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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근대성 돌파구…‘실학’에 실마리 있다
서구 근대성 돌파구…‘실학’에 실마리 있다
  • 김재호
  • 승인 2023.11.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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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연구소 ‘신아구방 실사구시 학술집담회

“이순신의 철갑 거북선이 모래사장에서 썩는데 지나가며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백암 박은식(1859∼1925)은 아픈 한국사라는 뜻의 『한국통사』(1915)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사상사)는 지난 13일부터 사흘간 경기문화재단 인계동사옥에서 열린 다산연구소 주최 ‘신아구방 실사구시 연속 학술집담회’에서 이 내용을 소개했다. 노 교수는 「백암 박은식과 근대 실학」 발표에서 『한국통사』를 인용하며 “학문이 허를 높이고 실을 버려 정학·법학·병학·농학·공학·상학·재정학 등 실용 있는 각 학문을 공리라고 배척해 버려두고 연구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13일부터 사흘간 경기문화재단 인계동사옥에서 다산연구소 주최 ‘신아구방 실사구시 연속 학술집담회’가 열렸다. 사진=다산연구소

이날 집담회에서 노 교수는 “20세기 후반, 현대 한국지성사를 실학의 관점에서 정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며 “실학은 단순히 역사지식으로서 학문뿐만이 아니라 해방 전후 정치적 변동 국면마다 비판적 지식인들이 실천적 사회운동을 하면서 실학을 호명한 사정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20세기 한국 실학사상사’라는 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다. 

실학은 과연 무엇일까? 김태희 전 실학박물관장(정치학박사)은 토론에서 “개념과 담론으로서의 실학을 구분해야 한다”라며 “실학은 시간적으로 한정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양란 이후, 반성의 의미에서 시작되는 논의가 실학이었다”라며 “시대적 한계와 반성으로서 실학의 논의가 생겼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 전 관장은 “조선 후기 실학을 계승하면서 이후 담론을 촉발한 근대 실학이 주목된다”라고 강조했다. 

임상석 부산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실학자들은 그 당시 세상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글을 쓰고 문집을 남겼다”라며 “우암 송시열이 과거로 돌아가는 방향을 그렸다면, 성호 이익·연암 박지원·다산 정약용은 미래를 구상함으로써 후배들과 소통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백민정 가톨릭대 교수(철학과)는 집담회에서 “한국에서 다산을 연구하는 50대 초반의 여성연구자로서 연구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라며 “영재 이건창의 고민처럼 서양을 배워야 하지만, 식민지 정복력·무력마저 숭상할 순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현재의 학계도 “서구 근대성을 극복하는 돌파구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라며 “선구적인 실학자들의 고민을 통해 이익만 좇는 서구과학과 자본주의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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