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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齋는 과연 국민국가수립에 전력한 근대주의자였나
丹齋는 과연 국민국가수립에 전력한 근대주의자였나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5.10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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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백년 논쟁의 사람들, 그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하다

신채호는 과연 ‘국민국가 만들기’에 전력한 근대주의자였을까. 윤해동 성균관대 연구교수(역사학)는 “단재가 근대 이전, 근대 이후를 살았지만, 일방적 근대주의자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진단은 <교수신문>이 마련한 학술기획 ‘근대 백년 논쟁의 사람들’ 연재 첫호에서 내려졌다.

올해 일제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교수신문>은 1910년 이후 백년의 역사 속에서 ‘근대국민국가’ 만들기에 나섰던 역사 속 논쟁적 인물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창간18주년 기념호에서 다룬 것처럼 총 57명의 학자가 참여해 18명의 역사 속 인물을 선정했다(제553호, 4월 12일). <교수신문> 557호부터 이 논쟁적 인물들에 대한 지상 탐색이 격주로 진행된다.

그 첫 번째 인물은 단재 신채호. 신채호는 역사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10표를 얻었다. 이런 결과는 전체 분야에서도 함석헌 다음으로 많은 득표였다. 신채호는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이며 문인으로 한국의 근대를 선도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민족주의 역사관은 근대 사학의 기초가 됐다는 평이다. 도면회 대전대 교수(역사학)는 “신채호는 대한제국 당시 국가 중심의 역사학을 민족 중심의 역사학으로 전환시켰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 이후 아나키스트 운동으로 전신해 혁명의 주체를 민족에서 민중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윤해동 교수는 신채호의 근대성 양상을 네 가지로 제시하면서, 역사학자로서의 면모만을 부각시켜 근대주의자로 보는 시각에 이의를 제기했다. 신채호의 역사학과 문학이 언론활동을 매개로 수행된다는 점을 포착해 근대에서 탈근대까지 나아가는 사상적 궤적의 깊이를 읽어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채호 사상의 현대적 의의를 짚은 김영범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단재 사상을 ‘영원한 사고의 보습’으로 규정하면서, 사회진화론이나 아나키즘을 차용했던 신채호의 당대 현실인식의 현재적 의미를 읽어냈다. 김 교수는 신채호의 유토피아가 다시 살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시했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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