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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학생 눈치보는 지경됐을까...파트타임 느니 수업·논문 질 떨어져
어쩌다 학생 눈치보는 지경됐을까...파트타임 느니 수업·논문 질 떨어져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06.28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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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학원이다 ]③_ 부실한 논문심사, 언제까지

사회과학을 전공한 지역 사립대 ㄱ교수. 지난해 다른 대학에 논문 심사위원장으로 갔다가 조금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박사학위 논문인데 ‘논문 같지 않는 논문’이었다. 논점도 새로운 아이디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학생은 취업이 확정된 상태였고 이를 위해서는 ‘학위’가 필요했다. 그나마 데이터 분석은 괜찮은 편이어서 6개월 동안의 수정 과정을 거쳐 논문을 통과시켰다.

그래도 논문은 보고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ㄱ교수는 “논문 심사하러 가면 박사학위인데도 보고서 수준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외부 심사위원은 학과 사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교수가 ‘이 정도로 정리했으면 됐다고 본다’라고 말하면 외부 심사위원은 그냥 통과시켜 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국내 대학원 교육이 부실 의혹에 시달리는 데는 부실한 학위논문이 큰 역할을 한다. 학위를 쉽게 따니 그 과정까지 의심받는 것이다. 학회 간사 일을 맡고 있는 ㄴ박사는 “박사 논문 100편 가운데 이른바 쓸 만한 논문은 10편 정도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박사가 너무 배출된다는 게 문제다. 영어나 전공시험을 보지 않고 대부분 면접으로 뽑으니까 수학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들어온다. 자연히 논문의 질이 문제가 된다”라고 말한다. 

파트타임 학생 증가, 질 저하로 이어져

‘부실 논문’ 양산은 ‘파트타임’ 학생의 증가와 동전의 양면 현상을 이룬다. 대학원이 너무 많다. 177개 일반대학 가운데 163개 대학이 대학원을 운영한다. 박사과정도 146개 대학에 개설돼 있다. 그런데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우수한 학생은 국내 박사과정에 잘 진학하지 않는다. 이들은 석사를 거쳐 해외 대학원으로 빠져나가거나 취직하는 길을 택한다. 그러니 대학이나 교수 입장에서는 파트타임 학생이라도 받지 않을 수 없다.

ㄴ박사의 지적처럼 대부분 면접만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대학원에 들어가기도 이번보다 훨씬 쉬워졌다. 다른 지역 사립대 ㄷ교수는 “부실 논문의 대부분은 파트타임 학생이나 나이가 좀 있는 분이 ‘비석용’으로 따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한다. ㄷ교수는 “관에서 자꾸 학위를 요구하니 지역 사립대 박사과정에 다니는 파트타임 중에는 특히 공무원 비중이 크다. 서울 사는 공무원이 지역 대학원에 다니기도 한다. 수업 들어올 시간이 있겠느냐. 졸업할 때 보면 ‘우리 과에 저런 학생도 있어구나’ 할 때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학위’를 목적으로 들어온 파트타임 학생이 많으면 학사 관리를 엄격하게 하기도 어렵다. ㄷ교수는 자기 수업을 듣는 한 공무원이 수업에 안 들어와 F학점을 줬다가 엄청 고초를 당했다. ㄷ교수는 “지도교수와 그 공무원이 엄청 분노하더라. ‘세상 물정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내 수업을 듣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ㄱ교수는 “일부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고는 서울 소재 대학 박사과정에도 직장인이 섞여 있다. 직장인이 더 많은 대학도 있다. 일부러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을 대학원에 유치하기도 한다. 이런 파트타임이 많아지면 진짜 공부하려는 학생은 그 대학원에 안 가려 한다”고 전했다.

대학이 앞서 공무원 유치 조장하기도

대학에서 공무원 등을 파트타임 학생으로 ‘유치’하는 게 단순히 충원율을 올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ㄱ교수는 “학과 차원에서 적어도 일반대학원에는 직장 있는 파트타임 학생을 안 받겠다고 결의하면 대학원장도 어쩌지 못 한다. 그런데 대학원생이 와야 학과가 유지된다. 대학원 과목을 맡지 않으면 학부 수업을 더 해야 한다. ‘소심’한 이유도 많다. 대학 입장에서는 재정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학 차원에서 조장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ㄷ교수는 “지방자치단체 정책용역을 보면 거의 한 사람이 계속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용역 프로젝트 많이 따내면 능력 있는 교수로 대우 받으니 빨리 학위 줘서 내보내려 한다. 취업률 때문에 요즘은 대기업 직원도 직급이 올라가면 서로 데려오려고 한다.”
ㄷ교수는 심지어 “공무원이 수업에 참여한 것처럼 하기 위해 ‘행정적으로’ 토요일, 야간 수업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라며 “논문의 수준에 앞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다른 목적으로 학위가 필요한 파트타임 학생이 느니 논문 심사도 느슨해 질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ㄷ교수의 지적이다. “졸업 안 시키면 학교에서 티오 잡아먹는다고 독촉하고, 엄격하게 하면 또 학생이 안 온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해도 지도교수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외부 심사위원제를 강화한다고 해도 지도교수와 친분이 있거나 지도교수가 ‘컨트롤’할 수 있는 교수를 위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독창성 없어도 체계만 맞으면 통과시켜

ㄱ교수는 “학생이 안 오니까 (박사학위를) 주고, 불쌍해서 (박사학위를) 준다”라는 말로 지금 대학원의 현실을 요약했다. “뽑아놓고 학위를 안 준다는 것도 그렇다. 특히 직장이 있는 학생이거나 취업과 관련될 경우 학생이 학위가 필요하다고 하면 거기에 맞설 수 있는 교수는 거의 없다. 독창적인 논점이나 이론이 없어도 체계만 맞으면 통과시켜 주는 경우가 많다. 외부에 망신 안 당하려고 학생이 써 온 논문을 거의 교수가 다시 써주다시피 할 때도 있다. 아니면 우수한 다른 학생에게 봐주라고 하거나… .”

부실한 논문 심사는 교수 책임도 크다. 서울 소재 사립대 ㄹ교수는 다른 대학의 논문 심사에 참여했다가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지도 교수가 논문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서문 2~3장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교수는 심사 논문을 안 읽기로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내가 석사학위 받을 때도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심사한 교수가 있었는데, 2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게 우리 대학원의 현실이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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