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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과 교수사회
반값 등록금과 교수사회
  • 이영석 광주대
  • 승인 2011.06.13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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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이영석 광주대 서양사

“오늘날 교수사회의 풍경을 바라보면 씁쓸한 느낌이 든다. '폴리페서', '머니페서', '텔레페서' 이들 세 부류가 어느덧 교수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1990년대 중엽 서울의 한 시내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버스에 올랐을 때 마침 승객 한 사람이 운전기사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승객이 토큰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등산복 차림의 승객은 운전기사가 잘못 봤다고 언성을 높였다. 사소한 말다툼이 시비로 번졌다.

급기야 승객은 자신이 모 대학 교수임을 밝히면서 그런 신분에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따졌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에 발생했다. 마침 몇몇 대학 예능계 학과의 부정입학 기사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때였다.

운전기사는 그 승객뿐만 아니라 승객이 밝힌 바로 그 직종, 교수집단 전체를 꾸짖기 시작했다. 남들이 다 일하는 평일에 공부는 하지 않고 등산 다니지 않나, 빈둥거리며 월급 받는 것도 모자라 입학 부정까지 저지르는 집단이니 차라리 비판받을 자격조차 없다는 말이었다.

운전기사의 질책을 들으면서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음이 무겁다기보다 오히려 비참한 심정이었다. 등산복 차림의 승객은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다음 정거장에서 황급히 내렸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사건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 때 나는 교수들이 누리는 삶의 자유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교수가 자신의 자유를 드러내고 과시할수록 분노가 증폭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는 고달프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근래에는 양극화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나는 실정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에는 삶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나는 교수사회에서 강조해야 할 첫 번째 덕목이 바로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교수의 자유는 어디서 온 것인가. 교수는 사회로부터 교육과 연구를 동시에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은 집단이다. 한 가지도 어려운데, 두 가지 종류의 일을 요구한다. 그만큼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는 교수 스스로 이 창조적인 일들을 잘 준비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한 것이다.

어떤 이는 그 자유가 교수 고유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일종의 배려다. 그 자유를 기반으로 교수들이 새로운 지식의 창조와 전수 그리고 축적에 매진하라는 요구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문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인문진화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시내버스 사건을 목격한 지 십수 년이 흘렀다. 그 동안 교수사회도 크게 변했다. 청년실업이 높다보니 대학마다 취업률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산학협력을 강조하는 분위기 탓에 나처럼 순수 인문학 전공자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학내 발언권마저 압류당한 상태다. 교수들의 잡무도 많아지고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떠맡아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렇더라도 교육과 연구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다고 본다.

자유가 소중한 만큼 교수집단은 그에 뒤따르는 책임을 지킬 의무가 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더라도 교육과 연구가 교수사회의 지배적인 풍토가 돼야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을 포함해서 오늘날 교수사회의 풍경을 바라보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겸손한 분위기는 사라졌고 부와 권력과 명성을 좇는 일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언젠가 일본 인류학자와 한담을 나누면서, 한국 대학에는 세 가지 저명한 교수집단이 있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폴리페서’, ‘머니페서’, ‘텔레페서’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 그 일본 학자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날에는 이 세 부류의 집단이 어느덧 교수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 않나 싶다. 

여당 정치인의 반값 등록금 발언 이후 대학을 향한 시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대학당국과 교수사회는 침묵을 지키거나 애써 외면한다. 등록금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후, 나는 자정능력이 없는 교수사회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학적립금 기사가 실리더니 그 다음에 대학의 구조 조정과 자구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이제 교수사회의 그릇된 관행과 행태에 대한 비판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를 포함해 이제는 교수사회가 사회 저변의 목소리에 대답을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뭐라고 말할 것인가. 일방적인 마녀사냥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영석 광주대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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