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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인식 개선도 좋지만 열쇠는 교수가 쥐고 있어”
“사회적 인식 개선도 좋지만 열쇠는 교수가 쥐고 있어”
  • 최성만 이화여대·독어독문학
  • 승인 2010.06.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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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학원 중심 말하면서 국내박사 불신한다면

우리나라에 국내 박사의 훈련 과정에 대한 불신이 고착하게 된 것은 연구자의 윤리와 자질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 즉 공리주의적 사회 분위기, 대학의 제도, 교수들의 자질과 태도, 박사과정생의 자질과 태도 및 연구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체제의 문제로서 한국의 학문 수준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먼저 교수들의 연구와 교육환경의 문제가 있다. 교수들은 개인에 따라 자질도 뛰어나고 성실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지식과 연구태도가 자연스럽게 박사과정생들에게 전수된다. 그런데 이러한 전수의 흐름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있다. 우선 전국의 대학들이 소규모의 학과들인데다 대학들마다, 심지어 한 학과 내에서, 지역주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환경을 들 수 있다.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이수학점 수를 대폭 줄이면서 개별 수업의 질을 제고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박사과정생들의 자질과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석사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내가 근무하는 대학의 경우 이수학점의 절반까지 타 전공을 이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석사든 박사든 이수학점의 절반 내지 적어도 3분의 1을 타 전공으로 이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싶을 정도로 한국의 대학들은 자과주의에 묶여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박사라면 넓을 박(博)자에 걸맞게 두루 공부해야 할 텐데도 협사(峽士)로 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과도 소규모인데다 똑같은 교수에게서 거의 엇비슷한 과목들로 이수학점을 채우며 훈련과정을 마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학생 스스로 다양한 학문을 탐구하지 않는 한 양질의 논문이 나올 수 없다. 이것은 자폐적 구조인데다 줄서기 문화를 혁파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다시 말해 학문후속세대 양성이 아니라 ‘그 교수에 그 제자’를 심는 제도로 타락하게 만든다. 심사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교수들은 서로 자신의 영역 밖을 잘 모르거니와 또 타 영역을 간섭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에 따라 영역을 지키면서 형식적으로 심사가 이루어진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박사과정생들에게 다양한 학문을 접하게 하고, 논문 주제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면서, 아울러 학위 취득 후 취업 전망을 함께 모색하는 다각도의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회의 부실이 대학의 부실과 맞물리는 현실이 있다. 학위논문을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 학위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체제에서만 가능하고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다소 학문외적 요소, 즉 개인적 정의(情誼)나 기타 요인으로 겉치레의 심사가 이루어질 소지가 많다. 그에 따라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그만큼 공적으로 전문가로 양성되었음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인데도 그 취지가 퇴색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학위 취득자는 기껏해야 대학에서 강의를 한두 개 맡고 임용을 바라보는 정도이고, 그밖에 사회에서는 전문가로 채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한국의 대학들을 대학원 중심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와 대학당국의 취지와 정 반대되는 현상이다. 그 결과 학위를 취득해도 사회에서 취업 전망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박사과정이 기피되거나, 박사과정 중에도 연구에 몰두하고 싶은 의욕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전공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이것은 사회에서 국내 박사를 불신하는 세태로 연결된다. 훈련 과정이 견실해봤자 사회에서 인정해주지 않으니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훈련과정이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부의 고등교육정책과 사회분위기가 전문가를 우대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 열쇠는 교수들이 쥐고 있다. 후학을 열정적으로 키우려는 노력, 전문가의 수월성을 사회에 활용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연구와 교육의 아젠다와 커리큘럼을 업데이트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교수 개개인에 의해 펼쳐지지 않는 한 외적인 제도 개혁만으로 상황이 결코 바뀔 수 없다.

최성만 이화여대·독어독문학

필자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발터 벤야민의 미메시스론으로 박사를 했다. 벤야민, 아도르노, 미메시스, 해체론 관련 논문을 다수 썼다. 벤야민 선집 번역을 기획,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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