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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이 안 되려면
포스트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이 안 되려면
  • 이관후
  • 승인 2024.01.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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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비평_『거대한 반격: 포퓰리즘과 팬데믹 이후의 정치』 파올로 제르바우도 지음 | 남상백 옮김 | 다른백년 | 495쪽

주권·보호·통제를 파괴한 신자유주의 체제
민족적 애국주의는 인민의 권리 회복할까

‘뉴노멀’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가 그 이전과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경고는 이제 현실이 됐다. 

이 책이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세계는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국면이 아니다. 새것은 이미 왔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세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에는 경제학이나 사회학·정치학 같은 분과학문보다 더 넒은 지평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메타 이론의 수준에서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다. 

여러 영역에서 학문적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시대의 흐름에 대한 민감성과 통찰력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파올로 제르바우도는 적절한 조건을 갖추었다. 영국 킹스 칼리지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정당과 포퓰리즘, 문화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뉴 스테이츠맨>·<가디언> 등에도 활발하게 칼럼을 싣고 있다. 

저자는 먼저 신자유주의 시대에 종말을 고한다. 이것은 분명히 한 세대 넘도록 세계를 뒤덮었던 이데올로기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지난 한 세대 동안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그리고 자연은 없었다. 마침내 단일 시장 아래 통합된 세계가 완성되는 순간 팬데믹이 지구와 인류를 덮쳤다. 기후와 이주·전염병이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완성한 경제시스템의 근본적 결함을 비집고 들어왔다. 지구의 파괴와 전 세계적 수준의 불평등이 초래한 인구의 이동 그리고 지구 끝까지 더 싼 임금과 자원을 찾아서 만들어낸 지구적 유통망은 스스로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전 세계적 역풍에서 드러난 신자유주의 체제의 취약점은 주권·보호·통제라는 영역에서 확인됐다. 신자유주의는 그것들을 파괴하거나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세계는 공포를 벗어날 수 있는 ‘안전’을 그 세 영역에서 찾기 시작했다. 기존의 주류적 이데올로기는 좌우 모두에서 신국가주의를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포퓰리즘이 이 흐름을 이끌었다. 민족주의 우파, 국가의 영역을 확대하는 사회주의 좌파 모두 포퓰리즘 전략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법안으로 대표되듯이, 바이든과 같은 자유주의 세력이 반포퓰리즘적 신자유주의를 지속하려는 ‘차별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들을 이 책은 ‘거대한 반격’이라고 개념화한다. 여기서 ‘반격(recoil)'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괄한다. 하나는 앞으로 무엇인가 발사될 때 뒤로 움츠려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안으로 움츠림으로써 바깥쪽으로 다시 튕기려는 에너지를 응축하는 것이다. 저자가 설명하듯 이 개념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작용 다음의 ‘반작용’에 해당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말한 ‘두 번째 운동’에 상응한다. 자본주의의 팽창 국면이 퇴조하고 사회의 대응에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이다. ‘반작용’이 아니라 ‘반격’이라는 번역어는 아마도 폴라니의 맥락을 따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파올로 제르바우도는 영국 킹스 칼리지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사진=https://www.youtube.com/watch?v=XxTXdGwkbT0

저자는 민족주의 우파, 사회주의 좌파, 신자유주의 중도파, 보호적 신국가주의 등이 어떻게 이 반작용의 시대에서 대립하고 있는지를 계급 블록을 중심으로 찬찬히 설명한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의 관심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이 무엇인가에 집중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흥미로운 개념은 ‘민주적 애국주의’다. 

물론 이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적 애국주의가 이주의 시대에 배타성을 어떻게 통제·관리할 수 있을지, 블루칼라와 핑크칼라, 중간계급이 포함된 계급블록이 우파 포퓰리즘의 정치적 공격에 어떻게 연대를 유지할 수 있을지, 전쟁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시대에 민족주의가 어떻게 국제적으로 건강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의 고민을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은 그 고민에 도달하는 여정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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