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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혁명, 전쟁 … ‘같은 역사, 다른 오늘’ 한국과 베트남
분단, 혁명, 전쟁 … ‘같은 역사, 다른 오늘’ 한국과 베트남
  • 김재호 기자
  • 승인 2007.04.02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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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국가형성사> 펴낸 윤충로 박사

기획과 집필에 6년. 1년여 베트남 현지 답사. 그 결과 801쪽에 달하는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국가형성사>(선인, 2005)가 나왔다. 이 책의 지은이 윤충로 한성대 전쟁과평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제2회 김진균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달 28일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수상소감을 밝혔다.

“개인적으로 과분한 상입니다. 김진균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기념사업회가 생긴 거니까 그 정신이 이어지고, 앞으로 더욱 진보적이고 훌륭한 연구들이 생산되길 바랍니다.”

김진균상은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김진균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학술부문과 사회운동부문에서 매년 2월 중순 선정한다. 사회운동부문은 김지태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주민대책위원장이 수상했다.

베트남과 한국 비교연구 드물어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진행된 베트남파병. 전쟁에 투입된 한국군 총인원은 32만 명. 그 중 5천 여 명이 죽고, 1만1천 명이 다쳤다. 윤 연구원은 “한국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의 영향이 크다”며 “분단, 혁명, 전쟁이라는 현대사의 질곡을 응축적으로 가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과 베트남이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베트남의 비슷한 역사경로는 ‘해방의 기쁨, 분단의 슬픔, 혁명의 열정’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베트남과 한국에 대한 비교연구가 없어 연구과정은 쉽지 않았다.

책은 크게 두 개의 질문을 추적하는 방향으로 집필됐다. ‘왜 두 국가 모두에서 반공독재국가가 출현할 수밖에 없었는가’, ‘남베트남과 남한의 상이한 역사경로’. 유사한 국가형성의 과정을 겪었지만 남베트남은 1975년에 몰락했고, 남한은 경제규모가 11위인 국가로 비약했다. 윤 연구원은 세 가지 이유를 지적한다. 첫째 강제력(지방통제능력)의 차이다. 한국은 강력한 중앙통제와 농촌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했지만, 베트남은 전략촌계획의 실패와 지방통제력 상실을 겪는다. 이승만 정권은 일본의 식민지배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고, 한국전쟁으로 피지배계급의 혁명성을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프랑스가 패전한 1차 인도차이나전쟁으로 등장했던 베트남의 지엠 정권은 식민모국의 유산이 거의 없었고, 베트남 혁명세력은 막강했다.

둘째는 지배이데올로기의 확산·침투 능력의 차이다. 1954년 프랑스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고 호치민은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때 들어온 미국은 통일민족주의 때문에 반공이념을 확산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은 전쟁의 폭력과 공포 때문에 사람들은 반공 이외의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없었다. 신탁통치파동과 계급적·민족적 대립도 반공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조건이었다.

셋째는 사회경제 규제능력의 차이다. “남베트남에서 지속된 프랑스 자본의 영향력은 남베트남의 자본가계급을 친프랑스와 친미파로 분할함으로써 지배계급의 내적 분할을 가져왔다.” 베트남과 달리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귀속재산에 의해 미국의 단일한 자본지배가 가능했다.

‘침묵사회’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이승만 정권이 한국을 강력히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공이데올로기의 내면화를 통한 ‘침묵사회’ 때문이다. 지금도 별반 나아진 게 없는 ‘침묵사회’에 대해 윤 연구원은  “독재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바탕으로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루고 사상의 지평이 넓어진 건 사실”이지만 “한국전쟁을 통해 형성된 ‘침묵’은 저항의 한계를 설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 사회주의가 사라진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반공이데올로기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국민들에게는 ‘무슨 주의자인가’보다는 민족운동에 얼마나 헌신했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며 “식민지해방투쟁과정에서 민족적 정통성을 획득했던 건 사회주의운동세력이었다”고 덧붙였다. 정통성이란 국가간판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대중들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교수신문에서 진행 중인 식민지근대화론 논쟁에 대해 윤 연구원은 “베트남 연구자들도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통해 베트남의 인프라가 발전된 면을 인정한다”며 “하지만 중농층이 해체되고 토지가 지배세력한테 흡수되는 등 식민지배는 과연 민초들에게 성장이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지엠 정권과 이승만 정권 후에 군사정권이 들어오는 것까지 똑같은 역사적 과정을 밟게 되는데 이 부분까지는 다룰 수 없었다”며 후속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보다 심도 있는 이론화작업이 병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아래로부터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월남전 참전 군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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