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8:15 (토)
금융자본주의로 ‘금융자본주의’에 맞서기
금융자본주의로 ‘금융자본주의’에 맞서기
  • 김주환
  • 승인 2023.11.23 0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유의 아고니즘_『피투자자의 시간: 금융 자본주의 시대 새로운 주체성과 대항 투기』 미셸 페어 지음 | 조민서 옮김 | 리시올 | 364쪽

개인은 금융투자 위해 스스로 가치를 증명
금융화 압박에 맞서는 새로운 저항적 주체

아마도 좀비라는 캐릭터는 오늘날의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탁월한 인격적 메타포일 것이다.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인간 사물이라고도 할 수 없는 좀비는 만족할 줄 모른다. 그렇기에 언제나 배고픈 좀비는 육체의 충동적 명령에 따라 끊임없이 인간을 물어뜯고 새로운 식량을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좀비로 뒤덮인 사회란 모든 인간들이 오로지 채워질 수 없는 이기적 욕구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도록 내몰리는 사회, 그럼으로써 끊임없는 자본의 자기 증식 운동이 이루어지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보통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해체하고 시스템 전체를 내파(內波) 해버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렇게 보자면 좀비는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의 형상에 대한 극단적 상상일지도 모른다. 좀비는 살아 있음과 죽음 사이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본과 노동이라는 대립항 사이에 있는, 자본인 동시에 노동 또는 자본도 아니고 노동도 아닌 어떤 존재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비는 자본주의의 외부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자기 내파, 자본주의의 바로 그 원리로 자본주의가 파괴되는 상황에 대한 상상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좀처럼 자본주의의 외부가 보이지 않는 시대에 자본주의 안에서 어떻게 그 바깥을 상상하고 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던지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모든 개인·기관 등을 수익 극대화를 위해 움직이는 ‘기업가적 주체’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그 모두를 자신의 자산가치를 증대하는 데 몰입하는 금융투자 행위자로 만들어내는 금융자본주의의 시대이다. 그 안에서 이제 다수의 개인들은 노동자나 기업가적 주체라기보다는 투자자에게 금융투자를 받기 위해 스스로를 관리하고 자기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피투자자가 된다. 

저자는 바로 금융자본주의가 주조하고자 하는 주체인 이 피투자자, 즉 신용평가·인적자본의 관리·투기적 금융의 방식 등 금융자본주의의 원리와 작동 방식에 밝고 이를 체화하고 있으며 자신의 자산을 이용해 이 금융자본주의의 게임에 참여해 능숙하게 금융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금융화의 거센 압박에 맞서 정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저항적 주체라는 것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요구에 가장 충실한 이들이 바로 그 금융자본주의의 저항자라니? 곧장 수없이 많은 반론이 제기될 법한 꽤나 당혹스러운 주장임에 틀림없다. 

필자도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처럼 자본주의의 외부를 찾지 못하고 상상하기도 힘들기에 자본주의 너머를 사고하고 만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 우울증을 겪고 있는 현재, 어쩌면 이들이 무기력증을 떨쳐내도록 해 줄 통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자 주체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체계의 임노동 관계 속에 있는 자들이면서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에 맞서 그 바깥을 여는 자들이지 않던가. 

피투자자 행동주의는 과연 금융자본주의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이미지=픽사베이

최근 몇 년 간 금융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있는 주직투자자들이 거대 금융기관·정부·해외자본이 움직이는 금융 헤게모니에 맞서 새로운 개미들의 연대·소통을 조직하고 이들에 맞서는 직접적 행동주의의 실천이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대응에 금융 헤게모니를 가졌던 기관들이 일격을 당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금융투자의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근 가장 뜨거운 용어로 떠오른 ESG가 시사하듯 금융투자는 이제 재무조건 외에도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요소들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혁명처럼 거대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 외부를 상상하지 못해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보다 금융자본주의의 원리를 가장 잘 체화하고 있는 피투자자라는 주체들이 바로 그 금융의 원리로 만들어내는 틈새와 그 틈새를 활용한 새로운 금융자본주의 시대 정치의 가능성에 주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이른바 피투자자 행동주의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풍부하게 제시하면서 그러한 실천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논쟁해 볼 만한 논점들을 던지는 흥미로운 책임에 틀림없다.

 

 

김주환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사회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