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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지금을 알았더라면, 세상이 달라졌을까
그때 지금을 알았더라면, 세상이 달라졌을까
  • 이관후
  • 승인 2023.11.0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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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비평_『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윤여일 지음 | 돌베개 | 340쪽

잡지로 읽어내는 회고·기억의 재구성과 재평가
민주주주의 제도적 정착·최초의 문민정부 출현

이 책은 1990년대라는 ‘시기’를 주제로 한다. 이례적이라기보다는 당황스럽다. 인문사회과학의 연구는 많은 경우 ‘개념’에 대한 연구다. 그 밖의 연구들은 그 개념과 연관된 인물·사건·제도·역사·이론·지역 등에 대한 것들이다.

시대가 다루어지는 경우는 그런 주제들이 특정한 시대에 가졌던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서유럽의 지방 민주주의 제도 연구: 역국과 프랑스의 사례」, 「1960년대 한국 자유주의 연구: 사상계를 중심으로」 같은 제목의 논문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1990년대 연구’라면 어떨까?

어째서 ‘시대’가 하나의 물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제목대로라면 이 시대가 ‘모든 현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의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1990년대를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하나의 명제다. 다만 이 책은  ‘왜 모든 현재의 시작이 1990년대인가’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 그 답을 1990년대에 대한 설명으로 대신한다. 

“1990년대는 무엇이었나.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최초의 문민정부가 출현하고,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경제적으로는 국가발전주의에 기반한 자본축적이 본격적인 소비사회를 열어가다가 IMF사태가 터지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문화적으로는 10∼20대가 소비 주체로 부상하고 PC통신·인터넷·이동통신의 보급으로 대중문화가 확장하고 하위문화가 변모했다.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하고 그 공백 속으로 각종 포스트 담론이 등장했다가 경제위기 이후로는 한국식 근대화에 대한 자성의 논의가 확산되었다.” 

물론 이런 설명과 별개로 한명의 독자로서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에 대한 답은 이 책을 읽기로 한 개별 독자들이 이미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에 20∼30대를 보낸 이들이 직관적으로 그 명제를 수용한 상태에서, 이를 정당화하고 싶은 이유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잡지를 통해서 1990년대를 읽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그 잡지들을 구하기 위해 서점을 들락거리고, 냉소적인 자만심으로 여백에 빼곡히 같잖은 반론들을 적어 내리고, 손에 들고 다니다가는 기어이 어느 호프집에서 잃어버리고 읽지 않은 글의 뒷부분을 제멋대로 추측하고 비판까지 해댔던 유치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1990년대 지성사·사회사에 대한 저작이지만, 독자의 차원에서는 90년대에 대한 회고적 반추를 통한 기억의 재구성과 재평가의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1990년대 최초의 문민정부가 출현했다. 사진 속 모습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사진=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 책은 ‘문학’에서 ‘대중’까지 13가지 항목을 통해서 90년대가 지금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때로 직접적으로 때로는 암시적으로 제시한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이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사상, 지식인, 진보, 국가, 통제 같은 항목에 대해 겨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항목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옛 것은 가고 새 것은 오지 않은 그라운드 제로, 인터레그넘의 흔적이다. 시공간에서 모두 그 흔적이 남았다.

시간적으로는 1980년대가 ‘역사의 종언’이라는 하나의 단절적 계기를 만들어 낸 가운데, 역서 너머의 시대에 대한 미지의 불안감이 지배적이었다. 공간적으로는 극동의 나라에서 세계사적 흐름을 추격하고, 수용하고, 적용함으로써 비로소 세계를 이해했다고 안도하던 바로 그 시점에 기존의 세계가 무너져버린 진공 상황을 마주했다. 동시에 우리는 시·공간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비판적 요구도 다행히 강요당했는데, 지금 보면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 사상의 주체성은 더욱 약화되었고, 지식인은 사라졌으며, 진보는 지리멸렬해졌고, 국가는 박정희 신드롬의 여러 버전으로 재탄생하고 있으며, 통제는 교묘해지기보다는 노골화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한 가지의 항목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이 논문과 칼럼으로 발언하더라도 방송에 출연하지 않으면 대중과 만날 수 없다’, ‘등재지로 옮겨갈 수 없었던 사회비평지는 사라졌다. 시의성이 있으면서도 만만치 않은 분량을 단기간에 구성해야 하는데, 등재지용 학술논문을 써야 하는 연구자는 그런 글을 써낼 여유도 의지도 없는 것이다’. 90년대의 혼란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학문의 영역에서 견고한 시장주의와 서구중심주의의 체계가 완성되었고, 한국의 대학은 재생산 능력을 잃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어떨까? 모든 것이 시작된 90년대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의 한국은 차분한 소멸을 선택했다. 그때 지금을 미리 알았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관후 
건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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