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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콤플렉스’로 시작한 역사공부...서구의 실체를 깨닫다
‘근대화 콤플렉스’로 시작한 역사공부...서구의 실체를 깨닫다
  • 김재호
  • 승인 2023.03.24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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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 역사가 이영석의 코로나 시대 성찰 일기』 이영석 지음 | 푸른역사 | 208쪽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난 이영석 전 광주대 명예교수(영국사회사). 그를 종종 페이스북에서 글로 만난 적이 있다. 사회 이슈를 역사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글들을 보며, 정말 성실한 학자라는 걸 느꼈다. 이 교수가 페이스북의 글들을 모아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로 펴냈다. 2020년 8월에 나온 이 책은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즈음의 우리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또한 한 역사가가 지나온 흔적을 고스란히 접하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교수가 서양사, 특히 영국사회사를 공부한 건 근대화 콤플렉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산업사회를 만든 서구의 근대화의 실체는 팬데믹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연파괴와 인간소외 그리고 공동체파괴는 그 결과다. 책에서 그는 “서양사를 공부한 것은 분명 근대화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어느 시기부턴가 나는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서구는 왜 실패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영국사를 근대화론의 시각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절충론적 시각에서 그들의 좌절과 모호함과 그리고 전통과 혁신의 혼재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한국의 근대화·민주화운동을 이끈 이들의 헌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혁명가이자 농촌 대안교육 운동가친 친구는 9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을 극복하고자 역사공부에 매달린 것이다.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는 팬데믹에 초점을 맞췄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세계화를 멈추게 한 것은 바로 코로나19이다. 어쩔 수 없이 자가격리에 들어간 이 교수는 ‘나의 통찰·사색’을 통해 대안의 세계를 꿈꿨다. 그 방법은 기본소득, 대안에너지·농업, 저에너지 활동, 적정생산·소비, 상호부조다. 경제성장에만 집착하는 현대문명의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우려다. 역사를 연구한 한 노학자의 세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에 대한 비판은 뼈아프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기독교인들이 보였던 행태는 계속 곱씹을 일이다. 이 교수는 전광훈 목사와 이만희 신천지 교주를 지적했다. “한국 근대화를 선도했던 개신교 세력과 문화가 언제부터인가 사회변화에서 낙오되고 탈근대의 사회변동과 문화적 변화에 무지하며 반동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는 두고두고 성찰할 주제다.”

 

 고 이영석 전 광주대 명예교수(영국사회사)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세계에 대해 성찰했다. 그는 대안세계를 꿈꿨다.

 

‘문치교화’의 문화 그리고 ‘신의 이름에 몸을 떨다’ 퀘이커

이 책에서 배운 두 가지 언어가 있다. 바로 ‘문화’와 ‘퀘이커(Quakers)’이다. 문화는 ‘경작하다’는 의미의 ‘쿨투어(Kultur)’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번역어인 ‘문화’는 원래 일본에서 ‘문치교화(文治敎化)’라고 한다. 이 교수는 다른 책을 읽다가 알게 됐다고 한다. 이 교수는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문화는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나는 그저 클리퍼드 기어츠의 언명으로 정의를 대신하려고 한다. ‘인간은 항상 의미를 만드는 존재다. 그는 죄수처럼 그 의미들의 망(network)에 걸려 규제받는 존재다.’ 한마디로 문화는 인간(집단)의 삶에서 형성된,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모든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는 상징이다.”

퀘이커는 ‘몸을 떠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종교적으로 천년왕국의 즉각적인 도래를 믿었던 영국 의회군 병사였던 조지 폭스(1624∼1691). 폭스는 자신의 믿음이 깨지자 제3의 종교문화를 설파했고, 그게 급진적 청교도인 퀘이커교가 됐다. 폭스는 추종자들에게 “신의 이름을 들으면 몸을 떨어라”라고 가르쳤다. 불교와 비슷하게 모든 개인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이다.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를 통해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에 따르면, 작가 새뮤얼 스마일스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최고의 수양은 학교 다닐 때에 선생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성장한 후 자신의 부지런한 독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기자는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꿈을 접었지만, 학문에 대한 열망은 아직 포기할 수 없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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