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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2천년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욕망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2천년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1.12.12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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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 ④]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18년의 발자취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끌 저력을 조명하기 위해 <교수신문>이 기획한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14편)시리즈 네 번째로 초대한 유산은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다. 서울학연구소는 ‘한양 정도 600년’을 한해 앞둔 1993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요청해 태어났다. 그야말로 서울의 ‘모든 것’을 다루는 연구소다. 지난 18년 동안 학제간 연구로 ‘서울학’이라는 새학문을 다져온 연구소는 이제 동아시아로 지평을 넓히려고 한다.

‘서울은 서울이다.’

서울은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땅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과 배제의 도시다. 한강의 기적과 그것이 빚어낸 명암, 꿈을 갈망하고 욕망을 소비하는 메트로 폴리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소장 송인호·건축학부)는 시대의 명암을 조용히 주워 담아왔다. 그 세월이 벌써 20년을 내다보고 있다.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에서 10억원을 출자했던 게 1993년의 일이다. 기념사업이 끝나자 서울시 지원도 끊겼다. 일명 ‘프로젝트 연구소’라는 초기 정체성은 서울학연구소를 거쳐간 역대 소장들에게 연구비 ‘제로 베이스’를 안겨주기도 했다.

성곽, 한강… 서울의 ‘모든 것’ 차곡차곡

학제간 연구를 바탕으로 서울 곳곳에 깃든 역사와 문화, 일상을 규명하는 작업은 참신함과 끈기를 요구했다. 송인호 서울학연구소 소장은 “2000년 역사의 서울은 오래된 도시 하나를 공부하는 것과 뉴욕과 같은 대도시를 공부하는 것, 두 가지가 겹쳐 있어서 어렵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일까. 서울을 탐구하는 방식도 학제간 연구가 주를 이룬다.

5년째 수장을 맡아온 송 소장은 서울학이 지역학 분야에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기록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프랑스 파리극동연구소의 ‘인도차이나학’ 등 서구의 전통 지역학이 타자의 시선으로 자연과 인문적 환경을 연구했다면, 서울학연구소는 원주민의 시선으로 시공간·사람을 연구한다는 차이가 있다.

서울학연구소의 괄목할 성과는 서울이 아닌 해외에서 수행됐다.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 안두순 초대 연구소장, 이존희 2대 연구소장,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최종현 전 한양대 교수 등은 해외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서울 관련 사료탐사에 돌입했다. 해외 유수의 연구소와 박물관을 샅샅이 훑었다. 이 과정에서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 소장돼 있던 ‘숙천제아도’ 등 각종 회화자료를 찾아냈다. 해외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소는 『서울의 옛지도』(1995년)를 완성했다.

연이어 1901년 한국에 체류했던 카를로 로제티 이탈리아 공사가 서울의 풍경을 사진과 글로 남긴 기록을 영국 브리티시뮤지엄과 프랑스 등지에서 확보했다. 이 기록물은 『꼬레아 꼬레아니』(1996년)라는 책으로 간행됐다. 올해에도 독일 함부르크 민속박물관을 통해 ‘오페르트 재판기록문서’를 입수하기도 했다.

초창기 해외 사료 발굴에 성과를 올린 서울학연구소는 서울 곳곳의 ‘장소’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데 집중해왔다. 지난 2006년 연구팀은 한강을 해부했다. 주로 뭍(강변)에 집중된 시선을 섬으로 돌렸다. 예컨대 밤섬을 통해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상기시켰고, 선유도는 문화를 생산하는 공원이자 아름다운 건축도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2009년 발간한 『한강의 섬』(2009년)이 한강이 단순히 생태·하천에서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재조명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연구소는 평가했다.

서울의 ‘성곽’을 하나씩 규명해가는 작업은 연례 학술심포지엄으로 소화하고 있다. 2006년 경복궁을 시작으로 창덕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종묘와 사직을 차례로 연구했다. 올해는 ‘서울 한양도성’(성곽)을 발표했다. 특히 도성연구는 서울시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어 서울시와 손발을 맞추게 됐다. 

‘중점연구소’ 선정, 앞으로 9년간 학제간 연구 물꼬

서울학연구소는 건축학, 국사학, 조경학, 미술사, 인류학, 국문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연구진으로 포진해 있다. 지난 18년 동안 서울학의 기틀을 다져온 서울학연구소는 학제간 연구의 전통이 있다. 우선 주제를 정하고 유관분야 연구자들의 성과들을 수집해 검토한다. 후보 학자군이 가려지면 이들을 초대해서 설명회를 연다.

대한제국기 경운궁을 연구 주제로 잡으면, 1897년 고종이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해 1907년 퇴위하기까지 10년의 한성(서울)을 둘러싼 모든 분야를 포괄한 연구가 시작된다. 정치, 선교, 교육, 정치, 생활 전 분야다. 문헌중심으로 시대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공간과 구조물을 통해 발자취를 더듬어온 건축학자, 당대의 선교활동에 천착해 온 종교학자들은 각기 자기 연구성과를 꺼내놓고 경운궁이 가진 ‘특별함’을 찾아들어 간다.

송 소장은 한정된 예산과 기간 안에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는 게 얼마나 ‘특별한 힘’을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다. “시각의 차이는 물론이고 사용하는 용어부터 차이나는 경우가 많다. 자칫 각자 연구성과를 꺼내놓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다년간 과제가 적합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중점연구소로 선정된 게 반갑다. 앞으로 9년간 연구할 수 있게 됐다. 지역학, 장소학이라는 서울학의 학문적 성과와 인적 네트워크가 융합학문을 소화할 수 있을만큼 탄탄해져 있다. 이를 발판으로 서울학연구소는 내년부터는 해외로 눈을 돌려볼 참이다. 중국, 일본, 베트남의 수도가 근대를 전후로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동아시아 각국 수도의 근대적 변이’는 내년 6월 서울시립대에서 국제심포지엄이 예정돼 있다. 개성, 교토, 남경, 심양 등 현 수도 이전의 수도까지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평양도 고려 중이다. ‘서울, 새로운 탄생’을 기치로 내건 ‘뿌리 찾기’는 서울학연구소의 정신이었다. 지역학이라는 뿌리를 튼튼히 다져오던 서울학연구소가 이제는 씨앗을 뿌리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죽은 지식’을 되살려내는 것이 학문의 본령인지라, 서울학도 복원에 중점을 둔다. 연구원들에게 논문 한편 한편이, 세월에 쓸려나간 성곽을 복원하고 한강을 되살리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거창하게 알아주지 않아도 이들의 손에서 서울의 역사는 오늘도 복원되고 있다.

동전 던지기(擲錢)로 한양 천도를 결정했던 조선 태종이 서울학 연구자들을 만나면 어떤 말을 건넬까. 600년이 흐른 지금, 동전은 ‘서울학자’들의 손에 쥐어졌다. 동전의 앞면엔 ‘장소학’ 뒷면엔 ‘인문학’이 아로새겨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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