학·영남학 등이 대학부설 연구소 또는 지역 자치단체의 산하기관 연구소로 활동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에도학(江戶學), 프랑스의 파리학 등의 연구소는 비교적 오랜 전통을 자랑하면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울학연구소는 지역학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외 대학에서 ‘모델’로 자리 잡았다. 예컨대 지난 1995년 중국 북경대 관계자들은 필자를 비롯, 서울학연구소 관계자들을 초청해 경영상황을 소개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북경학연구소를 발족시켰고 두 연구소는 현재까지도 유기적인 학술교류를 행하고 있다. 2005년에는 인천대 인천학연구원에서 서울학연구소를 ‘벤치마킹’했다. 

학계에서 학제 간 연구의 필요성은 일찍이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제기돼 왔으나 아직까지 잘 실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물의 실체를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과적, 개별적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융합·통섭·통합의 방향으로 학제 간 연구가 수행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 간의 벽은 여전히 높은 것이 오늘날 학계의 현실이다.

서울학연구소는 그러나 설립 이래 연구소의 중요한 목표와 연구방법으로 학제 간 연구를 시도해왔다. 개별 분과학문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서울의 여러 모습과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다. 서울의 역사, 서울 고고학, 서울의 도시계획, 건축학, 건축공학, 조경학, 국문학, 국어학, 사회학, 예술, 민속학, 지리학, 도시행정, 경제학, 지도학, 인류학 등 다방면의 학문연구를 통해서 실제로 서울의 정체성과 내면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날 구미 선진국에서도 분과 학문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학문의 융합과 통섭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울학연구소가 시도한 학제 간 연구업적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최근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육프로그램에서도 학문의 벽을 허물고 하나의 실체를 여러 측면에서 보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학문연구의 효율성과 세계적 연구동향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제 간 연구는 앞으로도 전학문에 걸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될 것으로 믿는다.           

서울학 사료탐사는 큰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서울학 자료들이 국내외, 특히 해외에도 널리 산재돼 있기 때문에 이를 탐사하는 일이 중요하다. 서울학연구소는 저명한 석학을 책임자로 삼아 국내는 물론, 멀리 유럽, 미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국과 관련 깊었던 지역에 들어가 서울학 관련 사료탐사에 열성을 보였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문헌 사료뿐만 아니라 저명인사의 녹취, 사진, 마이크로필름 등 귀한 역사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02년 주한 이탈리아 총영사 까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의 저서 『꼬레아 꼬레아니(Corea e Coreani)』는 이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이다. 사진자료가 유난히 많아 국내에서 번역·출판하려면 원본이 필요했다. 당시 원본의 외국반출이 허가되지 않아 여러 외교 통로를 거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서울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사실묘사를 하고 있어 서울의 역사성과 정체성 이해에 큰 도움을 줬다. 당시 서양사람들이 쓴 한국 견문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특히 서울 사람들의 풍속, 생활상, 민도, 반상 간 계층의식 등을 사진과 함께 수록하고 있어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사료탐사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부분이다.

서울학 관련 총서 83권 쏟아내

서울학연구의 학문적 성과를 공인받기 위해서 전문 학자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장소에서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그 연구 성과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시민문화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아 수강인원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니 반가운 일이다. 

서울학 총서는 지금까지 총 83권의 저서가 출간됐는데 연구저널 32책, 연구총서 15책, 교양총서 7책, 사료총서 10책, 번역총서 3책, 미디어총서 3책, 목록집 2책, 색인집 8책, 기타 6책 등이다. 연구소의 설립 연륜으로 볼 때, 비교적 많은 분량의 저술서가 간행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서울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연구를 극대화하기 위해 서울학연구소에서는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아 최대의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결과 국내외 학계나 자치단체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연구소를 벤치마킹하고 있으니, 다행스러우면서도 더 많은 분발을 촉구한다. 학문연구란 끝이 없고 땀 흘려 열심히 노력하는 길만이 학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서울학연구소는 크게 발전할 것으로 확신한다.

이존희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단국대에서 박사를 했다.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로, 2대 서울학연구소장(1995년)을 역임했다. 서울역사박물관장(2001년), 서울시 시사편찬위원장(2005년)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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