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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학살’, 기억의 전쟁으로 재현되다
‘잊힌 학살’, 기억의 전쟁으로 재현되다
  • 윤충로
  • 승인 2023.06.1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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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두 번째 베트남 전쟁』 윤충로 지음 | 푸른역사 | 300쪽

베트남 전쟁 기억·망각의 한국 사회사
여전히 미흡한 참전자에 대한 연구

올해 2월 7일,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한국군의 학살을 사실로 보고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1968년 2월 사건이 있은 지 55년, 1999년 한국에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하 베트남 운동)이 시작된 지 24년여 만의 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3월 9일 항소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존중해달라”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반세기도 전에 있었던 ‘잊힌 학살’이 ‘기억의 전쟁’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베트남 전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흔히들 한국의 베트남 전쟁을 ‘잊힌 전쟁’이라 말한다. 베트남 운동이 시작된 후 잊혔던 한국의 베트남 전쟁 기억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 기억은 경제발전과 반공전쟁이라는 한국의 공식 기억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학살의 기억이었다. 이 책은 1999년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는 한국의 베트남 전쟁 기억의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1999년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기억 지형과 전쟁 기억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국의 베트남 전쟁이 ‘잊힌 전쟁’이라면 무엇이, 어떻게, 잊혔을까? 전쟁의 망각에 관해 묻는 것은 반대로 전쟁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과정이며, 현재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기억의 결이 만들어지는 역사적·사회적 과정을 살피는 작업이기도 했다. 『두 번째 베트남 전쟁』이라는 책 제목은 전장의 전쟁 이후 전쟁 기억을 둘러싸고 진행돼 온 기억과 망각, 기억의 전쟁을 드러낸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베트남 전쟁 기억의 한국 사회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베트남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지역 생존자, 한국의 베트남 운동 참여자, 참전군인 등 한국의 베트남 전쟁 기억과 관련된 여러 주체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재현되는 한국의 ‘두 번째 베트남 전쟁’은 전쟁 세대뿐만 아니라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전쟁의 영향을 다시 생각게 한다. 책은 크게 2부로 구성했다. 1부는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철수한 이후 1999년 베트남 운동 이전까지를 중심으로 냉전 시기 한국의 베트남 전쟁 관련 담론의 변화, 전쟁의 망각에 대해 다뤘다. 2부는 한국의 베트남 운동 형성 배경에서 시작해 2018년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까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연관된 과거청산 운동의 전개와 특성,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이 책은 한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과 망각, 이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 그 속에서 전개돼 온 다양한 ‘기억의 실천들’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필자의 학문 여정에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세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박사논문을 다듬어 책으로 펴낸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국가 형성사』(2005)로 남한과 남베트남에서 반공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비교역사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설명했다. 두 번째 책은 한국의 베트남 전쟁 경험·기억·기념의 문제 등을 사회사적으로 다룬 『베트남 전쟁의 한국 사회사』(2015)였다.

이번 『두 번째 베트남 전쟁』은 전쟁 이후 기억의 문제를 중심으로 했다. 세 권의 책은 식민 지배, 분단과 전쟁, 냉전과 열전, 냉전 문화, 전쟁 기억과 과거사를 둘러싼 국내외적 갈등 등으로 확장하며 굼뜨게 변화해 온 필자의 문제의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베트남·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는 아직 가지 못한 많은 길의 한 궤적일 뿐이다. 이 책이 ‘잊힌 전쟁’으로서의 베트남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한국의 베트남 전쟁에 관한 연구의 여백은 여전히 크다.

전쟁과 더불어 변화했던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과 삶에 전쟁이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참전자들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아래로부터의 전쟁 경험과 기억을 사회사·미시사·문화사적으로 재구축하는 작업은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의 현재성을 이해하고, 기억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윤충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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